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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트라 Feb 27. 2024

엄마, 나 이혼하고 나니까 애를 낳고 싶어졌어.

강아지를 한 열 마리 키우면 엄마마음, 알 수 있어?

마지막까지 몹시 바쁜 일정이었다.

늘 그랬듯 이혼 과정까지도 모두 앞장서서 처리해야 했다.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졌다.

그는 내게 주고 싶어도 줄 돈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간의 시간이 억울해서 변호사를 알아보는 중이었다.

그 결혼 생활을 지탱하던 모든 것들은

그를 만나기 전부터 내가 악착같이 노력해 온 것과 그 결과였다.

변호사 선임을 고민하고 있을 때 엄마는 내게 말했다.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그냥 협의이혼해.

그래, 엄마도 이렇게 분통이 터지는데 너는 오죽하겠어. 그런데 엄마 생각엔 오히려 빠르게 정리하는 편이

네가 더 상처받지 않는 좋은 길이라고 생각해.

이혼 과정이 길어져봤자 뭐가 좋겠어. 너만 힘들지.

너는 능력 있고, 금방 회복할 수 있잖아.

그런데 OO, 그래 너무 괘씸하고 밉지만 또 한편으론 아들 같아서.. 네 동생이랑 비슷한 나이잖아.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숨 쉴 틈은 주자. 걔도 살아야지."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빠르게 협의이혼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몇 년 만에 재발한 공황발작과

알 수 없는 통증들로 예정된 일들을 다수 포기해야 했지만,

미리 계약된 일과 일상의 업무들을 퀘스트 깨듯이 해냈다.

내가 괴롭고 슬픈 것과는 별개의 일이었다.

이제 그것만이 내게 매일 눈을 떠야 할 이유이자

기꺼이 살아나가야 할 하나의 의미이니까.




성실한 시간들로 봄을 맞이하고

초여름이 지나갈 무렵

모든 것을 정돈하고 떠나기로 했다.





그동안 나는 생일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누구나 있는 생일, 뭐 그리 대수냐 싶은 마음이랄까?

내 생일을 기억해 주는 오랜 친구들의 축하 메시지 한통,

소중한 가족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보내는 소소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이번 생일은 내게 정말로 특별하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첫 번째 생일.

다시 태어나는 마음으로

나는 내 인생에 아름다운 서사를 선물해 주기로 한다.



열심히 꾸려오던 돈벌이에 대한 기약 없는 중단을 선언하고,

한국을 떠나는 날은 내 생일로,

순례길에 오르는 날은 ex결혼기념일로 정했다!







여러 루트의 순례길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순례길은

그중 프랑스 생장에서 출발해서 스페인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프랑스길 (French Route)이다.


생장은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에 있는 마을로,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파리 혹은 바르셀로나로 입국을 해야 한다.

나는 파리로 입국하기로 결정했다.


항공권을 예매하고 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소풍 가는 아이처럼 매일이 설레었다.

매일 그 길을 상상하며 걸었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배낭 꾸리기는 수도 없이 반복했다.

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 순례길을 준비하며

이미 어느 정도 치유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미래에 대한 낙관과 기대는 삶을 생기 있게 한다.

내가 망설임 없이 이혼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같은 맥락의 이유였으리라.



항공권을 예매할 때만 해도

그저 까미노를 걷고 여행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그 시간이 길어지니 어느새 내가 살 수 있는 곳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리턴티켓은 입국 후 2개월 후로 예매해 두었지만,

언제든 취소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내가 살 곳을 찾는 마음으로 유럽을, 내키지 않으면 미국까지 갈 요량이다.








파리행 비행기는 오전 11시 30분 비행기.

출발 당일 그러니까 내 생일엔 거의 밤을 새워 일을 하고

혹시나 일어나지 못할까 봐 1시간가량 거실 바닥에서 이불을 깔고 잠시 눈을 붙였다.


알람이 울려 눈을 뜨니,

엄마가 소파에 누워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미 오랫동안 나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같은 눈빛.

미안하게도 지금은 그 눈빛에 애잔함이 더해졌다.

오랜만에 나를 바라보는 엄마를 보고 있으니 참 편안하고 좋다.




비몽사몽 잠결에 엄마 손을 잡고 장난스레 말했다.


"엄마, 나 오늘 생일이야."


"축하해"


"고마워"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아~~ 사랑하는 우리 따~~~~~~알~~~~~~ 생일 축하합니다~~~~"


엄마 목소리에도 어느덧 세월이 담겨있었다.

나는 음정 박자가 다 틀려버리다 못해 삑사리까지 신나게 내버리는 엄마의 생일 축하송에 깔깔대고 웃다가

이내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말았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냥 눈물이 났다.


내가 울기 시작하자 시몽이가 내 품으로 파고 들어와 눈물을 핥기 시작한다.



/

시몽은 내가 대학교 졸업할 무렵, 우리 엄마가 집으로 데리고 온 강아지다. 3개월령 500g 어린 강아지는 어느덧 10kg에 육박한 13살 노견이 되었다.

나이가 드니 시컴했던 털들도 희끗해지고, 몸 군데군데 지방종도 생기고, 백내장도 진행 중이다. 후각이나 청각도 예전 같지 않아서 간식을 던져줘도 한 번에 잘 찾지 못한다.


내가 자취를 시작하며, 7개월 된 시몽이를 데리고 나왔다. 우리 둘이서 참 오래도 살았다. 사회생활의 시작부터 결혼에서 이혼까지 모든 시간을 함께했다.

아마 나의 변화무쌍했던 모든 순간들을, 그 안에서 경험한 모든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유일한 생명체일 것이다. 내가 울면 언제나 시몽은 나에게 달려와 눈물을 핥아먹고 했다. 나는 그런 시몽을 안고 참 많이도 울고 위로받곤 했다.


/





엄마는 내가 소리를 내며 울자 당황한다.

".... 왜 울어?"


나는 눈물을 가까스로 멈추고,

잠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한다.


"엄마.. 내가 앞으로.. 아기를 안 낳겠지..? 낳을 수 없겠지?

근데 나 갑자기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결혼했을 땐 분명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 OO이랑 아이를 키운다는 게 상상조차 안 됐고, 시어머니는 나만 보면 애 낳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그땐 출산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지금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 그게 너무 억울한 거야 지금."


"애기가 없어서?"

"음... 그것보단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낳고 싶다한들 낳을 수가 없는 상황이니까... 나이는 점점 차고 있고... 물론 입양하면 되겠지만.. “

이어서 말했다.

“나도 엄마가 나를 키운 것처럼 나도 내 새끼가 있어야 그 사랑을 알고 전해줄 수 있을 텐데.. 아휴, 지구상에 태어나 그 사랑을 모르고, 그걸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게 조금 슬프네."


엄마는 몹시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가 있어야 부부가 돈독해진다고 엄마가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지금 아기 못 낳아, 알아서 할게"라며 상황을 정리해 버리곤 했으니까.



"그게.. 그렇게 눈물이 나?"


".. 모르겠어... 너무 억울해 속상해.."


"옴마야.. 희한하네.. 낳으면 되지!! 뭘 울어!!"


"애는 혼자 낳아? 이혼했는데 무슨 명분으로 애를 낳아!"


정적이 흐른다.

나는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시몽이를 꼭 끌어안고 말한다.


"엄마. 내가 시몽이를 한... 세 마리를 키우면,

그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아니."


"그럼 열 마리를 키우면?

자식 키우는 그 마음, 알 수 있어?"


"절대 몰라."


"절대 모른다고?

그럼 내 아이를 낳아야지만 알 수 있는 거야?

엄마, 우리 힘들게 키웠잖아.

엄마는 옛날로 다시 돌아가서 나랑 동생 낳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쩔 거야? 엄마도 꿈이 있었잖아."


"나는 무조건 너네들 낳아."


"우리 없었으면 엄마 인생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고 싶은 것 원 없이 하면서"


"물론 사는 건 힘들었지.

엄마는 너네 데리고 먹고살려고 정말 일을 쉴 새 없이 했잖아. 그땐 힘든 줄도 몰랐는데... 가끔씩 지난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 어떻게 지나왔나 모르게 진짜 힘들었어.

그런데 지혜야, 자식을 키우는 그 행복은 어떤 말로도 설명할 길이 없어. 너도 나중에 자식 낳아보면 엄마 마음 알 거야. 어떤 걸로도 대신할 수 없어.”




.

.

.


그게 뭘까.


사는 게 힘들어도 굳이 선택하겠다는

그 행복이 뭘까.


자기의 꿈을 대신해서라도

자신의 인생을 걸고서라도 지켜내야 하는

그 사랑이 도대체 뭘까.


나는 그때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사랑, 꼭 하고야 말 거라고.





내가 없어도 나를 걱정할 엄마를 위해

웃으며 장난을 친다. 할 수 있는 게 그뿐이었다.


"근데 엄마 너무 걱정하진 마. 알잖아, 나 이래놓고 유럽 가서 프랑스 사위 데리고 올 수도 있어."


"그래 그럼 한방에 손주까지 데려와"


둘 다 눈물을 훔치며,

애써 소녀들처럼 키득키득 웃는다.



"엄마, 어제 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태어나서 사는 게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어?"


"응. 사는 게 맘 같지 않지만... 그래서 재밌는 것 같아. 내가 이렇게 갑자기 이혼하고 엄마집에 들어와

호의호식하며 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벌써부터 다음엔 또 무슨 일들이 펼쳐지려나~ 기대가 될 지경이야. 열심히 살아도 인생이 참 진짜 내 맘대로 안되는데, 그래서 재밌는 것 같아.“


그러자 엄마는 잠시 침묵을 가지며 그 말을 곱씹는 듯했다.


나는 말한다.

“엄마, 이 재밌는 세상에 낳아줘서 고마워."


엄마 눈에도 눈물이 맺히며 말한다.

"다행이다."



미리 싸둔 짐을 꾸리고 집을 나선다.

"엄마 나 놀고 올게. 안녕~"


"잘하고 와"


"걱정 마"


"힘들었던 거 다 잊고 버려버리고,

좋은 것만 채워서 돌아와"


"그럴게"


진심이었다.

단조롭지만은 않은 인생이 이따금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즐겁고 재밌는 여정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백팩과 기내용 캐리어를 들고 집을 나서는 길,

몸이 아파서 출근을 못한 동생과 몸 좀 챙기라며 인사를 하고, 여느 때처럼 시몽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간식을 하나 주고 집을 나섰다.




공항까지는 아빠가 데려다주었다.

공항 리무진 타는 곳까지만 가달라고 했는데,

아빠는 그냥 말없이 인천공항까지 나를 데려다줬다.

말수가 무척이나 적은 아빠의 사랑방식이니 사양하지 않기로 했다.


차 안에서 아빠는 긴 침묵을 깨고 내게 말했다.

“아빠는 네가 고모처럼 자상한 외국남자를 만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고모 봐라~ 나이 70이 다 됐어. 그런데도 얼마나 사랑받고 행복하게 살아~"


나는 대답한다.

"아이고.. 아빠랑 엄마나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 나는 알아서 잘할게. 걱정 마셔"


이제와 생각한다.

아빠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마음표현이었으려나?



공항에 도착해 짐을 내려주는 아빠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꼭 끌어안았다.

생각해 보니 아빠를 안아본 일이 20년도 넘었다.

내가 뒤돌아 설 때까지 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괜스레 눈물이 났다. 그리곤 생각했다.

이게 가족들과의 마지막 만남이라고 해도

썩 나쁘지 않은 이별일 거라고.





늘 죽음을 기억하려고 한다.

아, 물론 내 꿈은 120살까지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사고 같은 것이라

언제 내게 일어날지 또한 모른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그러니 내가 죽음을 기억하는 행위는

지금의 이 삶에 보다 충실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결혼 생활이 끝을 향해가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죽음 앞에서 어떤 결정이 후회 없을지,

당장은 힘들어도 그와 나 우리 둘 모두에게

옳은 선택은 무엇일지를 수도 없이 생각했다.

그리고 최선은 이혼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살아가며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나는 매번 죽음을 기억할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무려 15시간 이상을 있었다.

비행기 탑승 후,

기체 결함으로 1시간 30분을 대기했고,

러시아 상공을 지나갈 수 없어서 비행시간은 14시간이나 걸렸다.



참으로 힘든 비행이었다.

전날 잠을 못 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엄마는 생일인데 미역국도 못 먹고 가서 어쩌냐며 미안해했는데, 고맙게도 기내식으로 미역국이

제공되었다.







그렇게 긴 비행 끝에 파리에 도착을 했다!

저녁 8시가 채 되지 않았지만, 날은 아직 어두워지지 않았다.

파리에서 유학한 친구의 조언으로 파리 2구, 오페라에 머물기로 했다.


공항에서 파리 2구까지 Roissy Bus를 타고 왔고,

버스정류장에서 숙소까지는 걸어서 약 5분 정도 걸어야 했다.

가벼운 캐리어를 끌고 잠시 파리의 밤을 느껴보려고 했지만, 장시간 잠을 못 잔 탓인지 정신이 몽롱했다.

그저 숙소에 들어가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자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예약한 숙소는 오래되고 작은 아파트먼트였다.

나 하나 들어가면 꽉 차는 느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70세의 기운 넘치고 귀여운 프랑스 할머니가 정말 반갑게 맞아주었다.



무언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동공이 풀려버린 내 몰골을 보더니 씩 웃으며 말한다.


"많이 힘들겠구나, 더 많은 이야기는 내일 나누고 오늘은 이만 샤워하고 푹 자렴"


내 마음을 읽어준 할머니가 참 고마웠다.

그렇게 짐을 풀고, 샤워를 마치고

따뜻한 티 한잔을 마신 후 작은 침대에 몸을 눕혔다.



하루가 참 길다.

아침에 거실에 누워 엄마와 한 대화와 시몽의 온기,

그리고 아빠의 조용한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들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져 가슴 한구석이 뻐근하다.

그 마음을 빌어 스스로에게 말한다.


'이 먼 곳까지 잘 도착했구나,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 이제 펼쳐질 앞으로를 그저 바라는 마음 없이 즐겨보자.'


여느 때처럼 예외 없이 좋은 봄날의 내 생일,

아마도 내 생애 가장 기억에 남을 36번째 생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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