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다. 아니 감기라고 하기엔 좀 약하다. 감기 걸릴랑 말랑한 상태라고 보는 게 맞겠다. 머리가 멍하고 목에서 쇠맛이 난다. 잔기침도 하고 콧물이 조금 있다. 컨디션은 안 좋은데 그렇다고 감기라고 말하고 싶진 않은 상태다. 감기라고 말하면 진짜 감기인 것 같으니까.
우리 집에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아닌데? 안 아픈데?" 아이들도 쓴다. "아닌데요. 안 아픈데요?"
몸이 안 좋은 게 빤히 보이는데도 아프지 않다고 꾸역꾸역 이야기하는 이유는 약해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집에선 감기에 걸리거나 병이 나면 온 가족이 위로해주기는 커녕 모두 합심하여 놀리기에 여념이 없다. '위크가이.' '최약체.' '자기 말을 안 들어서 약하다.' 등등. 그래서 아파도 아프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콜록 기침을 해도. 머리가 아파도. 힘들어도. 절대 아픈 것이 아니다. 그냥 그런 것이다.
조금 안 좋을 때 말하면 좋았을 것을. 컨디션이 나빴을 때 쉬면 되었을 것을. 결국 쉴 타이밍. 건강을 챙길 타이밍. 약을 먹을 타이밍을 놓쳐 본격적으로 아프게 된다. 그렇게 우리 집 최약체가 된다. 한동안 놀림을 받을 것이다.
다음에는 몰래 아픈 것을 걸리지 않게 몰래 약을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