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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과 열심 Dec 02. 2024

응원하는 책

《배우라는 세계》

출근길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으로 이 책을 만났다. 듣다가 너무 좋았다. 한지민, 원빈, 강동원 배우의 연기 스승으로 알려진 신용욱 님의 책이었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 소개 글을 찾아보니 “이 책은 잘 정리된 연기 교재가 아니라 결국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인지 배우를 꿈꾸지 않는 나에게도 책 속 문장들이 깊이 와닿았다.      


내가 누구인지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자기 자신을 알고 싶어 하는 이들만이 내가 들어 주는 거울 속을 들여다보려고 무진장 애를 쓴다. -18쪽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것과 더 나은 배우가 되고자 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180쪽


책에서 나온 여러 에피소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신용욱 님이 학교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갔을 때, 깊이 감동했다는 친구들과는 달리 그 영화가 별로여서 자신은 왜 감동을 받지 않았는지를 고민했던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이다. 신용욱 님은 자신이 작품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그 후 지금까지 하루에 한 편 영화 보는 게 습관이 되셨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인생의 약점을 장점으로 만드는 과정에 대해 배운 것 같았다.


특히 개인 수업을 할 때 배우가 촬영할 작품이 어떤 장르든, 어떤 캐릭터를 맡았든 모든 대본을 수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설령 내가 관심 없는 장르라 하더라도 그 장르로 넘어가는 것이 수월하다. 내겐 긴 시간 축적해 온 ‘다양성’이라는 풍부한 자산이 있으니까.
인생이 그런 것 같다. 스스로 취약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극복하고자 한 행동이 생각지 못한 장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러니 자신의 약점을 마냥 미워하거나 숨길 필요가 없다.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조금씩 굳건히 나아간 그 시간이 지금의 내가 더 나은 연기 선생이 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선물해 줬다고 믿는다. -80~81쪽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면 지루한 시간을 견디고, 그렇게 기본기를 세우고, 성실하게 축적의 힘이 발현될 날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또 한 번 배웠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 연기를 배웠을 때의 흥미로움은 잠시였고 곧 지루한 과정을 맞닥뜨려야 했지만 그런 지루함에도 내성이 생길 때쯤 또 다른 새로움의 문이 열리곤 했다. 무엇이든 그 특유의 매력을, 배움의 즐거움을 알기 전까지는 길고 긴 지루한 과정을 견뎌야만 한다. -23쪽
예술가들은 매일 재능이라는 단어와 씨름한다. 내가 정말 재능이 있는 건지, 하루에도 수십 번 이 혹독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상처받기 일쑤다. 재능을 계량하는 게 가능하긴 할까? 재능은 어느 한 가지로 단정 지을 수 없다. 인내심이 있는 것도, 소통 능력이 좋은 것도, 노력하는 것도 재능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노력과 재능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이제 그만 멈출 때가 됐다. -42쪽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닫는다. 누구나 배우가 될 순 있지만 아무나 배우가 될 순 없다고. 연기를 대하는 꾸준한 진심, 그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쌓아 온 성실한 시간이 밑바탕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것을. -58쪽  
나는 요즘 탁구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그래서 화려한 실력을 뽐내고 있느냐 묻는다면, 전혀 아니다. 계속 같은 동작만 반복한다. 이쯤 되면 더 나아갈 법도 한데 싶어 답답하다가도 현재의 과정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기본이 되어야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23쪽     


책에서 배우라는 일은 “의도를 마음껏 들켜도 되는 일”이라고 표현한 점이 흥미로웠다.


인간관계에서 적당히 보여 주고 적당히 숨길 줄 아는 사람들은 주변으로부터 대부분 좋은 평판을 듣는다. 중용은 삶을 살아가는 지혜다. 그러나 배우는 중용과 살짝 거리를 두어야 한다. 배우는 연기할 때 배역의 의도, 즉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마음껏 ‘들켜 줘야’ 한다. 그래야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의도를 마음껏 들켜도 되다니…. 심히 재미있는 작업처럼 보인다.
배우는 현실에서든, 연기할 때든 의도를 드러내는 방법을 영리하게 익혀야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매 순간 나와 타인 사이의 분위기를 읽어 내는 힘을 길러야 하며 작품을 볼 때도 더 날카로운 눈으로 봐야 한다. -129쪽     
솔직한 생각은 배우에게 대본 해석 능력과 캐릭터를 파악하는 기준점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 부족한 나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질투 앞에, 거절 앞에 솔직해지는 것 역시 배우로서의 삶을 살아 나가는 데에 아주 중요한 태도다. 기꺼이 솔직해질수록 더 많은 가능성이 생겨난다. -153~154쪽


내 일에 적용하면 좋을 태도에 대해서도 배웠다. ‘배우’와 ‘작품’을 ‘편집자’와 ‘책’으로 치환해 보았다.


 배우는 작품이라는 여행지의 가이드와 같다. 가이드는 직업 정신을 가지고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며 여행객들이 여행지를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배우 또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는 작품을 흥미롭게 만드는 다양한 기술들도 습득해야 하고 관객 입장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눈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177쪽         

편집자는 책이라는 여행지의 가이드와 같다. 가이드는 직업 정신을 가지고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며 여행객들이 여행지를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준다. 편집자 또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집자는 책을 흥미롭게 만드는 다양한 기술들도 습득해야 하고 독자 입장에서 책을 바라보는 눈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을 보자마자 꼭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대학시절 만났던, 배우를 지망하는 언니에게 나보다 더 큰 힘과 울림을 줄 책이라고 생각했다. 언니와 저녁 약속이 있던 날 이 책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언니가 ‘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건넸다. 언니는 고맙다고 했다. 그 꿈을 아주 실낱같이 붙잡고 있는 중이라고 하면서. 나는 그 끈을 놓치지만 않으면 된다고 웃으며 답했다.

    

책은 이런 용도도 가지고 있다. 누군가 오래 간직해온 꿈에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용기 땔감을 불어넣어 주는 작지만 큰 도구, 그리고 그 꿈을 응원하는 기쁨을 누리게 해주는 단전부터 뭉클해지는 선물.    

 

촉감이 느껴지는 표지와 차분히 잘 정리된 뒷날개 글, 강조하는 문장이 부담 없이 읽히는 본문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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