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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러버 Oct 31. 2024

마음을 삼키다

침묵의 의미

4학년을 담임할 때다. 

중학년으로 아주 예쁜 시기인데, 유난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 해였다. 학생들과의 상담도 학부모와의 상담도 많이 했던 해로 기억한다. 

햇빛이 좋은 가을 어느 날, 야무지고 차분한 여자 친구 A의 어머니가 상담을 신청했다. A는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학습 태도도 좋아 나무랄 데 없이 학교 생활을 하는 친구여서 특별한 상담이 필요하지 않았다. 

'학교 생활이 궁금했을까? 아니면 담임인 내가 알아야 할 일이 있을까?' 생각하며 상담 준비를 했다. A의 학교 생활 자료들을 모아두고 나도 다시 한번 A를 생각하고 있었다. 


똑 똑 

교실 문을 열고 A의 어머니가 들어왔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들어와 내가 마련해 둔 상담 의자에 앉았다. 어쩐 일인지 A의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부담스럽지 않은 엷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순간 당황했지만, 준비한 대로 A의 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부지고 꼼꼼해서 자기 할 일도 잘하고, 발표도 곧잘 한다.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여리고 약한 친구들을 잘 챙긴다. 학습 태도도 좋다고 아이의 장점을 이야기했다. A의 엄마는 고개만 연신 끄떡였다. '그렇군요..'라는 말 한마디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상담이 끝날 때까지 말 한마디 없이 있다가 고개 숙여 인사하며 교실을 나갔다. 


'상담을 왔는데 말을 한마디도 안 하다니...'

좀 의아한 날이었다. 아이에 대해 궁금한 것은 없었던 걸까?

그날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었다.


한 해가 지났다. 정이 들만큼 든 아이들을 5학년으로 올려 보내고 나는 다시 3학년 담임이 되었다. 나는 늘 그 해 아이들에게 집중한다. 사랑과 관심도 우리가 지내는 1년 동안 충실히 하자는 주의다. 학년이 올라간 아이들도 새 학년 새 반에 잘 적응하는 것이 내겐 가장 희소식이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2학기가 되었다. 복도에서 마주친 A의 새 담임 선생님이 내 옆으로 다가와 A의 어머니가 암투병 중이셨던 거 알고 있었냐고 물었다. 얼마 전에 운명을 달리하셨다고. '어...업'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1년 전 상담을 왔던 그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세상에...' A 어머니와 상담했던 그날 그 장면이 그 엄마의 모습이 한순간에 이해되며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엄마는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었던 거다. 

입을 열면 눈물이 날 거 같으니까...

엄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말도 삼키고 눈물도 삼켰다 그리고 마음도 삼켰다

그렇게 애써 미소만 짓다 돌아간 것이다. 


A는 늘 단정하고 가끔은 야무짐을 넘어 세 보이는 여자 친구였다. 나를 만났을 때가 고작 11살인데... 아픈 사연이 없는 아이처럼 학교생활을 한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우리 A를 만나기 전... 나도 암투병 하던 우리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렸다. 나는 두 아이를 키우며 학교 생활을 했고, 정신없이 지내는 것이 오히려 좋았다. 시간이 있는 거 보다 바쁜게 나았다. 동료들과 일을 할 때도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그 속에서 함께 어울려 일했다. 가면을 쓴 채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상실 그리고 슬픔. 그 슬픔의 소용돌이에 들어가면 헤어 나올 힘이 없어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병이 났다. 그러나 갓난 쟁이를 돌보며 슬프고 힘든 엄마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울음을 삼켰다. 지나고 보니 내 감정에 충실한 것이 강한 것이었다. 아프고 슬플 때는 우는 거라고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것이 더 바른 교육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말이다. 엄마가 마음이 아프고 슬픈데 그걸 참는걸... 아이라고 모를까? 아프고 힘들 때는 그 감정을 쏟아내는 게 맞다. 


마흔 살이 넘은 나와 12살 우리 A...

우리는 둘 다 가면을 쓰고 지냈다. 


나는 지금도 A를 생각한다. 그리고 A의 엄마를 생각한다.

마음으로 그들의 안녕을 빈다. 


그리고 A가 언젠가 한 번은 목놓아 펑펑 울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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