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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 Mar 19. 2022

1톤의 옷을 남기고 떠난 사람


[토니타키타니]라는 영화가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 소설로 만들어진 영화다. 이 영화에는 끊임없이 옷을 사들이는 여자가 나온다. 감당하기 힘들 만큼 옷을 사는 아내에게 절제를 권유했던 남편은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집에는 그녀가 사들였던 어마어마한 양의 옷만 남았다. 남편은 아내가 왜 이렇게까지 옷을 사들였는지 이유를 끝내 들을 수 없었다.




아버님의 장례가 끝나고 나는 아버님의 유품 정리를 서둘렀다. 어머님과 남편이 서운해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는 결단을 내리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이 일은 진행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우선 나는 헌 옷 업체에 전화를 돌렸다. 그리고 날을 잡고 100리터 비닐봉지 100장을 사서 시댁으로 갔다. 


시댁에는 현관과 가장 가까운 곳에 방 2개가 있었다. 하나는 남편의 방이었고, 하나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남편의 기억 속에는 저 방문이 열린 적은 없었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문을 열 수 없었고, 열리지 않는 방문 앞에는 아버님의 구두가 방문 높이만큼 쌓이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났을까? 그 방문이 열렸던 적이 있었다. 어머님의 성화로 아버님이 큰 마음을 먹고 1톤 트럭을 불러 신발이며 옷을 정리하셨다고 들었다. 1톤 트럭으로도 온전히 다 방을 비울 수는 없었는지 방의 반 정도는 여전히 옷이 쌓여 있었다. 그 방은 오랫동안 봉인된 채로 있었기 때문에 세월이 고스란히 갇혀 있었다. 벽지는 까맣게 변해 있었고, 오래된 장식장 위에는 두께를 가늠하기도 힘든 먼지가 쌓여 있었다. 우리는 시간여행을 하듯 그 방에 들어가 신기해했다. 하지만 고작 몇 개월 뒤에 시댁에 갔을 때 그 방은 또 야금야금 채워지고 있었고, 문은 다시 닫혀 버렸다. 


남편에게 아버님의 옷은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짐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그 집에 옷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가족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줄어들었고, 옷이 사는 곳에 사람이 얹혀사는 것 같은 모양이 되어버렸다. 언제 3명의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3명이 같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내가 집 정리를 서두른 것은 남편에게 그것이 얼마나 무겁고 힘든 짐이었는지를 알기에 지체하지 않고 그 짐을 벗어버리게 해주고 싶었다. 어머님도 그 옷들이 그대로 있다면 그 집에 계시는 내내 편치 않으실 테니. 


옷의 양이 워낙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온 가족이 비닐봉지에 옷을 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쓸만한 옷이나 상태가 좋은 옷은 따로 빼서 파는 게 어떨까? 했지만 분류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작하자마자 깨달았다. 담아도 담아도 옷이 줄어들지 않았다. 오래된 자개장롱을 열어보니 그곳에는 벨트와 안경, 넥타이가 또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정장과 코트, 점퍼와 셔츠, 까만색 정장구두와 부츠, 운동화, 등산화가 계속해서 쏟아졌다. 

100장의 100리터 봉투를 다 쓰고도 20개의 봉투를 더 썼다. 총 120 봉투에 옷이 가득 찼다. 헌 옷을 수거해가려고 오셨던 기사님은 끊임없이 봉투가 나오자 놀라고 말았다. 옷장사를 하시던 분이냐고 물었지만 다들 아무 말도 못 하고 웃기만 했다. 120 봉지는 1톤에 달했다. 오로지 옷과 구두, 운동화의 무게였다. 

옷이 빠지고 나니 집은 30년의 세월이 숨김없이 드러났다. 어쩌면 옷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고, 옷 때문에 한 번도 단장할 엄두를 못 냈기 때문에 집은 당연히 낡을 대로 낡아 있었다. 단순히 옷만 치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고, 싱크대를 새로 맞췄다. 아주 오래된 형광등을 모두 버리고 온 집에 전등을 교체했다. 마지막으로 금성 냉장고가 나가고 새로운 냉장고가 들어왔다. 


 어머님은 옷을 다 치우고 말씀하셨다. 

"평생 그렇게 옷을 사들이더니 갈 때는 내복 한 장 입고 갔어."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거동도 힘든 몸으로 바지를 줄이겠다고 세탁소에 방문하셨다고 한다. 평생에 걸쳐 거의 매일 옷을 사 오셨던 아버님은 왜 그렇게 옷에 집착하셨을까? 자개장롱 속에 있던 아주 오래된 옷들은 대개 정장이나 코트 같은 좋아 보이는 것들이었지만 몇 년 동안 급격히 늘었던 아버님의 옷은 시장에서 몇 천 원에 살 수 있는 저렴한 옷들이었다. 아버님이 하루에 세 번씩 옷을 갈아입으셔도 아버님이 사 왔던 옷들을 다 입어볼 수도 없었을 만큼의 양이었다. 당연히 한 번도 입어보지 않았던 새 옷들이 넘쳐났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에도 옷의 상태들이 꽤 깔끔한 것은 한 번도 빛을 본 적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살아야 하기에 추억을 정리해야 한다. 어머님은 거의 남김없이 아버님의 물건을 비우셨다. 집은 이제 소리가 울릴 만큼 휑해졌다. 평생 가장으로서 아내에게나 자식에게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 없는 남편이 밉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어머님은 아버님의 임종 직전 아버님께 가장 깊은 사랑 고백을 남기셨다. 

"난 그래도 당신이랑 살아서 행복했어. 당신도 행복했지?"

어머님의 그 말씀을 듣고 나는 놀라고 부끄러웠다. 왜 나는 어머님이 아버님을 미워했을 거라고 지레짐작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함께 한 동반자에게 어떻게 한 가지의 감정만이 있을 거라고 속단했을까? 어머님의 고백에 마음이 아파서 많이 울었다. 




이제 1년이 지났다. 어머님은 다시 밝고 씩씩한 모습으로 지내신다. 옷이 쌓여있던 집을 더 오랫동안 봐왔는데 이제는 그 모습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깨끗하게 단장한 집이라고 해도 곳곳에 아버님과의 추억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저 눈으로만 보던 것의 무게를 체험하고, 만져보고, 정리하고 나니 남편과 나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님은 왜 이렇게 옷을 많이 사셨을까?'

추측은 할 수 있지만 정답은 알 수 없다. 정답을 알고 있던 유일한 사람인 아버님은 이제 안계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아버님은 답을 알고 계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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