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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트라 Sep 08. 2019

태풍으로 인한 발리 여행취소, 대처하는 나의 자세.

여행자의 느린시선



이 맘 때면 언제나 몰아 닥쳐왔던 가을 태풍.
그리고 그 때마다 하루종일 뉴스에 '하늘 길도 막혔다' 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나오는 공항의 모습.
그 뉴스들을 보며 항상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그 당사자가 나일 줄이야.


그렇다, 2019년 9월 7일. 나는 세번째 발리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난 이 글을 쓰고있는 지금, 발리에 도착했어야 한다. 주말에 태풍이 온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틀릴 때가 더 많은 일기예보기에 그다지 신경쓰지도 믿지도 않았다.





떠나기 하루 전날 저녁, 정확히 말하면 14시간 전에 항공권을 예매한 대행사에서 메시지가 왔다. 아침 9:45분 비행기가 저녁 9:00로 딜레이됐다고.

문제는 딜레이가 아니었다, 여느때처럼 나는 항공권 비용을 아끼기 위해 경유를 해야했다. 인천에서 쿠알라룸푸르, 두시간 반정도의 스탑오버 후 다시 발리로. 문제는 쿠알라 룸푸르에서 발리행 비행기는 연기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타고 갈 비행기의 스케줄을 확실시 할수 없다는 것과 적어도 하루 이상은 지체 된다는 것이었다. 최소 하루는 쿠알라룸푸르에서 묶여있어야 한다는 것. 나는 잠깐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금요일 저녁 수업을 마친 후에 바로 모둔 여행 일정을 취소했다.


가장 먼저 항공권을 취소했고, 그 다음 숙소를 취소했고, 이전엔 한번도 한적 없는 픽업서비스도 취소요청 (그만큼 지체없이 난 우붓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수업 대강 부탁한 선생님들께 다시 죄송하다고 연락을 드렸다.


아마 내가 예약한 숙소가 환불불가 옵션 - 고가의 숙소였다면, 혹은 이 여행이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가는 여행이었다라고 한다면
나 역시 어떻게든 손해를 보더라도, 훨씬 많은 금액을 지불하고서라도 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작 하루에 15,000원 남짓의 호스텔과 에어비앤비를 예약했고 (물론 아주 일찍, 무려 8개월 전에 예약했기에 삼분의 이정도 되는 가격으로 예약하긴 했다), 체크인이 상대적으로 뒤에 남은 곳은 전액환불이 가능하고 당장 다음날 머물러야하는 곳은 하루의 숙박료+수수료 약간만 내면 되는 것이었다.
총 숙소를 취소해서 내야하는 비용은 18,000원 남짓. 이것 또한 한국 고객센터가 운영되기 시작하는 월요일에 연락해볼 계획이다.

예약해둔 픽업서비스도 비행기 결항으로 난 발리에 가지 못한다 하니 바로 취소해주었고, 환불받지 못하는 건 아마 만원 남짓의 여행자보험일 것이다.
게다가 수화물 조차 신청하지 않았기에 나의 짐이라고는 백팩 하나가 전부였다.
짐을 싸는 데도, 푸는 데도 큰 힘이 들 필요가 없었다.

내가 9개월을 기다려 온 해외여행을 가지 못함으로써 손해보는게 고작 삼만원도 안된다는 것에 '참 나도 나다' 싶어 피식 웃음이 난다. 그러니 이렇게 쿨하게 여행을 포기할 수도 곧장 다른 것에 집중할 수도 있는 거겠지.


이 쯤되면 '가진 것이 없는 이는 잃을 것도 없다' 는 말에 적극적으로 동감한다.
몇 년전, 내가 자덕(자전거 덕후)일 때 자전거는 내게 취미와 과시의 수단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자전거는 단순 이동수단이다.  '자전거 덕후' 와 단순 '자전거 소유자'의 삶만 비교해봐도 그렇다.
자덕일 때는 100% 카본의 이태리제 거의 중고차 한 대 값의 로드 싸이클을 탔었다. 카본으로 만들어진 자전거는 무게가 매우 가볍기 때문에 여자가 한 손으로도 거뜬히 들 수 있고, 그래서 맘만 먹으면 쉽게 훔쳐갈 수도 있었고 실제로 주변에선 그런 일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그 때는 혹시라도 누가 훔쳐갈 까봐 늘 노심초사 했었다. 좁은 집 안에 자전거 거치대를 설치해 보관했고, 밖에 나갈 땐 식당은 물론 편의점이나 화장실도 맘대로 갈 수가 없으며, 심지어 화장실까지 자전거를 끌고 들어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동을 위한 자전거를 탈 때는 정말로 마음이 편하다. 물론 저렴한 자전거는 아니지만 누가봐도 투박하고 낡은, 그래서  딱히 훔쳐갈만한 자전거는 아닌 7년동안 한겨울을 제외하곤 늘 나의 두 다리가 되어주는 고마운 자전거. 그래서 언제나 문 앞에 무심하게 툭 세워두는, 밖에 나갈 때는 어느 나무나 전봇대에 자물쇠로 가볍게 탁 걸어놓고 다른 일을 오래 보고와도 전혀 걱정되지 않는 우직한 아이.
비싸고 화려한 로드를 탈 때보다 내게 훨씬 큰 기동성과 안정감을 주는 고마운 친구. 왜 글이 여기까지 왔지. ㅎㅎ



아무튼 예정대로라면 비행기를 타고 쿠알라룸푸르에서 발리로 넘어가고 있어야 할 시간, 저녁 6시경.
창 밖으로 무섭게 불어오는 바람을 보며 기대했던 여행이 좌절됨에 있어 짜증이 올라오기도, 또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도 쉬었다.
이기적인 혼자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이미 나의 항공편은 결항됐는데 태풍이 빗겨나가면 억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점점 높아지는 짜증지수를 낮춰보고자 김치전을 두 판이나 해먹고, 미뤄두었던 집 청소를 했다. 6월에 짧은 봉평 여행에서 사온 선인장도 무럭무럭 자라서 임시플라스틱 화분이 너무 비좁아보여 분갈이도 해주고, 역시 마음이 복잡할 땐 몸을 움직여야 조금 편해지고 리프레쉬된다.



해가 져물며 그토록 무섭게 불어오던 바람은 많이 사그라들었고, 나는 조심스레 창문을 열었다. 아주 기분좋은 선선한 바람이 들어왔다, 소리는 아직도 거세어 조금 무서웠지만.






온갖 푹신한 것들 - 바디필로우/볼스터/베개 - 를 내 몸에 맞게, 오랫동안 책을 보아도 피로하지 않게끔 자리를 만들고 여행지에서 돌아오면 읽어야지 하며 아껴둔 책, 임경선 작가의 신간을 꺼내읽는다. (이유는 이 책이 리스본 여행기인데, 발리를 여행하며 읽기에는 안 어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정한 구원」 이라는 리스본 여행 중에 적어 내려간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읽다보니 너무 설레었다. 여행을 못가서인지 대리만족도 하며 읽고 있는 기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많이 쉬고 많이 자자고, 내키는 대로 걸어 다니고,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하면 그곳에서 아낌없이 시간을 보내자고, 가끔은 과거의 장소들이 궁금하겠지만 지나치게 감상적이 될 것 같으면 무리하진 말자고. 그래도 느끼는 감정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라는 부분을 읽으며 이번에 내가 발리를 떠나고자 한 이유를 누군가의 말을 빌어 대신한 기분이었다. 이럴 때 큰 위안이 된다, 나와 같은 생각을 어떤 누군가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책에 집중하다보니 포르투갈이 너무 궁금해졌다. 책을 읽다가 말고 리스본 지도도 찾아보고, 관련서적도 찾아보고, 두 눈을 감고 가만히 그 곳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아마도 다다음 여행지는 포르투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음 여행지는 이미 태국으로 정해졌다)

어느정도 책을 보다보니 몸이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원래 성향이 가만히 잘 못있는 성격인데다, 아침에 카페에 잠깐 다녀온 후론 집에 12시간 이상을 있었더니 말 그대로 몸이 좀이 쑤신다. 기지개도 몇 번 켜는 걸로는 부족해, 바닥으로 내려와 부장가사나와 발라사나를 몇 분씩 유지하고 나니 그나마 조금 편안해졌다.


 밤이 깊어질수록 바깥의 날씨는 점점 평온해진다. 오늘 낮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말이다. 그러자 지금까진 괜찮았던 마음이 갑자기 훅 서러워진다. 그 때 알아차린다. 나는 쿨하게 여행을 취소한 것이 아니었다. 내 계획에서 너무 크게 벗어나자 순간 화가나서 무턱대고 취소해버린 것이다. 조금 딜레이 되더라도, 내가 발리에 생각보다 하루 이틀 덜 묵더라도 갈걸 그랬다, 라는 마음이 자꾸만 올라온다.

순간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다 못갔나? 싶어서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 #인천공항 을 찾아보니 오전 비행기는 거의 출발했더라. 12시 이후부터 대부분이 결항되었고, 참고로 나의 비행기는 오전 9시 45분이었다. 차질없이 잘들 떠난 사람들이 있는걸 알자 더욱 더 속상했다. 이런거 보면 사람 심리 참 웃기다.




 예정대로라면 발리에 도착할 시간이 되자 그 피해망상에 가까운 심리는 더더욱 가중된다.  '도대체 왜 나는 여기 있는가' 라는 억울하고 기가 찬 마음이 온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원래대로라면 난 지금 우붓에서 짐을 풀고 인센스를 하나 피워놓은 후, 빈땅 한 잔 마시고 있겠지? 그리곤 내일 아침엔 상쾌하게 요가를 하고, 카페에서 치아시드 푸딩을 먹을텐데. 하며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기다리고 기다렸던 롯데월드 소풍이 비가와서 미뤄진 적이 있었다. 그 때의 기분이랑 정말 똑같았다. 어린 아이 아니라 울 수 없고 떼쓸 수 없는 안타까운 32살의 성인 여성이 여기 있을 뿐.

그러자 갑자기 발리에 대한 아주 사사로운 기억,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나만 아는 이야기와 그리움까지 마구잡이로 쏟아지다 못해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알람이 필요없게 아침부터 시끄럽게 울어대는 닭소리, 아침 6-7시- 이른 아침에만 느낄 수 있는 약간은 칠리하게 느껴지던 우붓의 공기, 같은 시각 분주한 우붓시장 상인들과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등교시키는 수많은 오토바이들의 향연. 대문 앞을 느린 움직임으로 청소하는 노인들,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어떤 액티비티를 하기 위해 숙소를 나선 나같은 부류의 외국인들.



작년에는 짬푸한 로드를 걸으며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던가, 그 경이롭고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근거없는 무한한 해방감을 느꼈고, 동시에 나만 이런 멋진 광경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아쉽고 미안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에 있을 나의 가족들에게 말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요가성지답게 오며가며 만나는 다양한 국적의 자유분방한 요기들, 식당-카페 어딜가든 여유가 넘치는 사람들.
여행지에서도 늘 무언가 쫓긴 사람처럼 바쁜 나는 그런 여유 넘치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이 들었다. 그럴때면 과속 방지턱에 걸린 것마냥 빠르게 걷던 걸음은 멈추곤 '그래.여행까지 와서 뭘 이렇게 분주하냐,잠깐 쉬어가자' 하며 편안한 카페에 앉아 오랜 시간 멍때리곤 했다. 내가 쉬는 방법은 발리에서 배웠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해질녘 걷는 하노만 로드는 내가 꿈꿔온 모습 그대로 언제나 낭만있었고, 늦은밤 꼭 걸어야만 했던 몽키포레스트 로드는 어딘가 모르게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혼자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숙소에선 어김없이 고독함과 외로움과 싸워야했다. 이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대해서 매일 밤 생각했다. 울면서 잠드는 날도 있었고, 대개의 날들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다가 잠이 들었다. 물론 너무 감정에 취해쓴 글이라 아침이면 오글거려 나조차도 다시 읽기 어려웠던, 전해주지 못한 편지들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발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피부에 닿는 공기의 온도, 바람의 질감, 곳곳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창 밖 너머 서서히 물들어오던 빛의 명암과 채도의 변화.
나와 함께 같은 시간과 경험을 지나고 있는 자유로운 사람들의 분위기와 표정, 그 안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심지어 존재의 유무 조차 그 누구도 알지못할) 이방인 내가 있다.


향수에 젖어 아쉬움에, 속상함에... 읽었던 책을 잠시 덮고 두근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가만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쉰다. 아주 천천히 숨을 쉰다.
그래 이대로 잠들자, 내일 일어나면 기분 좀 괜찮겠지- 스스로 위로하며 자려고 하는데,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던  남자친구가 얼큰하게 취해서 전화가 온다. 이미 3차까지 갔다는 남자친구의 목소리는 3단계 더 높아졌고, 주변의 소음도 엄청나다. 내가 가까스로 만들어놓은 평정심을 나의 고요함을 단박에 깨트린다.
목소리만으로도 내가 명절에 한국에 있는게 얼마나 좋은지 느껴진다.


가까스로 일정하게 맞춰놓은 내 기분의 주파수가 들쑥날쑥 맥을 못추더니, 씩씩대다가 이내 눈물이 터지고 만다. 32살이나 먹고 여행 못갔다고 눈물이 나는게 쪽팔려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곤 숨을 꾸욱 참아본다.어릴 때부터 눈물을 멈추는 나의 방법이다. 그리고는 아까, 아주 아까 전부터 내 시야 안에 들려고, 나와 몸 어느 한부위라도 닿으려고 지속적으로 애쓰고 있던 시몽을 이불 안으로 데리고와 꼭 끌어안는다.
 
그랬더니 마음이 놀랍도록 잔잔해진다. 평생을 내 손길과 눈길을 기다리는, 내가 전부인 이 따뜻한 생명체를 꼭 끌어안으니 정말 엄청나게 위안이 된다.
내가 발리가 아닌 이 곳, 한국 내 방 침대에 있는게 엄청 다행이라고, 오히려 훨씬 나은 선택이라는 확신마저 하게 하는 유일한 존재가 여기 바로 내 앞에 있었다. 치유받는 순간이었다.





그래, 내가 있는 이 곳이 어디든 내일은 재밌고 유쾌하게 보내보자.

오늘의 날씨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이.



/2019.09.08 1:04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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