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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ndys Apr 04. 2022

스물여섯, 서른하나


어느 날 친구와 수다를 떨다 대뜸 취미를 공유하는 사교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아직 모임의 실체는 없었지만 우리는 모임 이름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것에 동의했고 그 자리에서 바로 이름도 지어버렸다. 모임명은 ‘낭만내맘'. 26살, 점점 청춘의 낭만을 잃어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취준으로 현생에 치일지언정 낭만만큼은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간직하자는 바람을 담아 이름을 지었다.


사교 모임은 이름 말곤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낭만은 원래 그런 거니까. 우리는 우리의 낭만론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로 했다. 모임에는 친구의 친구, 내 친구의 친구들이 모여 총 7명의 낭만 예찬론자들이 모였다.


첫 모임 날. 나와 모임을 함께 기획한 친구는 <과일주 담그기, 친해지길 바라!>를 준비했다. 초면이라 어색할 수 있으니 함께 과일을 손질하고 과일주를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져보자는 취지였다. 몇 번의 모임 후에는 같이 만들었던 과일주를 마시며 더 친해질 수 있을 거란 큰 꿈을 꾸며 야심 차게 준비한 프로그램인 셈이다.

현실은 우리가 매끄럽게 진행될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갔다. 과일주를 담으려고 준비해온 유리병이 쨍그랑-하고 갑자기 깨져 수습을 해야 했고, 준비해온 재료가 모자라는 등 돌발 상황이 연속으로 발생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과 우왕좌왕의 연속이었다. 겨우 여덟 병의 과일주를 만들고 나니 벌써 해가 진 뒤였다.


그렇게 그날의 모임도, 과일주 만들기도 쫄딱 망한 줄 알았다. 첫 모임이 마지막 모임이 되는 줄 알았던 그때, 누군가가 “과일주 이름 짓기 콘테스트”를 제안했다. 데면데면했던 이들은 과일주 이름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서로 경쟁하며 갑작스럽고, 우연히 친해졌다. 그날 막판 뜨거운 열기 덕분에 이후에도 다행히 모임이 쭉 이어졌다. 자유연기하며 1인 상황극 하기, 3인 운동회, 등산 가기, 한옥마을 탐방, 같이 김밥 만들기, 평양냉면집 탐방하기 등등. 평소 해보고 싶었던 각자의 취미가 모여 모임에 낭만을 더했다.


낭만내맘(참고로 나중에는 재밌는 작당을 모의해 보자는 취지에서 모임명을 낭만 내 맘에서 ‘악당들의 작당'으로 개명했다.)을 시작한 지 반년이 조금 지났을 때였을까? 오래 지속될 거 같던 우리 모임에도 균열이 생겼다. 일정이나 취미의 취향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참석을 안 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던 것이다. 곳곳에서 불만이 새어 나왔다. 누구는 활동을 열심히 안 하더라, 누구는 어떻더라 같은 말들이 오해와 함께 쌓여갔다. 7명 중 한 명이 어떤 이유로 빈정이 상해 단톡방을 나간 걸 시작으로, 남은 사람들도 결국 이럴 거면 모임을 끝내자는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낭만을 찾으려 했던 7인은 다음 모임에 대한 기약 없이, 그렇게 흐지부지 끝을 냈다. 마지막 굿바이 파티에 참석한 친구 A와는 민감한 주제로 논쟁을 하다 결국 사이가 멀어졌다.


직접 주최하고 애정을 담아 운영한 모임이었는데 갑작스러운 끝이 아쉬웠다. 모임에 대한 책임감이 컸던 만큼, 나는 모임이 끝난 것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나에게로 돌렸다. 운영을 잘하지 못해서 그런 거 아닐까? 관계의 거리 조절을 못해서? 프로그램이 재미없었나? 만약 A와 그 주제로 얘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등등. 왠지 연인과의 이별은 당연하고 익숙한데, 친구들과의 이별엔 아직 서툰 나였다.


함께 공유해온 시간은 앞으로의 시간도 함께할 거란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함께 즐거웠던 시간이 이미 지나가버렸고,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었던 사람들과도 언젠가는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스물여서 일곱의 나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가까웠던 인연들이 멀어지는 걸 목격한 이후 또 멀어질게 두려워 새로운 모임을 만들거나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매우 조심스러워진 것은 내게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는 “영원히 함께일 것 같았던 그 '시절 인연'들, 그 시절을 사랑하는 건 시절 인연을 사랑했다는 뜻이다.”라고 말한다. 시절에만 유효한 인연이었다고 해서, 우리가 함께 보낸 그 시절이 찬란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라고. 영원히 함께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깝기에, 그 시절과 그때의 인연이 더 소중한 거라고 말한다.


낭만내맘이 끝나고,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스물여섯의 나도 나고, 서른하나의 나도 나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시간이 지나고 서른 한살이 되어보니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 좋았던 시절이 지나갔다고 해서, 낭만내맘 모임이 끝났다고 해서 내게 그 시간이 아주 의미 없었던 건 아니라는 것 말이다. 스물여섯의 한 페이지에 추억으로 자리 잡은, 시절 인연이 꼭 나쁜 건 아니라는 것 말이다. 그때 그 시간이 나에게 의미가 있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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