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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Feb 08. 2024

삶은 어떻게든 계속 된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만약 이 책의 제목이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큐레이터입니다’였다면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에 통달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은 정직하고 때론 따분하다. 경비의 일이 전문적이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작품과 한 발짝 떨어져서 작품에 대한 ‘앎’보다는 바위 같은 ‘시간’으로 공간을 지키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는 것이다. 주목받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귀해진 까닭이다.


완벽한 고요가 건네는 위로


이 책의 저자는 사랑하는 형을 잃고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린다. 스물다섯, 전도유망한 직장이 있지만 그곳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치열하게 살아갈 동력도 마음도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우연히 가족들과 방문했던 메트(메트로폴리탄의 줄임말)에서의 첫 기억을 떠올린다. ‘온종일 오로지 아름답기만 한 세상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건 그럭저럭 해낼 만한 것이다.


내가 만약 덜 ‘대단한’ 일을 하고 있었더라면 그동안 틈틈이 내 생각들을 흐릿하게나마 적어두었을 테고, 영감을 주는 주제가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과감히 도전해 글을 써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도리어 이런 빅 리그였기에 내 생각에 스스로 족쇄를 채웠고 야망은 이상하리만치 줄어들었다.
- 4장 사치스러운 초연함으로 95p


형의 죽음이 아니었어도 ‘나’는 언젠가 ‘대단한’ 일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으리라 생각한다. 모두가 선망하는 직업을 가지고 만족할 만한 봉급을 받고 적당히 남들을 따라 하면 그럭저럭 하루가 흘러가는 안정적인 삶 속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기란 쉽지 않다. 만약 이 직업을 그만두게 된다면 수많은 ‘왜’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보통은 ‘왜’라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다. 내가 상상했던 삶이 아니라는 말을 하게 된다면 모두가 나를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라고 딱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곡물 수확,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


영원히 경비원으로 일하고 싶다고, 다른 일을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너무도 단순하고 직관적인 일이고, 뭔가를 계속 배울 수 있고, 무슨 생각이든 전적으로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일이라서 그렇다고 이유를 덧붙인다.
- 8장 푸른색 근무복 아래의 비밀스러운 자아들 179p


나 역시 모든 것에 진절머리가 났을 때 돈이 적어도 좋으니 아무와도 관계 맺지 않고 독립적으로 내 일만 할 수 있는 일을 바랐다. 누구와 경쟁할 필요도 없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일이 필요했다. 일에 대한 보람 따위는 바라지 않았다. 그저 기계처럼 버티는 시간이 돈으로 환산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런 걸 내가 원하지도 않았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게 됐다. 그저 나는 지친 상태였고 그 응석을 받아줄 일자리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돈은 벌어야 했으니까 일을 했고 그런 일을 하고서야 ‘인정’과 ‘보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일하면서 나는 메트라는 웅장한 대성당과 나의 구멍을 하나로 융합시켜 일상의 리듬과는 거리가 먼 곳에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상의 리듬은 다시 찾아왔고 그것은 꽤나 유혹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가 영원히 숨을 죽이고 외롭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8장 푸른색 근무복 아래의 비밀스러운 자아들 191p


나에게는 ‘나는 스스로가 영원히 숨을 죽이고 외롭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라는 문장이 매우 슬펐다. 안타까움과는 거리가 먼 슬픔이었다. 그것은 오히려 기쁨과 가까운 슬픔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를 과거에만 머물게 했던 겨울이 지나고 비로소 봄이 온 것이다. 평생 외롭게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야 ‘나’는 이제 다시 타인의 삶과 부대끼며 살아갈 마음이 생긴 것이다.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이해하려고 할 때


이 책은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메트에서의 일은 육체적으로 힘든 면도 있었지만 저자에겐 멋진 작품들과 오랜 시간 교감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 오랜 시간 메트에서 근무하며 생겼던 에피소드와 관련된 작품들을 책의 각 장마다 소개하는데 그가 소개하는 몇몇 작품들은 텍스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자가 이 책에 굉장한 애정을 가지고 공들였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이 부분이었다. 부록에서는 본문에서 언급한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도록 작품의 취득 번호를 달아 놨는데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 놓은 덕분에 작품을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았다. 


여름의 베퇴유, 클로드 모네


<여름의 베퇴유>라는 제목의 풍경화가 시야에 가득 찰 정도로 바짝 다가선 나는 내 눈이 이 허구의 세계를 실감 나게 받아들인다는 걸 확인한다. 마을과 강 그리고 강에 떠 있는 마을의 물그림자가 보인다. 다만 모네의 세계에는 흔히 아는 햇빛 대신 색채만이 존재한다. 이 작은 우주의 훌륭한 조물주답게 모네는 햇빛을 나타내는 색깔들을 펼쳐두었다. 펼치고, 흩뿌리고, 엄청나게 숙달된 실력으로 끝없이 반짝이는 모습을 캔버스에 고정해두었다. 오랫동안 보고 있어도 그림은 점차 풍성해질 뿐 결코 끝나지 않았다.
- 5장 입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드문 순간 117p


모네의 <여름의 베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 찬란한 풍광을 직접적으로 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마저 들었다. 클릭 몇 번으로 명화를 쉽게 눈에 담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작품을 실물로 볼 때 느껴지는 아우라는 확실히 다르다. 지금도 아름다운 이 그림이 과거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그저 우리에겐 ‘천재’로만 알려져 있는 미켈란젤로의 일화도 흥미롭다. 지금은 물론 당대에도 최고의 예술가였던 그도 끊임없이 불평하고 또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일궈낸 모든 작품들이 무엇 하나 허투루 만들어지지 않았다. 80대에 접어들어서 사소한 실수로 성 베드로 성당의 완공이 늦어지게 된 일로 “수치심과 슬픔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라고 자책했다는 일화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근현대 미술 전시관에 전시된 페트웨이의 퀼트 작품은 작품에 삶이 녹아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그녀는 소작농이었고 작품을 만드는 일보다 생업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퀼트는 노예해방 이전부터 있었던 오래된 전통이었고 추위를 막기 위해서 낡은 옷과 직물들로 퀼트 이불을 만들어야만 했다. 퀼트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었다.


지붕과 벽돌공 패턴, 세로줄 퀼트, 루시 T 페트웨이


나는 그 퀼트 작품이 봄바람에 펄럭거리는 장면을 상상해보려고 애쓴다. 다양한 톤의 하얀색, 하늘색, 청록색으로 만들어진 퀼트다. 흰색에도 여러 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몰랐지만 그녀는 햇빛에 바래고 입어서 해진 낡은 옷가지에서 구해낸 천 조각들로 그런 효과를 내는 데 성공했다. 미술 재료상에서 구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얻은 색깔들이었다.
- 12장 무지개 모양을 여러 번 그리면서 297p


삶과 예술이 어우러져 나부끼는 퀼트를 상상하면 아름다우면서도 숙연해진다. 햇빛이 산란하는 색채를 캐치한 모네의 풍경화와 햇빛에 바래 낡아버린 색채를 품은 퀼트 조각이 대비된다.


이 책은 몹시 솜씨 좋게 기워낸 퀼트 같다. 다만 작가에게 이 시간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 살아가기 위해 웅크렸던 몸 위로 퀼트 이불이 덮인다. 삶은 어떻게든 계속 된다는 점에서 억울하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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