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식 사망 정리(Swedish Death Cleaning)
쌀쌀한 일요일, 대문 밖에서 누가 초인종을 눌렀다. 누군가 싶어 나가 보니 처음 보는 사람이다. 아랫집 할머니 프라우(독일어 Frau, 영어로 Ms.와 같다) 데쉬너의 딸이란다.
프라우 데쉬너는 이 건물에서 가장 오래 산 주민 중에 하나다. 항상 정갈하게 빗은 하얀 머리가 인상적이다. 할머니는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도 단정해 보이는 사람이다. 데쉬너 할머니의 딸은 어머니가 실버타운에 들어가시게 되었다고 했다. 자기 어머니 집이랑 이 집이랑 구조가 똑같으니 혹시 필요한 걸 가져갈 생각이 없냐고 한다. 특히 손님용 침대, 옷장, 보쉬에서 맞춘 빌트인 부엌까지 무료로 준다고 했다. 정정해 보이던 할머니가 실버타운에 간다 해서 놀라자, 할머니 딸은 어머니가 벌써 89세라며 손을 저었다. 집에서 넘어지셔서 골절로 인한 통증이 너무 심하단다. 깜짝 놀랐다. 얼마 전까지도 프라우 데쉬너는 우리 가족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동네 소식을 전해주었다. 나는 가끔씩 상점이 문을 닫는 일요일이나 휴일에 깜빡 잊고 계란 같은 걸 안 사 왔을 때면 할머니네 집에 가서 빌려 오곤 했다.
굳이 필요한 것은 없긴 하지만 할머니 딸 클라우디아와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할머니는 1주일 뒤, 실버타운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클라우디아는 집 사진과 함께 여기 있는 것 다 가져가도 된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잘 키운 화분들이 탐나긴 하는데 조금 기분이 이상하다. 몇십 년을 산 집을 떠나는 사람의 물건을, 그것도 아는 사람의 물건을 받으려니 미안하다.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 화두인 듯하다. 물건과 이별할 때 그 유명한 마리 콘도는 마음이 설레지 않으면 다 버리라고 했었다. 근데 사실 설레는 기분이라는 건 흔한 감정이 아니라 이러다 내 물건 다 버리게 생겼다. 이럴 때 효과적일 수 있는 스웨덴식 정리법이 있다. 일명 "스웨디시 데쓰 클리닝 (döstädning)"이다. 내가 죽을 때 내 물건을 정리할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살아있을 때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내가 당장 내일 교통사고로 죽는다면 내 물건들을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처리할지를 상상해 본다. 헤어진 티셔츠 같은 거나 필요할지 확실지 않은 서류 같은 것들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맡겨야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알고보니 클라우디아는 우리 바로 아래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어머니가 떠나자, 그녀는 손재주가 있었던 돌아가신 아버지가 직접 고친 집안 구석구석의 흔적들을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아치형으로 만든 부엌 입구는 큰 가전제품들을 폐기하기 위해 망치로 부쉈다. 어머니가 좋아하던 카펫들은 쓰레기통으로 갔다. 클라우디아는 지금 나의 아이가 쓰던 방과 똑같이 생긴 방에서 여동생과 함께 10대를 보냈다. 그녀는 자꾸 나보고 그 방 가구들을 가져가라고 한다. 직접 아버지가 짜 맞춘 벽장에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를 강조한다. 이케아 가구들로 아이 방을 꾸며 준 나는 갈등에 휩싸인다.
토요일 아침, 클라우디아와 그 집에서 다시 만났다. 이 번엔 아예 나에게 집 열쇠를 맡겼다. 자기 친구 전화번호까지 주면서 가구 같은 거 옮길 때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란다. 클라우디아는 그 많은 짐들을 3분의 2 이상 정리를 끝냈다. 어머니를 모시는 실버타운은 이 근방에서 가장 비싼데 거기에서 어머니가 살 집은 50평방 미터라고 한다. 그래서 새 집에 가져가고 싶은 것은 이미 다 가져가셨단다.
"어머니가 실버타운에 가셨다는 건 내 동생에게 비밀이야. 이 것 때문에 얼마나 가족들이 많이 싸우나 몰라. 빨리빨리 해치워야 해 "
일처리 만큼 클라우디아는 말이 아주 빠르다. 다음 주에 태국으로 3주간 휴가를 갈 생각인데 자기 없을 때 아무 거나 다 가져가라고 속사포로 신신당부를 한다. 거의 다 치우고 남은 건 혼수로 들고 오셨다는 식기들과 커다란 마호가니 장, 거울들과 부엌 가구들이다. 갈 때마다 점점 비어 가는 그 집을 보고 있으니 이상했다. 그러니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을 정리하는 클라우디아의 마음은 내색은 안 해도 더 혼란스러울 것 같았다.
"어머니가 그러더라. 자꾸 자기한테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줄어든대. 그래서 내가 어머니보고 빨리 집에서 나오라고 했어."
아랫집 헬무트 아저씨도 얼마 전 수술을 받았고, 작년에 2층 러시아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원래 우리 집 사시던 분은 목수라고 했는데 그분도 돌아가셨다. 이사 온 지 5년밖에 안 되는 우리는 잘 몰랐지만 프라우 데쉬너의 오랜 이웃들이 자꾸 사라지고 있었다.
클라우디아와 인사를 나눈 후 복도에 나오자, 혼자 사시는 프렝어 할머니가 보였다. 작년 부터 머리를 염색하지 않아 완전히 백발이 된 그녀에게 데쉬너 할머니의 가구들이 너무 좋지만 가져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계단 앞에서 프렝어 할머니는 70년대에 아이를 키웠던 시절을 이야기해 주었다. 케이크를 구우면 서로 초대하는 것이 당연했던 사이좋은 이웃들의 이야기였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위층에서 아들이 빨리 오라고 휘파람을 불었다.
프라우 프렝어는 웃으면서 내 아들의 이름을 부른다. "알았어, 너네 엄마 빨리 올려 보낼게."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이런 거구나. 내 아들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같은 건물에 산다는 것이. 프라우 데쉬너의 빈 집처럼 언젠가 우리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겠지. 클라우디아는 데쉬너 가족들이 여기 살았다는 증거를 나보고 가져가 달라는 거구나. 죽음 앞에서 초연하다는 스웨덴 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물건들을 정리하며 도대체 뭐를 뒤에 남기고 갈까 궁금해졌다.
아련한 기분이 든 나는 평소보다 좀 더 오래 수다를 떨고 집에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