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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 Feb 27. 2022

아버님의 1주기가 지나고


아버님을 처음 만난 곳은 송내역 안에 있는 엔젤리너스였다. 나는 한껏 긴장한 채로 지하철역 안에 완전한 점포도 아닌, 모든 곳이 개방된 형태의 카페 안에서 남자 친구의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지금 생각해보면 나만큼이나 본인의 아버지를 만나는 것에 긴장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버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모르시겠지만 우리 두 사람을 이어준 장본인이시다. 

남편과 아직 친구 사이던 시절이었다. 그날의 분위기가 아직도 선명하게 생각난다. 카페의 2층에는 우리 밖에 없었고 큰 창으로 오후의 햇빛이 카페 구석까지 따뜻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남편이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그 이야기는 오래된 친구 사이도 아니고, 회사에서 알게 된 나에게 꺼내기는 쉽지 않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어쩌면 이 친구와 결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린 조금 닮은 구석이 있구나, 내 이야기를 해도 이해받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아버님은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살아오신 분처럼 보인다. 가족을 위해 일을 해서 생계를 책임진다거나,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유한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 젊은 시절에는 있는 힘껏 호방한 삶을 살았지만 그 재산은 곧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있는데 누구 밑에 가서 일을 하는 것이 아버님에게는 영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 같다. 남편이 기억하는 한 아버님은 평생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은 새 학기가 시작되면 적어가야 하는 가정환경조사서가 싫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직업란에 적을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아버님의 특별한 점은 단순히 일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아니다. 아버님은 수집력이 있으셨는데 그 수집 품목은 옷과 신발이었다.

남편이 그날 카페에서 했던 이야기는 "우리 아버지가 옷을 좋아해"였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아버님이 멋쟁이 시구나. 우리 아버지도 옷 좋아하셔."라고 했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온 집에 옷이 쌓여있다고. 소파, 식탁 의자, 각 방마다 아버지 옷이 가득 쌓여있고 아버지 신발이 방문을 막아서 문을 열 수 없는 지경이라고.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봤던 어떤 장면들을 떠올렸다.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는 것도 일반적은 반응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버님의 이야기 때문에 남편과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아버님이 우리의 만남에 크게 일조하신 것은 맞다. 


그래서 시부모님 모두 아들이 결혼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여자 친구를 데려오겠다고 해도 집으로 부르는 것만은 한사코 거절하셨다. 할 수 없이 어머님은 인천의 한 백화점 안에 있는 사보텐에서, 아버님은 지하철역 카페에서 뵙게 된 것이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아버님은 어떤 분일까? 나름 많은 상상을 했었다. 화려한 옷차림을 한 중년의 남자를 상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버님은 내 생각보다는 평범하고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나타나셨다. 키도 크고 풍채가 좋은 편이었다. 어색한 인사가 끝나고 나는 그저 앞에 놓인 커피 잔만 바라보고 있었다. 

"결혼한다고 해도 뭐 해줄 게 없어서..."

라고 운을 떼셨던 것 같다. 괜찮다고. 저희가 알아서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아버님은 갑자가 옛날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본인의 집이 과거에 얼마나 잘 살았는지, 언제 적인지 알 수도 없는 옛날이야기에 아버님은 심취하셨다. 어색한 분위기가 될까 봐 고민했는데 아버님이 이야기를 계속하시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남편의 얼굴은 점점 굳어져갔다. 

그날이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결혼을 앞두고 그래도 한 번은 시댁에 가봐야 되지 않나? 어떻게 한 번도 방문해보지 않고 결혼을 하겠나 싶어서 결혼을 직전에 앞두고 날을 잡아 시댁에 갔었다. 말로만 듣던 집안의 풍경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30년이 넘은 아파트의 내부는 많이 낡아있었다. 벽지도 색이 바래고, 장판도 옛날 장판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남편이 말했던 그 옷들이었다. 온 집에 그야말로 옷이 쌓여있었다. 이것은 손님이 온다고 치울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한 의자에 그렇게 많은 옷을 겹쳐서 쌓을 수 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의자마다 옷이 쌓여 있었다. 모두 똑같아 보이는 검은색 구두도 방문 끝까지 탑처럼 쌓여 있었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들어갔다. 그날 시댁에서 첫 식사를 하고 나와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옳은 결정을 한 걸까? 

남편은 아마 수많은 생각이 스쳐가는 내 얼굴을 봤을 것이다. 남편은 자신은 결혼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자기 집을 보면 누구라도 결혼할 수 없을 거라고. 내 눈치를 살피는 남편에게 나는 의연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썼다. 



결혼을 했지만 아버님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었다. 생신이나 명절에 가도 아버님은 우리 얼굴을 보고 휘리릭 집을 나가기 일쑤였다. 오히려 아버님이 계시면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라서 마음이 어려워지기도 했다. 


그런 아버님이 2020년 암 진단을 받으셨다. 병원을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아버님과 남편은 크게 싸운 이후로 냉랭할 대로 냉랭한 상황이었는데, 결국 상황이 악화될 만큼 악화된 이후에야 아버님은 병원을 찾으셨다. 그렇게 풍채가 좋으셨던 아버님은 순식간에 50킬로그램대까지 살이 빠져버렸다. 완전히 말라버린 아버님을 뵙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병원에서 퇴원하는 아버님을 모시러 갔던 날 아버님은 냉면이 드시고 싶다고 하셨다.  그것이 아버님과 내가 먹은 마지막 식사였다. 결혼한 지 9년 만에 그렇게 오래 아버님과 식사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2021년 1월 아버님은 돌아가셨다. 아버님의 모습을 보고 온 이후에 남편은 언제든 이런 전화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날 새벽 1시 침대 위에서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남편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내가 전화를 받았는데 어머님이 당황해서 횡설수설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일단 119를 부르기로 하고 우리도 바로 뒤쫓아가겠다고 했다. 새벽 1시에 인천대교를 달렸다. 코로나로 응급실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 다음날 아버님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간호사는 중환자실에서 필요한 준비물을 몇 개 적어줬다. 우리는 티슈나 성인용 기저귀 같은 것을 사서 다시 병원으로 갔다. 하지만 그 물품들은 한 번도 뜯어보지 못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이틀도 되지 않아 아버님은 패혈증으로 돌아가셨다. 


9년의 시간 동안 아버님과의 추억은 거의 없었고, 결혼 생활을 하면서 아버님을 원망한 적이 많았다. 아버지에 대한 남편의 원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고, 그것은 아주 오래 동안 풀 수 없는 매듭처럼 꽉 묶여 있었다. 하지만 그 매듭을 풀 시간도 없이 아버님은 너무나 황망하게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남편은 오랜 시간의 미움도 원망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모든 게 다 허무해졌다고 말했다. 

비난받을 마음이겠지만 나는 과연 아버님이 돌아가셔도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생각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이 있다지만 며느리는 고사하고 아들에게마저 애정을 표현하는 법을 잘 보지 못했기 때문에 너무 덤덤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었다. 

장례식이 시작되고 누군가는 계속해서 무엇인가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하고, 손님을 모시고 움직여야 했다. 외동아들인 탓에 그 일을 할 사람은 나 밖에 없었고 나는 업무를 지시받은 직원처럼 열심히 하나하나 미션을 수행했다. 상복을 입은 채로 정신없이 돌아다니다가 염을 하기 위해 들어간 곳에서 수의를 입은 아버님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통곡에 가까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얼마 전 아버님의 1주기를 맞았다. 아버님을 보내고 1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남편은 가끔 아버님 이야기를 했다. 아버님은 오히려 살아계셨을 때 보다 돌아가신 후 더 우리에게 자주 생각나고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분이 됐다. 안타깝게도. 

남편이 아버님 이야기를 할 때의 얼굴은 참 쓸쓸하다. 어제도 우리는 저녁을 먹다 아버님 이야기를 했다. 아버님 이야기를 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면 늘 눈물이 난다. 오랜 시간 미워했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 왜 그랬는지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한 번도 물어보지 못했던 사람. 이제는 더 이상 어떤 답도 들을 수 없고 그 답도 중요하지 않아 졌다. 남아있는 사람은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아버님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아버님이 내 이름을 불렀었다. 

그때 알았다. 아버님이 내 이름을 부른 게 처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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