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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빵 Apr 21. 2022

키친 글방과 친구들 (하편)

영원한 디저트 만들기

    그녀는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에서 이혜라는 사람을 뮤즈로 카페를 운영하는 소설가 지망생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은 베이킹, 카페 운영, 글작가 중 제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셋 중 현재 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서 심한 갈증을 느낄 뿐이다. 이혜는 셋 중에 무엇을 하던 어김없이 지치지는 순간이 오는데 그때마다 베이킹의 도피처는 글쓰기이고 글쓰기의 도피처는 베이킹이 된다. 그리고 그 순환이 이루어지는 곳이 카페이다.


   키친 글방에서 함께하는 친구들이(이하 키친구) 그녀의 글을 합평할 때면 카페를 운영하는 인물은 왜 소설가가 되려고 하는가를 종종 물었다. 그 인물에게 글이란 어떤 의미냐고. 키친구는 다년간 글쓰기와 합평으로 다져진 통찰력을 바탕으로 아주 매너 있는 어휘와 어조로 질문들을 태연하게 던진다. 그들은 집요하게 묻지 않는 듯 하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래서 더 신중해진 탓인지 그녀는 입을 떼지 못한다. 그녀는 탄산 빠진 에이드를 한 모금 마신듯한 밍밍한 표정을 짓고 만다. 한두 번 받거나 해본 질문이 아니기 때문에 글을 쓸 때마다 그녀 역시 왜 쓰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지만 쉽게 정리되진 않는다. 그녀는 오늘 딸기를 올린 생크림 케이크를 세 번 만들었다. 세 개를 만드는 것과 세 번을 만드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따라서 그녀는 두 번 다시 생크림을 휘핑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아이패드를 열었다. 그리고 대답하지 않은 질문을 꺼내본다.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

   베이킹은 시간이 정해져 있다. 일단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는 말이다. 그 시간 안에 만들거나 먹지 않으면 형태가 망가지고 상한다. 디저트는 이미 완성이 되면 글을 퇴고하는 것처럼 지우고 다시 쓸 수 없다. 베이킹은 실수한 부분이 있어도 반드시 다음 단계로 넘어가거나 버려야 하지만 그녀는 쉽게 버리지 않기 때문에 즉흥적인 대처 능력을 발휘하곤 한다. 예를 들면 생크림을 별 모양으로 짜려고 했는데 크림의 농도가 묽어 모서리가 뾰족하지 않을 때, 그 부분에 딸기를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별 모양 생크림 장식이 없는 윗면은 어쩐지 허전하다. 반면 글은 별 모양 생크림을 올린 근사한 케이크 같은 글이 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수정할 수 있다.

   디저트는 단지 만드는 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판매를 해야 한다. 그에 따라 앞으로의 행보가 달린다. 그녀가 좋아하는 디저트라 하더라도 인기가 없으면 그 메뉴는 사라진다.  반면 글은 당장 판매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녀에게 있어 소설이란 그녀가 만들어내는 일 중 가장 긴 정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일이다. 그 과정은 고단하지만 완성이 되면 방부제가 없이도 영원한 디저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종종 친구에게 글의 한 부분을 메시지로 보낸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기쁘거나 속상한 감정을 공감받고 싶어서이다. 공감받은 마음으로 언젠가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그로 인해 자신을 좋아해 주길 바란다. 그녀는 바쁜 일상 가운데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싶다. 카페를 운영하기 때문에 바쁘고 고된 하루라는 핑계로 어느 날 문득 쓸쓸해진 마음이나 일상에서 새삼스럽게 느낀 충만해진 마음들을 넘겨버리고 싶지 않다. 일상에서 지나친 순간을 다시 잡고 싶어서 그녀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 순간을 잠시라도 멈추면 자신이 덜 늙을 것 같은 기대 때문이다. 그것들이 그녀가 오늘은 꼭 쓰겠다 하고 마음을 쓰는 이유이다. 아마 키친구들도 비슷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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