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아기 육아일기 프롤로그
애를 왜 안 낳아?
그 물음은 정확히 '왜'가 먼저가 아니었고 '애'가 먼저였다. 물론 '애'가 먼저든 '왜'가 먼저든 반가운 물음은 아니다. 그 물음은 아이를 낳는 것이 온당하다는 전제하에 하는 말이었다. 또한 알고자 하는 바를 얻는 질문이 아니다. 정해진 훈계가 있는 물음이다.
지난여름의 일이다.
-애를 왜 안 낳아요?
-....... (이 사람 처음 본 나한테 왜 이러지?)
처음 본 사람에게 그런 질문은 처음 받아봤다.
-나는 자식들이 크니까 효도를 해서 너무 행복해요. 아이를 낳아서 키울 때 너무 예쁘고 귀엽잖아~
-아.. (안물 안궁... 참나 예쁘고 귀여운 게 이유라면 고양이도 충분하겠네)
-우리 딸이~~~~ 우리 아들이~~~~ 우리 가족이~~~~~(자랑 자랑자랑)
-저도 예쁘고 귀여운 거 키워요 고양이 (이러면 말 안 하겠지?)
그 여자는 순식간에 미소를 지우고 눈썹과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는 어깨를 목 위로 올리면서 몸을 부르르 떨며 징그럽다는 듯이 날 쳐다봤다. 어떻게든 그 여자에게 반발하고 싶었지만 일말의 미안함은커녕 너무나 당당한 태도에 나에게 있는 귀여운 존재를 자랑할 의지를 순식간에 잃었다.
-애를 왜 안 낳아? 아니 정말 궁금해서.. 근데 되게 특이하다 X3
당시 나는 당황을 너머 혼란스러웠다.
나에게 질문을 하는 50대 여자는 미소가 자연스럽고 살구빛 볼터치를 한 얼굴엔 적어도 악의는 없어보였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불쾌인지 모를 일이었다. 설거지를 싫어한다는 말에 결혼 안했냐고 물었고,
결혼했다는 말에 아이는 없냐고 물었고,
아이를 안 낳는다는 말에 왜 안 낳냐,
몸매가 망가질까 봐 그러러냐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되게 특이하다'라는 말을 서너 번 했다.
그날 밤 두통약을 삼키고야 잠에 들었다.
우리 부부를 아는 지인들은 넌지시 물어본 적은 있었다.
-자기네는 아이 생각이 없는 거야?
그런 정도야 결혼 오 년 차인 부부에게 충분히 궁금할 수 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스스럼없이 대답했다.
-저희는 아이 생각이 없어요
그러면 아쉬운 기색을 여념 없이 드러내지만 대화하다 보면 결국엔
-그래 요새는 그렇기도 하더라-
로 끝나는 대화였다. 구체적인 이유로 설득을 해야 하는 사안이라는 것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억울해진다. 그렇지만 어쩔 수 있나.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나에게 애정을 갖은 사람이 들이니까.
나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고 키우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 현재의 나와 배우자의 일상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고 싶을 뿐이다.
아이라는 엄청난 세계를 맞이하여 벅차고 넘치는 기쁨과 행복에 따라오는 대가를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
우리는 알고 있다.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여러모로 충만할 것이라는 것.
나는 아이를 싫어하지 않는다. 좋아하지도 않는다. 어른 사람중에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듯이 내가 느끼는 아이도 그렇다.
마치 나랑 잘 맞는 어른 사람이 있듯이 아이도 그런 것 같다. 친구나 지인의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이 흥미롭다. 어떤 아이와는 친해지고 싶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멀찍이서 보고 싶기만 하기도 하다. 어떤 아이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엄마 뒤에 숨어있었는데 어느새 엄마와 나란히 앉아서 각자 하고 싶은 걸 하기도 한다. 그걸 보면 괜히 내 마음이 뿌듯해지고 어쩐지 너그러워지고 싶다. 가끔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주는 아이를 만나면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그렇게 흥미로우면 '네 아이를 하나 낳아봐' 이런 말은 사양한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