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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씨 Oct 13. 2021

8년차에 써 보는 일본 생활에서 만족하는 것

!주의! 이것은 저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므로

일본의 모든 회사와 상황이 이렇다고 오해하진 마시길 바랍니다.






Work 일


일의 선택지를 가질 수 있다

일본에서 7년을 일하고 살면서 가장 만족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단연코 일이다. 우리나라가 구직난이라면 일본은 구인난. 일본의 인구는 우리나라의 2배가 넘어 업계의 다양성이 있고 대기업도 많다. 우리나라처럼 스펙 위주의 채용이 아닌 포텐셜 위주의 채용이 많기에 한국보다 취업도 이직도 난이도가 낮다고 느낀다.


고로, 자신의 준비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제대로 어필하면 가고 싶은 회사를 골라 갈 수 있으며 아직 젊은 연차로 취급되는 3년 차까지는 업계, 직종을 넘나드는 이직이 수월하다. *단, 지금은 코로나 시대라 조금은 여유가 사라진 느낌이고 특정 지식을 필요로 하는 직종(디자이너나 엔지니어처럼)은 단연히 관련 스킬이나 실적이 요구된다.


나는 지금까지 4군데의 회사를 경험했는데 직무는 영업직이었지만 업계는 모두 달랐고 하는 일도 조금씩 달랐다. 업계 지식이 전무해도 영업에 필요한 공통 역량이나 업무 방식, 나라는 사람을 보고 채용해준 것이다. 나는 경력이 쌓이면서 하고 싶은 일이 조금씩 바뀌었고, 관심 있는 업계도 넓은 편이었는데 완전히 일치하는 업무 경험이 없어도 채용해주는 일본의 채용문화가 잘 맞아떨어졌기에 가보고 싶은 회사는 모두 입사할 수 있었다. 그 부분은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




전형 과정과 연봉

작년에 코로나가 심각해졌을 때 귀국을 고민하면서 한국기업에 몇 군데 지원해본 적이 있다. 그때 가장 많이 느낀 것이 '기다리기 답답하다'였다.


일본에서 이직할 경우, 서류와 면접 결과는 거의 일주일 이내에 연락이 오고 아무리 늦어도 2주를 넘긴 적이 없었다. 고로 한 달이면 한 회사의 모든 전형이 끝나는 일정이다. 그런데 한국은 달랐다. 서류 결과가 나오기까지 일주일 이상 걸리거나 언제 올지 모르거나, 지원하고 몇달 후에 면접 연락이 오는 등. 1지망부터 지원을 시작해서 순서대로 결과를 받고 어딜 갈지 결정해 온 나로서는 의사 결정하기에 참 애매한 구조였다. 구직난을 전제로 생각해보면 회사가 필요할 때 구직자에게 연락하는 게 당연할지 모르지만 그냥 뭐랄까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게 좀 답답했다.



그리고 일본의 채용공고가 훨씬 구체적이고 정보가 많다고 느꼈다.

일본의 경우 업무내용이 구체적으로 적혀있어서 다른 업계인 내가 봐도 대충 이런 일이겠구나 하고 알 수 있었는데 한국의 경우, 내 지식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채용공고를 봐도 업무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연봉정보가 안 적힌 공고가 너무 많았다. 지원자 입장에서는 꽤나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자소서를 쓰고 면접 준비를 하는데 그 과정 동안 중요한 조건인 연봉조차 모른다는 게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처음부터 얼만지 알고 시작하는 일본 기업과 비교하면 동기부여의 정도가 달랐다.



그리고 한국으로의 이직은 연봉이 대폭 하락되는 경우가 많았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신입 때 연봉이 2500만 원 정도였던 거 같은데 아무리 물가차이가 있고 업계가 달라도 7년 경력에 3천대의 연봉을 제의 받으니 그동안의 커리어를 1도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일본에서도 연봉하락을 협상한 적은 있지만 이 정도까지 떨어뜨린 적은 없었고, 당시 동시에 지원했던 일본 기업은 타 업계였음에도 오히려 연봉을 올려주었기에 연봉에 대한 차이를 더 크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입사 후 회사 생활과 여성의 경력단절에 대해

입사 후의 회사 생활에 대해서는 솔직히 회사와 업계에 따라 케바케라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다.

그러나 대기업에 들어간다면 사람이 병맛 같아서 괴롭다거나 회사 분위기나 운영 방식이 이해불능이라거나 하는 회사는 적을 거라 생각한다. 몇 년 전 이슈였던 과로로 인한 신졸 자살 사건이나 パワハラ、セクハラ라고 상사가 어떤 방식으로든 부하를 압박하는 것에 대해 대기업들은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앙케이트 조사를 진행하고 인사부에 도움을 요청하면 부서 이동 등 개선하기도 수월하다.


그리고 내가 지나쳐온 회사들(IT Sier / Web 서비스나 광고쪽 대기업과 스타트업)은 여성이 일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時短이라고 해서 단축 업무를 하거나 보육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온 후 밤에 일할 수 있도록 근무시간을 조정해주었다. 정사원이 아닌 파견직 어시스턴트나 사무직분들도 잘 복귀하셨고, 베테랑인 경우 오히려 회사가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분위기였다.


출산일에는 당연하다는 듯 팀원들에게 출산 보고와 아이 사진을 보내 주었고 출산 휴가기간에 아이를 데리고 회사 오피스에 오시는 경우도 많았다. 이처럼 임신과 출산을 회사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는 이벤트가 아닌 모두가 축하해야 하는 일이며, 워킹맘을 배려해줘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느껴졌다.


여성의 승진에 대해서는 4곳의 회사 중 3곳에서 여성 임원을 보았고, 2곳의 회사는 재직 당시 부서장이 여성이었다. 그러나 어떤 회사에서는 여성 매니저(차장급)이 많은가하면 어떤 회사에서는 가뭄에 콩나듯인 경우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남성에 비해 그 숫자는 확실히 적었지만 결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회사 사람들과의 관계, 나의 프라이버시


일본에서는 회사용 핸드폰을 지급한다.

내가 원하는 사람과만 개인 연락처를 주고받기 때문에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고 한국처럼 카톡 지옥에 갇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퇴근하고 내가 안 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물론 밤낮을 가리지 않는 긴급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업계나 직종인 사람은 퇴근 후에도 습관적으로 업무용 핸드폰을 확인하고 급한 일이라면 대응하기도 한다. 그러나 퇴근 후에 업무 부탁을 하는 것은 실례라는 인식이 전제에 깔려 있기 때문에 정말 급한 일이 아닌 이상 휴가 중이거나 퇴근 후에 연락해서 이거 해달라는 식으로 요구하는 동료는 거의 없었다. 피치 못해 연락한다 해도 '죄송하지만~ '이라는 원쿠션을 반드시 넣는 식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상황 by 상황이라

퇴근하면 회사용 핸드폰을 절대 보지 않는 상사를 만난 적이 있는가 하면

나의 3년 차 여름휴가는 핸드폰을 쥐고 업무 대응을 하기도 했다.

이게 싫다면 대응의 긴급도는 업계에 따라 다르니 업계를 골라가면 된다.








Experience 경험


온전히 혼자서 삶을 꾸리는 경험

여기서의 경험은 '한 개인'으로서의 인생 경험을 말한다. 타국 생활을 하면 자취의 고수가 되는 것은 물론, 의지할 곳이 없고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확인하고 진행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독립심이 엄청나게 길러진다. (나중에 단점에서 다루겠지만 이것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고 되돌아보았을 때 오로지 내 힘으로 이만큼 삶을 꾸리고 살아왔다는 것에 대해 '아, 내가 어딜 가도 먹고살 수는 있겠다'는 삶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아무리 일본이 가까운 나라라지만 살아보면 문화와 사고방식이 많이 다르다. 그만큼 다른 문화를 접하다 보면 내 사고방식이 넓어지고 나 자신과 삶, 세상에 대해 좀 더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되는 듯하다.




해외생활을 즐기는 것

남들은 비행기 타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오는 곳이 내게는 매일 지나치는 동네이기에 여행이나 JPOP, 컬처 문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살면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즐기는 것만으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외국에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콘텐츠가 되다 보니 유튜브를 찍으며 일상생활을 즐기는 것도 하나의 좋은 경험이란 생각이 든다.




욕구의 실현 - 갈증의 해소

나 같은 경우 일본어를 전공하면서 느꼈던 갈증이 이곳에서 일하고 살아가면서 많이 해소되었다. 대학에서 일어일문을 전공했지만 일본에 대해 많이 아는가? 하고 자문하면 대답은 NO였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는 것과 학원에서 일본어를 배우는 것. 일본어 구사능력만 따지자면 솔직히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학원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자발적으로 탐구하는 오타쿠적 기질을 지닌 분들을 평범한 전공자는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외국어를 좋아하는 평범한 전공자에 불과했는데 졸업할 즈음에 어느 정도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었지만 뭔가 공부를 하다 만 것 같은, 능력치가 부족한 듯한 찝찝함이 남아 있었다. 그런 탓에 교환유학을 마치고 돌아올 때 만약 일본에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한번 가보면 좋겠다...라고 문득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이런 식으로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나라는 사람은 '배움'에 욕심이 많고 관심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 마스터했다는 느낌을 좋아하는데 직접 살아 보면서 그 욕구가 많이 해소되었다. 아마 누구나 이런 욕구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고, 특히 해외생활을 하시는 분들은 '해외에 한번 살아보고 싶다' 거나, '일본에서 잠시 살았는데 참 좋았다'거나 각자 나름의 욕구들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그저 '~해보고 싶다'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실현해봄으로써 일본 생활 자체에서 큰 소득이 없다 해도 버킷리스트를 하나 실행했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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