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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하영 Jan 08. 2019

이토록 사랑스러운 유령들

뭉그러진 얼굴, 서늘한 눈빛……. 지금까지 유령들은 대부분 원한에 가득 찬, 꿈에서라도 마주칠까 두려운 존재로 그려져 왔다. 그렇지만 정말 그게 전부일까?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듯, 다정하고 사람과 친해지고 싶어 하는 유령들도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을까? 그런 ‘튀는’ 생각에 퍼즐조각처럼 들어맞는, 어딘가 어설프지만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 두 명의 유령을 소개한다.

     

<레오, 나의 유령 친구>

(출처: Gallery Nucleus)
어느 봄날, 유령 레오의 집에 새로운 가족이 이사를 온다. (출처: Gallery Nucleus)
함께 지낼 생각에 잔뜩 들뜬 레오.

오랫동안 비어 있던 세모 지붕 집. 하지만 사실 그곳에는 꼬마 레오가 산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레오의 하루는 엎드려서 책도 읽고 먼지로 그림도 그리고 이따금 삐걱삐걱 낡은 목마를 타기도 하면서 조용하고 평화롭게 흘러간다. 나뭇가지 위로 꽃잎들이 수놓인 어느 봄날, 새로운 가족이 이사 오기 전까지는. 함께 살 사람들이 생겼다는 소식에 레오는 잔뜩 들떠 환영 파티를 준비한다. 따뜻한 홍차를 끓이고 바삭바삭 토스트도 굽고,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쪽지처럼 접어 예쁜 쟁반에 담아낸다.

하지만 레오의 친절은 오히려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을 겁먹게 할 뿐이다. 허공에 둥둥 뜬 쟁반을 본 사람들은 정리하던 짐을 집어던지고 욕실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가버린다. 집안의 유령을 쫓아내겠다며 목사와 심령술사를 부르기까지 한다. 미처 생각지 못한 반응에 어리둥절해하던 레오는 아무도 자신을 반기지 않는다는 사실에 풀이 죽고, 결국 스스로 집을 떠난다. 너무 오랫동안 집안에만 머물러 있었으니 이곳저곳 다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레오는 결국 스스로 떠돌이 유령이 되기를 택한다. (출처: amazon)
거리에서 마주친 그 누구도 레오를 알아보지 못한다. (출처 Gallery Nucleus)      

세상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근사해져 있지만 소중한 추억이 스며들어 있던 장소들은 사라지고 없다. 자주 가던 길모퉁이 과자가게는 어디로 갔는지 찾아볼 수 없고, 길을 물어보려고 말을 건 경찰관은 레오를 보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간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구도 레오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시내 한복판에서 레오는 가슴 한 가운데로 서늘한 바람이 한 줄기 지나간 것처럼 외롭다.



하루 종일 터덜터덜 돌아다니던 레오는 도시 위로 노을빛이 드리워질 즈음 길에서 혼자 놀던 제인을 마주친다. 처음으로 레오를 한눈에 알아본 제인은 대뜸 같이 놀자며 말을 걸고, 그 말 한 마디에 둘은 어느 새 친구가 된다. 상상력 넘치는 제인을 따라 동굴 속 용을 무찌르고 갑옷 입은 강아지와 똑똑한 왕실 고양이를 사귀며 레오는 점점 행복해진다. 그러나 제인이 저를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상상친구로 여긴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후, 레오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진짜 친구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지난번처럼 또다시 혼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한다.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그림책 작가인 맥 바넷이 쓰고 크리스티안 로빈슨이 그린 이 작품은 서로 다른 두 꼬마가 친구가 되는 과정을 아주 사랑스럽게 그려낸다. 레오는 세상 경험도 적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꼬마 유령이지만, 사소한 반응 하나하나에 쉽게 상처받고 감동 받으며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일까. 제인이 레오를 알아볼 때와 유령이라는 고백을 듣고도 태도를 바꾸지 않을 때, 우리는 레오만큼이나 크게 감동을 받는다. 인간관계도 쇼핑할 때처럼 이것저것 비교하고 따져보는 요즘 사회에서 제인은 전설 속 요정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꿈꾸지만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존재 말이다. 만약 ‘내게도 제인 같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 막연히 제인을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먼저 누군가의 제인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어찌됐든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면 향긋한 홍차와 따끈한 토스트 냄새를 풍기며 친구가 된 것을 기념하는 레오와 제인 틈에 슬며시 끼어들고 싶어지는 책이다.

     

<할아버지 집에는 귀신이 산다>


집들이 언덕을 따라 서로 등을 기대고 붙어 있는 부산의 작은 달동네. 이곳은 할아버지의 지난 오십 년간의 삶이 곳곳에 묻어 있는 곳이다. 함께 사는 가족은 없지만 라디오와 신문을 친구 삼아 아침마다 비질을 하고 화분에 물을 주며 묵묵히 삶의 궤적을 이어가는 곳.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특별한 일이라고는 딱히 일어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이따금 바람 한 점 없는데도 신문이 저 혼자 펄럭이고 누군가가 쳐다보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는 걸 빼면.

     

넘어져 기절한 이후, 할아버지의 눈에는 귀신이 보인다. (출처: 그림책박물관)


어쩌면 그날도 다른 날과 똑같은 하루가 될 수도 있었다. 평소처럼 방바닥의 먼지를 닦으며 하루를 시작하던 할아버지가 무언가에 발이 걸려 꽈당, 넘어지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린 할아버지의 눈에는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턱수염을 기르고 나막신을 신은, 언뜻 보면 푸르스름한 연기 같은 유령이다. 소리도 지르지 못할 만큼 놀란 할아버지에게 더 놀라운 진실이 밀려온다. 지금껏 살아온 집이 이 유령의 무덤이었고 지난 오십 년간 기묘한 동거를 해 왔다는 것. 그제야 할아버지는 이 마을이 그 옛날 이름 모를 일본 사람들의 공동묘지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연결시킨다.

     

(출처: 꿈교출판사 네이버 블로그)
(출처: 꿈교출판사 네이버 블로그)


당황한 할아버지 앞에 유령은 다짜고짜 신문을 들이민다. 신문에는 일본 사람들이 조상의 유골을 찾으러 이 마을에 왔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자신이 위치를 후손들에게 알려주면 얌전히 떠나겠다는 유령의 말에 할아버지는 재빨리 집안 곳곳을 뒤져 댓돌로 쓰이던 비석을 찾아내지만, 그곳에는 유령의 것이 아닌 낯선 이름이 적혀있을 뿐이다. 고향으로 돌아갈 꿈에 부풀어 있던 유령은 깊은 상심에 빠지는가 싶더니 자신의 비석을 찾아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죽기 전에 묻어둔 은을 몽땅 주겠다는 설득이 먹히지 않자 세숫물이며 거울 속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천장에서 불쑥 내려오는 식이다. 결국 할아버지는 무서운 것보다 귀찮은 마음에 비석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하고, 유령은 그 어느 때보다 해맑은 얼굴이 된다.   

     

그렇게 비석을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출처: 꿈교출판사 네이버 블로그)      


그러나 아무리 계단을 오르내리며 골목 구석구석을 살펴도 유령의 비석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결국 지쳐버린 할아버지는 좀 쉬어야겠다며 평상에 앉는다. 유령도 잔뜩 풀이 죽어 그 옆에 따라 앉는다.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인지 묻자, 유령은 부산의 일본인 마을에 돈을 벌러 왔다가 병에 걸려 다시는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해 준다. 할아버지는 유령의 이야기에서, 3.8선이 그어지는 바람에 평생 가족을 그리워하게 될 거란 것도 모르고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오던 열다섯 살의 자신을 본다. 곧 따라가겠다며 등을 떠밀던 가족들의 얼굴이 각각 아른아른 떠오른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고, 묘한 유대감이 그 사이에 피어오른다.

     


어린이책 작가 이영아가 쓰고 그린 이 작품은 실제로 조선시대 때 무역 일을 하다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일본인들이 묻힌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훗날 갈 곳 잃은 실향민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지금은 공동묘지였다는 걸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집이 빼곡하게 들어섰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파른 계단이나 담벼락, 화분 받침대 등 곳곳에서 비석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서늘한 괴담을 연상시킬 법도 한 이 이야기가 무섭기보다는 아릿하게 다가오는 건,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름 없는 존재로 타국에 남은 사람들과 누군가의 묘지 위에 터를 잡을 수밖에 없었던 실향민들의 아픔이 녹아 있기 때문 아닐까.

후대인들에게 역사는 책에 적힌 문장 몇 줄일 뿐이지만, 그 시기를 온몸으로 겪어낸 이들에게는 아무리 길고 화려한 문장으로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시간일 것이다. <할아버지 집에는 귀신이 산다>에서는 그 시간의 한 귀퉁이만이라도 따뜻하게 보듬으려는 작가의 마음결이 느껴진다. 제목이 풍기는 분위기에 비해 비교적 잔잔하게 흐르는 이 작품은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사람이든 유령이든, 우리는 우리가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 그렇지만 이렇게 따뜻한 그림책들을 보고 있자면 아무려면 어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서로가 서로의 과거이자 미래라는 점에서 사람과 유령은 하나의 연장선상 위에 놓인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유령에게 꼭 공포심을 가져야만 할 이유가 있을까. 앞으로는 유령을 바라보는 좀 더 다양하고 다정한 시각이 많아져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Writer

전하영

  

언어를 뛰어넘어, 이야기에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마음속에 새로운 씨앗을 심어주고, 새로운 세계로의 통로가 되어주니까. 그래서 그림책에서부터 민담, 괴담, 문학, 영화까지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있다. 이렇게 모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중. 앞으로 직접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며 더 풍성하고 가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나가기를 꿈꾸고 있다.


*이 글은 인디포스트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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