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데이터로 살펴본 한국 교회와 기후 위기 - (1)
보편적으로 쓰이는 용어를 살피면, 시대상을 알 수 있다. 2007년부터 2010년경까지 모든 미디어를 덮었던 단어는 ‘금융 위기(Finance crisis)’였다.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는 전 세계로 파급되어 시장을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위기’라는 단어로 당시 상태로 표현하는 것을 모두 공감한 이유는, 그것이 개인적으로도 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Climate crisis)라는 용어가 대중의 인식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기후변화는 어떻게 위기가 되었을까. 사실 기후변화가 생태적 차원의 위기였던 것은 기후 위기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상당 전의 일이다.
기후변화가 인류에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주장은 19세기 말부터 이어져왔다. 이제 와서 ‘위기감’이 '급격'하게 조성된 것은 생태적(ecological) 혹은 일체적(ecumenical) 차원의 위기를 우리가 '서서히', 그리고 능동적으로 공감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세계적으로 '위기', '비상'등의 단어가 기후변화를 수식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것은, 위기감을 공감시키기 위한 미디어의 역할이 컸다.
2019년 5월, 영국의 유명 일간지 가디언이 인류가 직면한 위험성을 부각하기 위해 '기후변화'라는 용어 대신 '기후 비상사태(Climate emergency)', '기후 위기', '기후 실패(breakdown)'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에 환경 전문지를 비롯한 각종 언론들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 같은 해 11월에는 옥스퍼드 대학(Oxford University) 출판부에서 '기후 비상'을 '2019년 올해의 단어' 중 하나로 선정하였다.
국제사회에 비해 더디지만, 국내에서도 기후 위기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단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근거는 공공 의제(Public agenda)를 다루는 뉴스 데이터이다. 공공 의제란 쉽게 말해 대중들이 논하거나 이야기하는 공통의 주제를 의미한다.
위의 가디언지처럼, 뉴스 미디어는 이러한 공공 의제를 설정(Agenda-Setting)하는 기능이 있다. 뉴스 미디어가 다루기 시작한 주제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대중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중에게 근접한 이슈를 다루려는 기자들이 Hot Topic이 된 이 주제를 다시 다루며 뉴스 데이터는 급증하기 시작한다.
2006년부터 2021년 7월 말까지의 국내 뉴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18년까지 연평균 37회(최대 87회) 정도로 쓰이던 ‘기후 위기’라는 용어는 2019년 934회 사용되었으며 2021년의 7개월 동안만 8,435회 사용되었다. 2019년부터 의제가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2020년부터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중들이 뉴스 미디어를 통해 주로 보게 되는 기후 위기의 주제는 무엇일까? 뉴스 데이터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주제를 파악하는 것은 데이터의 양이 많아질수록 어렵다.
많은 데이터의 전반적인 내용을 분석하고자 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단어를 중심으로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다. 형태소 분석을 활용해 연도별 키워드 언급 빈도를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뉴스 트렌드가 급증하는 시기인 2019년에 주로 다뤄진 주제는 '기후변화/위기에 대응하는 세계와 정부의 노력'이었다. 높은 빈도로 함께 등장하는 단어는 '기후변화', '기후', '환경', '세계', '대응' 등이었다.
기사 단위로 살펴보면, 2019년 9월 미국 UN본부에서 개최된 기후행동 정상회의(UN Climate Summit)와 내달 '2차 기후변화대응기본계획'과 함께 발표된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주요 소식으로 다뤄졌다.
2020년에는 주제를 막론하고 COVID-19이 중심이 되었다. 상위 키워드인 '코로나'는 감염병 확산과 기후변화의 상관관계를 다룬 정책이나 정치 발언에서 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비중으로 나타난 것은 국내 정부의 '그린뉴딜' 계획 발표였다. 특히,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된 미국의 정권교체 시기인 11월에 그린뉴딜 정책 관련 기사량이 가장 많이 나타났다.
미국의 변화된 정치, 경제 기조의 영향력은 2021년에도 이어졌다. 직전 대통령인 트럼프가 탈퇴했던 '파리협정'에 재가입하는 등 친(親) 기후변화 정책을 펼치는 미국의 소식이 해의 초반을 이끌었다.
2021년에 지배적으로 나타난 주제도 역시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이었다. '그린뉴딜'에 이어 나타난 정책의 키워드는 '탄소중립'이었다.
이에 발맞추려는 지방 자치단체와 기업의 행보가 뉴스 데이터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 가장 많이 보도된 내용은 대한민국이 주도한 기후 정상회의인 P4G에 대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2019년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설정된 공공 의제를 구조적, 전반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키워드 네트워크 그래프를 살펴보았다.
전체 네트워크에서 단어의 중요도를 판단하는 지표로 '중심성(Centrality)'이 사용된다. 다른 단어들과 함께 쓰이는 확률이 높을수록 중심성은 높게 나타난다. 아래 그래프는 상위 약 50% 이상의 중심성을 지닌 키워드만 살펴본 것이다.
네트워크 그래프를 다룰 때 중요한 지표 중 하나는 '매개 중심성(Betweenness Centrality)'이다. 매개 중심성이 높은 단어는 키워드들 서로 연결해주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기후 위기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대응', '환경'에 이어 세 번째로 매개 중심성이 높았던 단어는 '경제'였다. 중심성 상위 50%라는 필터로 인해 전부 나타나진 않지만, '경제' 키워드는 각종 단어들과 '기후 위기'를 매개하며 다양한 주제를 형성하고 있었다.
정리하자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기후 위기'를 중심으로 미디어에서 생성되고 있는 의제를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 정책(그린뉴딜, 탄소중립)
국제사회에서 강조되고 있는 기후 위기와 이에 발맞추는 대한민국 정부
기후 위기 정책에 대한 지자체, 기업, 환경 관련 단체들의 반응
위의 모든 주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
기후변화에 대한 범지구적 & 생태적 논의로 시작된 이야기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정부의 정책과 각 주체들의 행보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미디어를 통한 대중의 인식 확산도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생계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를 기반으로 이뤄질 확률이 높다.
실제적인 관심과 인식의 변화는 미디어를 통해 설정된 의제들과는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다음 장에서 다룰 그레타 툰베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뉴스 미디어를 통해 생성되는 HOT topic들은 다른 중요한 이야기를 덮어버리곤 한다.
그렇기에 뉴스 미디어가 설정하는 의제들이 기후 위기를 이야기하는 우리 대화의 유일한 주제가 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기후 위기는 정부와 지자체들의 정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우리 생계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력으로만 끝나선 안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가 느껴야 할 위기감은 개인적 차원에 머물러선 안된다. 이 위기의 본질은 '생태'에 대한 위협에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의 문제를 나의 고난을 넘어 '이웃'의 고난, 자원 활용의 측면을 넘어 '불평등, 정의', 환경의 오염을 넘어 '창조 세계'의 훼손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한국 교회는 기후 위기 앞에서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다음 장에서 그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