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빼빼로 데이였다. 생전 빼빼로 데이를 챙겨본 적이 없다. 와이프에게도 연애할 때 빼빼로를 만들어서 준 적을 제외하고 빼빼로 회사의 농간에 놀아나는 것 같아 그냥 농업인의 날이구나 하며 가래떡을 구워 먹곤 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번 빼빼로 데이엔 반 아이들에게 빼빼로를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저번에 체육대회 연습날 열심히 하는 아이들에게 음료수를 사주지 않았던 것이 마음에 걸렸었나 보다. 같은 교무실 동료선생님이 빼빼로를 준비하시는 것을 보고 인터넷으로 싸게 구매를 했다.
빼빼로를 주었을 때의 아이들의 반응을 상상하며 주말을 보내고 빼빼로를 한 아름 안고 학교에 도착했다. 복도를 지나는데 학생들이 다 알면서 봉지의 그게 뭐냐고 물어본다. 여분의 빼빼로가 있어서 나눠주니 아주 좋아한다. 우리 반 아이들도 이렇게 좋아하겠지 하면서 교무실에 들어섰다.
반 아이들에게 줄 빼빼로를 준비한 선생님들이 몇 분 계신다. 서로 얼마나 싸게 샀네. 좋은 것을 샀네. 너무 많이 사서 억울하네 등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면서 이야기 꽃을 피운다. 다들 자기 자식들 챙기는 것처럼 기분들이 좋아 보인다.
이제 조회시간. 빼빼로를 들고 위풍당당하게 복도를 지나 교실에 들어선다. 아이들은 내 손에 담겨있는 물건을 발견한다. 빼빼로인 것을 눈치채고 선 아무 말 없이 의자에 앉는다. 아이들이 모두 등교한 것을 확인하고 빼빼로를 전부 꺼내 교탁 위에 올려놓는다.
"오다 주웠다."
아. 너무 재미없고 진부한 농담을 했다. 차라리 솔직하게 너희들 생각나서 샀다. 빼빼로 데이를 챙긴 적이 없는데 주고 싶어서 가져왔다. 맛있게 먹어라. 좋은 말을 전할걸.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