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 작가 덕후의 글방
그녀는 작가 이슬아가 몹시 부러웠다. 따끈한 수필을 매일 한 편씩 한 달 내내(주말은 빼고) 메일로 보내는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는 그녀가 느끼기에 획기적이다 못해 충격 적이었다. 심지어 한 해에 몇 번씩 꾸준히 했다. 글을 쓰겠다고 매일 다짐하는 그녀라면 이슬아에게 반할 만하다. 그녀 역시 꾸준히 쓰고 싶기 때문이다.
이슬아는 한동안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철봉 매달리기 훈련을 했는데 ‘잘’하는 것만 하고 싶어 하는 자신과는 달리 못 하는 일을 계속하는 집념 또한 그녀에게 대단해 보였다. 그 외에도 이슬아에게 반할 만한 다양한 모습은 인스타그램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확실히 팔로워 수가 높은 사람의 피드는 보는 재미가 있는 법이다. 이슬아의 인스타그램에 등장하는 모습이나 상황들은 SNS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각도나 상황이 아니었다. 이슬아 본인에게는 지극히 일상 적여 보이며 다소 시큰둥한 표정과 무심한 느낌의 사진이었다. 그런 사진들은 그녀가 보기에 분명 뭔가 있어 보였다. 예를 들면 셀카 특유의 과장된 표정은 하지 않는 민낯의 얼굴, 친구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의 사진은 박제된 순간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는 구름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녀가 보기엔 설정 같은 겉멋이 느껴지지 않는 사진이 많았다. 사진 속 장소는 고유한 냄새가 있을 것 같은 어느 집이었고(자취생에겐 부담스러운 책장이 있었고, 건강해 보이는 화분이 있었다),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골목 담벼락에 인물이 있었다. 사진에서 본 그들의 일상은 화려하지 않지만 어디서 비추는지 모를 은은한 빛이 있었다(친구 중 한 명이 사진작가, 이쯤이면 그녀는 이슬아의 찐팬).
그녀는 이슬아의 사진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그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지난 사진들을 다시 보곤 했는데 그러다 문득 이슬아와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작가 이슬아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한 그녀지만 막상 이슬아가 되는 건 좀 고달플 것 같았다. 왜냐면 그녀는 이슬아처럼 매일 쓰지 못할뿐더러 책임이 따르는 일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반드시 위경련이 일어난다. 따라서 이슬아의 친구 중 한 명처럼 이슬아의 글이나 인스타그램에 가끔 등장하며 가까이서 연재 노동자의 자세나 마음가짐을 본받으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그녀는 이슬아의 친구들과 사뭇 달랐다. 그녀는 화장한 얼굴이나 패션 스타일이 만족스러운 모습의 사진만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담배나 라이터가 사진에 등장하는 건 원치 않았다. 친구 또는 애인과의 이벤트적인 만남을 제외한 일상은 일터와 집이었고 그곳에선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녀는 동시대의 젊은이들을 이끌 수 있는 독특한 이력이 자신에겐 없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먹는 좌식 밥상, 내 옷이 아닌 옷을 입고 있는 옷가게 판매사원의 모습, 흡연과 민낯 또한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20대 당시의 그녀는 그랬다. 충동구매 같은 불안한 즐거움을 누리고 혼자 집에 있으면 우울해지고 마는 시절이었다. 그것들을 차치하고도 그녀가 이슬아와 친구가 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녀의 나이가 30대 중반을 향하던 날에 20대의 이슬아와 친구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친구라는 것이 비단 나이의 문제는 아니지만 아무튼 그 마음은 건조하게 지나간 자신의 20대를 되돌려 이슬아와 친구들처럼 한강수영장에서 놀고 싶은 인생 2회 차에 대한 그녀의 염원이었다.
그녀는 어느새 ‘일간 이슬아’ 수필을 구독해 출근 전 아침 식사 때마다 읽었고, 모든 일과를 마친 침대에서는 이슬아의 책을 읽었다. 시큰둥하면서도 뭔가 특별하게 보이던 이슬아와 주변의 이야기를 사진이 아닌 글로 들여다보니 그들 역시도 긴장과 우울에서 불현듯 행복을 찾는 20대를 보내며 안온한 일상을 위해 무던히 노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슬아의 일상 중 그녀가 가장 주목한 것은 글방이라고 불리는 어느 장소에 몇 명이 모여 있는 모습이었다. 그 역시 이슬아 친구가 되고 싶었던 이유중에 하나이다. 정기적인 만남을 선호하는 그녀였다. 어떤 만남에 있어 무작정 모임이라고 붙이는 것을 좋아했고 글쓰기 모임, 독서 모임, 커핑 모임, 달리기 모임 등이 있었다. 인원은 그녀 포함 두 명만 되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임이라고 했다. 한 가지 주제로 이야기 하고 각기 다른 사고방식이나 관점을 나누면 일상 속에서 사사로웠던 감정들이 해소되곤 한다. 소소한 모임이 만들어지고 해체되길 반복하던 어느 날 그녀에게도 ‘글방’이 생겼다. 이름하여 ‘키친 글방’이다. 창작교실에서 만난 이들과 한 달에 한 번 네다섯 명 정도가 만나서 서로가 쓴 글을 꼼꼼히 읽은 후 정성 들여 이야기는 나누는 모임이다. 토요일에 만난 적은 몇 번 없지만 ‘토요 글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일 년이 지나 ‘키친 글방’으로 개명했다. 장소가 주방이라 키친 글방으로 제안했는데 모두 찬성을 했다. 그녀는 그 이름이 어쩐지 근사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