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근로자는 정말 재택근무가 좋을까?
재택근무하면 떠오르는 좋은 점들이 많다. 특히 직장과 주거하는 곳의 거리가 먼 사람이라면 왕복 몇 시간이 되는 거리를 가지 않아도 되니 아침에 더 잘 수도 있고 일이 끝나면 운동을 하거나 자기계발을 할 수도 있다. 집에서 식사를 할 수 있으니 식비도 굳을 것 같고, 거기다 재택근무 = 재량근무 아닐까? 회사에 간다면 평일 낮에 처리할 수 없는 일들을 재택근무 하면서 처리할 수도 있고 회의가 있는 시간 이외에는 재량껏 일하고 결과만 낸다면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회사에 있을 때는 팀원들이, 팀장이 내 모니터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어딘가 감시받는 느낌이 들었는데 재택을 하면 자율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어서 만족도도 높아질 것 같았다.
재택근무는 물론 좋았다. 처음에는.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봄 무렵. 일본에서도 하나 둘 집에서 일하는 회사들이 늘어났고 나도 회사에 가지 않게 되었다. 마침 새롭게 이직한 회사에서 재택 지원금을 주어 새롭게 책상과 모니터를 구입했고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좋았다.
일본에서는 회사에서 교통비를 매달 지원해주는데 내가 회사에 가지 않아도 교통비는 그대로 나와서 그것도 나름대로 쏠쏠했다. 이때는 서포트 엔지니어 (기술지원 엔지니어) 로 일하고 있을 때인데 직무 특성 상 고객의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다였고 장기적으로 이뤄야 할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팀원들과 협업하지 않아도 내가 기술을 이해하고 있다면 업무를 할 수 있었다. 또, 서포트 엔지니어 직무는 시프트로 짜여져 있어서 APAC 시간에만 일하면 그 다음 시간에는 EMEA 동료들이 일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야근도 없었고 그냥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일이었다.
한동안은 너무 좋았다. 다섯시에 일이 끝나면 여섯시에 복싱 체육관에 갔고 운동이 끝나면 건강하게 저녁을 요리해먹고 저녁에는 책을 읽고 잤다. 이렇게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니 너무나 행복했다.
하지만 정확히 한 달이 지나고 나니 나는 입에 거미줄 친 외국인 노동자가 되었다. 혼자 사는 나는 여태 그나마 회사에서 사람들을 만나서 입을 털어왔기에 외롭지 않았던 것이구나 하고 뼈저리게 느꼈다. 사람 냄새가 너무 그리워졌다. 사람들이랑 쓸데없는 미팅하기 싫어서 개발자 한건데 이제는 쓸데없는 미팅이라도 제발 나를 불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겹다 못해 회사원 친구들과 원격으로 만나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가상 공간에서 나와 혼자가 되면 너무 심심했다. 혼자만의 공간도 누구랑 복작복작 같이 지내다가 얻었을 때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외노자는 오프라인에서 만날 친구도 많지 않았다. 코로나 상황에서 가족을 보러 한국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끔 누구라도 만나 입을 털 때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인간이 살면서 어느 정도 자극이 있어야 되는데 매일이 똑같아서 권태로웠다. 아침에 일어나서 일하고 밥먹고 일하고 운동하고 하루를 마치는게 이상적인 생활인 것은 알지만 매일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극 중에 가장 큰 자극은 사람한테 얻는 자극인데 만나는 사람이 없으니 새로운 생각을 하기도 어렵고 무미건조한 나날들이었다. 물론 코로나 상황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회사에 가지 않으니 더 심했다. 하다못해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잠깐 쉬는 시간에 어디 커피라도 마시러 가서 잡담이라도 하고 마음이라도 나누는데 잡담하자고 줌 켜기도 민망했다. 그렇다고 뭘 다른걸 하자니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고, 지겨운 나날들이었다.
그러던 차에 코로나가 더 창궐하던 지난 여름 나는 또 이직을 하게 되었다. 매일 일을 쳐내는 일상에서 이번에는 뭘 좀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개발자로 이직을 한 곳이 외국계 금융회사였다. 다른 개발자들과 코드리뷰하면서 같이 기술적인 주제로 토론도 하고 일상도 나누었던 첫번째 직장 환경이 그리웠던 것도 큰 이유였다. 개발자가 되면 또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도쿄에는 개발자가 나 혼자라는 것. 그리고 같이 일하는 다른 팀 사람들도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다는 것. 같은 그룹 안에 인도 개발자 팀과 미국 개발자 팀이 있지만 직접 면대면으로 만난 적 없는 사람에게 뭐 하나 물어보고 도움을 요청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코로나 전에는 문제가 생기면 옆에 있는 동료/선배 개발자들에게 물어보기도 쉬웠고 함께 짝을 이루어 프로그래밍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되고 나니 채팅으로 물어보기가 쉽지 않았다. 하나 물어보려면 지금 시간이 괜찮은지 묻고 화면 공유 프로그램을 켜서 물어봐야하는데 말이 쉽지 얼굴이 안보여서 질문에 답장이 안오면 괜히 내가 쓸데없는 것을 물어봤나 싶어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막상 연결이 되어 물어봐도 리모트 환경에서 말이 잘 안들리는 경우도 많았다. 커뮤니케이션에 음성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비언어적 메시지에 비해 낮다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팀 내에 정보를 얻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한 오피스 공간에 있으면 뭐라도 주워듣고 회사에 적응이라도 할 텐데 새로운 회사는 시스템이 달라도 너무 달라 뭘 물어봐야 할지도 몰랐다. 적극적으로 캐치업이 필요한 것은 알겠지만 이 회사에, 이 팀에 내가 과연 익숙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머리를 맴돌았다.
물론 앞서 말했던 장점들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신입에게, 혹은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팀원들에게 재택이 정말 좋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사람들이 너무 그립다. 회사 일은 결국 같이 일하는 사람 보고 하는 것 아닌가요. 사람 없이 일만 쳐내는 날들 이제는 싫다. 코로나는 언제 끝나요? 이직하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동료 여러분들, 다들 얼굴 한 번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