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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러버 Oct 19. 2023

건강한 1학년

너의 모든 것을 응원해


어제 방과 후 수업을 끝내고 찬누리를 데리러 갔더니 학교 운동장에 늘어져 앉아 있었다. 일어나 어서 가자고 했는데 허리가 아프다면서 운동장에 드러누워버렸다. 잔디 운동장이라 모래가 묻진 않았지만 운동장에 벌러덩 누워버리다니 어서 일어나라고 호통을 쳤다. 허리가 아파서 가방을 못 들겠다고 했는데 엄마도 어깨가 아파서 네 가방 못 들어준다고 그냥 네가 메라고 하고는 집까지 갔다. "허리 아프면 태권도 학원도 못 가겠네?"하고 물었는데 태권도장은 가겠다고 하길래 괜찮은 줄 알았다. 집에 오자마자 가방을 벗어던지고 손을 씻는 건지 물에 손을 갖다 댄 건지 모를 속도로 손 씻기를 마치고는 소파로 돌진했다. 그렇게 잠깐 누워 쉬는가 했는데 어느새 잠이 들었다. 그래서 보니 미열감이 있어서 태권도를 갈 수 있겠냐고 물었는데 못 가겠다 해서 오늘은 쉬자고 했다. 


한 시간쯤 자고 일어나 머핀 두 개와 우유를 야무지게 먹고 온라인영어도서관에 접속해 영어를 들었다.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한글 방송이 들려서 방으로 들어가 보니 옥토넛을 틀어 놓고 침대에 누워 보고 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는데 자기 힘들어서 누워서 한글을 볼 수밖에 없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제야 체온을  재 보았는데 38도다. 해열제를 챙겨 먹이고 병원을 가보자 했는데 병원 가기를 그렇게 싫어한다. 주사를 맞는 것도 아니고 힘든 검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열이 나고 머리가 어지럽다면서 코로나 검사나 독감 검사를 할 수도 있는데 자기는 그것이 싫단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이제 8살 어린이도 열나서 병원 가면 코로나 검사나 독감 검사를 한다는 것을 익히 안다. 독감 검사는 입에서 채취하는 거라 괜찮은데 코로나 검사는 코를 찌르는 거라 싫단다. 그래서 병원을 안 가겠다고 버텼다. 하~~~  일단 해열제를 먹여서 열이 내리는지 안 내리는지를 지켜봐야 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다행히 열이 내렸다. 코로나는 아닌가 보다. 


머리가 아프니 속도 안 좋았는지 저녁밥도 생각이 없다고 벌게진 얼굴로 침대를 오가며 여기 누웠다 저기 누웠다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 그림책을 읽어 달라고 하길래 <두근두근 편의점> <오싹오싹 편의점>을 읽어 주었다. 요즘 읽고 있는 <흥부전>을 읽는 건 어떠냐고 물었는데 그건 아니란다. 아무래도 생소한 단어가 많은 책이라 아직은 낯선가 보다. 그림책을 읽어주는데 잠이 든 거 같아 그만 읽으려 했더니 자기 듣고 있다고 계속 읽으라고 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이야기가 다 떠오르니 듣고 싶다고 말이다. 아이 옆에 누워 그림책을 읽어 주었다. 두 권을 다 읽기 전에 깊이 잠이 들었다. 계속 열이 난다. 병원을 갈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엄마 마음도 모르고 찬누리는 시름시름 잠이 들었다. 


밤 12시가 다 되어 남편이 들어왔다. 찬누리를 안방으로 옮겨 주었다. 남편도 찬누리의 열을 느껴서 뜨겁다고 해서 다시 열을 재어 보았다. 38.9도다. 해열제를 다시 먹였다. 잠결에 눈도 못 떴지만 억지로 일으켜 세워 해열제와 시원한 보리차를 먹이고 재웠다. 그 와중에 자기 학교 과제를 안 해서 해야 된다고 했다. 아니야... 내일 아침에 몸이 좋아지면 과제하기로 하고 지금은 그냥 자야 된다고 말해 주고 잠을 재웠다. 


새벽에 찬누리가 나를 깨웠다. "엄마~지금 새벽인데 나 지금 과제하고 있어. 그런데 '봐' 어떻게 써?"하고 물었다. "'바'를 어떻게 쓰다니 그게 무슨 바야?" 하고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반이다. "아니, 혼자 과제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네가 쓰려는 문장이 뭔지 처음부터 말해봐."  "누나, 아빠, 엄마는 축구를 봤다. 봐 어떻게 쓰냐고?"


" 비읍에 오 아를 붙여서 써~ 그 밑에 쌍시옷!" 알아들을 리가 없는 찬누리다. "공책 가져와 봐" 그러고는 실눈을 뜨고 '봤'을 써 주었다. 그제야 아~하고 가서는 일기를 쓰고 다시 돌아와서 묻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나도 참 아이가 일어나 과제를 하면 벌떡 일어나서 도와줄 수 있을 텐데 눈을 감고 말해주거나 실눈을 겨우 떴으니 잠을 이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혼자 일기 쓰기도 끝냈다 말하고는 몇 시냐고 물어서 6시라고 했더니 자기는 더 자겠다고 했다.  몸을 일으켜 아이 상태를 확인하고 보리차 한 모금하라고 챙겨 주곤 아이도 나도 다시 잠이 들었다.  


7시 반에는 일어나야 되는데 알람 소리도 못 듣고 잤나 보다. 찬누리가 깨우는 바람에 일어나 보니 8시다. 게다가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다. 늦잠 잤는데 비마저 오니 마음이 더 분주했다. 아이들 수저와 물통을 챙기고 옷도 준비해 주고 보니 찬누리 몸에서 열이 많이 났다. 체온을 재보니 39도다. 안 되겠다. "찬누리~ 열이 너무 높아. 오늘은 학교에 안 가는 게 좋겠어." " 싫어, 나 학교 갈 거야." "이렇게 열이 나는데 학교 가는 건 아니지, 병원에 가봐야겠어." " 싫어 나 학교 가고 싶단 말이야."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 과제도 스스로 다 끝내고 아침 등교 준비까지 다 끝낸 찬누리가 기특했지만 차마 학교를 보낼 수는 없었다. 생각해 보니 본인도 몸에 힘이 없었던지 집에서 조금 쉬다가 병원에 가겠다고 했다. 엄마 생각도 비가 좀 그치면 가는 게 좋겠다고 말해 주었다. 

병원이 그렇게 싫은가? 

비가 그치고 열도 조금 내려서 다니던 소아과에 진료를 보러 갔다. 가는 도중에 자기는 아직 마음에 준비가 안되었으니 병원 옆 도서관에서 책을 좀 읽다가 가고 싶다고 했다. 도대체 감기 걸려서 진료받는데 누가 보면 중증 환자인 줄 알겠다. 마음의 준비까지 해야 하고... 아이의 요구대로 도서관에 들러 그림책 한 권을 읽었다. <팥빙수의 전설>이 재밌다고 하더라며 책을 검색해 달라고 했다. 다행히 소장 중이어서 책을 찾아볼 수 있었다. 도서관에 드러누워 책을 읽더니 재밌네~ 하고는 다른 책도 더 읽으려길래 그만 병원에 가자고 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했다 싶었는지 순순히 따라나섰다. 병원에 가니 감기 환자들이 많이 와 있었다. 학교를 못 간 초등학생들도 더러 보이고. 진료받는 것은 3분 정도였는데 병원 가기까지 3시간은 기다렸나 보다. 해열제를 먹고 열이 내렸다고 하니 코로나검사나 독감 검사는 하지 않았다. 내일까지 계속 열이 오르면 검사해 보자고 해서 약을 처방받아 나왔다. 

한글을 겨우 떼고 학교에 가서 걱정을 했는데 이제 한글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한글을 읽으면 쓰는 것도 곧잘 할 줄 알았지만 아직 쓰는 것까지는 자연스레 연결되지 않는 것을 보고 마음이 쓰였다. 그렇지만 '한글을 잘 읽고 있으니 쓰는 것도 때가 되면 터득하겠지~'하고 또 때를 기다리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오늘 새벽에 학교 과제를 해야 한다고 일어나서 혼자서 과제하고, 모르는 글자는 자는 엄마를 깨워서라도 물어서 쓰고, 아픈 몸으로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학교에 가겠다고 하는 걸 보니 그간 했던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1학년이 스스로 과제 챙기고 열이 나도 학교에 가고 싶을 만큼 학교에 잘 적응을 했으면 된 거 아닌가. 이것으로도 족하다. 


건강한 1학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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