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의 적립과 차감
TV에 나오는 정신건강의학과 오은영 박사님은 누군가는 별도의 배움 없이도 타인의 감정에 대해 스펀지처럼 이해해나가고, 누군가는 그것을 배워나가야 한다고 했다. 드라마를 보면서 이미 감정이 이입되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사람이 있고, 상황과 감정을 말로 설명해주어 이 사람이 이런 감정이구나 배워나가야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오은영 박사님의 그 말을 듣고 나선, 악의가 있는 사람은 적고, 아직 배우지 않아 모르는 사라람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관계는 평소에 적립하는 포인트다. 매일 출근시간 10분 전에 와있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느 날 알람을 못 듣고 늦잠을 자서 오전 11시에 전화가 왔다. 반대로 매일 출근시간을 1분씩 지각하는 사람도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을 해보자. 아마 전자의 사람에게는 오히려 본인이 너무 놀랐을 까 봐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는 것이라고 달래줄 것이다. 후자의 사람은 이 일을 계기로, 평소 시간관리의 미흡함에 대해서도 의견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적립 기준이 결제 금액이 아닌 결제 횟수다. 그래서 일상이 중요한 것이다. 어느 날 잘한 일은 포인트로 잘 사용되지 않는다. 5천만 원짜리 사업을 수주한 것은 그 해의 인사평가에는 반영되겠지만, 다 까먹는다. 기록을 세운 업적(예. 최고 금액 수주)은 기록이 엎어지기 전까지는 그나마 저장되어 포인트로 치환될 수 있을 텐데, 기록을 세우지 않은 업적은 물론이고, 기록을 세운 업적도 새로운 역사가 쓰이면 사라진다. 사람들의 마음은 박물관과 같이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는 장소가 아니다.
심지어 적립해둔 포인트가 없으면, 업적도 재해석되고 나의 기여가 축소된다. 오늘날에는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돌아간 영광에 대해 매우 분노한다. 업적이 오히려 무관심에서 공격 태도로 변경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자신이 적립해놓은 포인트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쌓은 업적은 나에게 칼이 될 수 있다. 오늘도 큰 문제없이 하루를 종료했다면 오늘도 포인트가 적립된 것이다. 이 포인트는 내가 큰 실수를 했을 때,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적립된다는 개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차감을 이해하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포인트제로 이해할 때 유의점은 '나의' 포인트가 적립되고, 차감되는 것을 이해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포인트를 적립시켜주고, 차감시키는 일에는 흥미를 의도적으로 낮추지 않으면, 모두가 관심 없는 점수판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을 것이다. 늘 나 하나 바뀌어보자고, 나 하나 깨우쳐보는 거다. 다른 사람을 움직이려고 배우는 것이 아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차감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상황일 때, 나의 포인트가 차감된 것이다. 차감은 배신, 속임수, 음모와 같은 것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노력을 쏟은 것에 대해 정당하게 보상하지 않는 것도 차감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이해도가 높아 관계 당사자들의 왜곡이 크지 않은데, 후자에 대해서는 이해도가 낮아 관계가 끝나고 나서도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를 때가 있다.
적립과 마찬가지로 차감도 횟수에 더 예민하다.
예를 들어, 디자이너인 친구에게 로고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했고, 그 친구도 흔쾌히 카톡을 보내왔다. 그런데 로고의 글씨체를 바꾸고 싶다. 나는 디자인 툴을 다루지 못해 친구에게 글씨체만 바꾸는 작업을 해달라고 요청한다.(무료로) 친구는 내가 요청한 글씨체 외에도 3가지 글씨체로 이미지 파일을 보내줬다. 이제 이 친구는 내 연락에 대한 답장이 늦어질 것이다.
내가 고맙다고 말했는지, 고마움을 느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관계라는 것은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시작이자 전부다. 이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고마움을 표현하고 진정으로 고맙게 생각하면, 차감이 안될 거라 생각하는데, 동등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 한 차감되는 것이다. 고맙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가치가 낮을 가능성이 있고, 마음속으로 고맙다고 진정으로 생각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가치가 전달되지도 않았다. 동등한 가치를 지녔는지 불확실하다면, 상대방에게 물어보면 된다. 나는 네가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한 들 모든 상황이 벌어진 후에는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다.
또 하나 많이 실수하는 것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 것을 주지 못하는 상황일 때, 아무것도 전달하지 않고, 나중에 동등한 가치가 있을 때 줘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관계가 삼진 아웃제가 아니라 포인트제다. 소멸되기 전까지 포인트는 차감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원하는 임금을 주지 못하면, 명절 선물이라도 보내고, 명절 선물을 보낼 수도 없으면, 스타벅스 커피 쿠폰 하나라도 주고, 스타벅스 커피 쿠폰 하나도 주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긴 카톡이라도 보내서 차감의 폭을 줄여야 한다. 포인트가 소멸되면, 관계는 꺼져 가는 불처럼 사그라들고, 추위가 내려앉는다.
내가 시행착오를 통해 배운 인간관계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양보와 성실함으로 일상에서 포인트를 잘 적립해 나가고, 누군가의 노력을 충분히 내가 보상해주지 못할 때, 포인트 차감폭을 어떻게 낮출지를 생각해 보는 것,
상대방 입장에 계속 서보고, 나는 나 하나도 잘 못 고친다는 마음으로 내가 배운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만 적용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