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살에 백조가 되었다. 서른한 살에 취업은 서막이 분명한데, 이것은 끝나지 않아야 할 때에 어정쩡하게 끝나는 드라마 같다. 통장에서는 통신비, 실비, 연금, 주택청약비가 빠져나갔다. 내가 백조인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통장은 금세 거덜 났고, 돈이 없어진다는 건 숫자 이상의 것이었다.
친한 언니가 노동이 삶의 목적인 것처럼 왜곡된 시대에 사회에서 갖는 백조의 가치가 크다고 말해줬다. 신선하고 위로가 되는 접근이었지만, 그 말을 듣고 1초도 안되어 가치를 인정하기에는 너무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꼭 희소해야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말이다.
준비했던 시험에 떨어진 언니가 전화를 했고,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눴다. 언니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서 좋았다. 위로가 필요할 때에 시간을 내어 줄 수 있는 것은 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이다. 회사를 다니고 있었을 때였으면, 야근하고 있는 시간이었다. 야근하고 있을 때는 전화를 받으면 퇴근 시간이 자동으로 연장되기 때문에 전화를 잘 받지 않았고, 퇴근한 이후에는 이야기 나눌 에너지가 없어 카톡으로 무슨 일 있어?라는 연락을 남길뿐이었다.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 카톡방에는 내가 좋아하는 글귀를 타이핑으로 옮겨 보내줬다. 이것도 내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10분도 안 걸리는 일이어서 물리적인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일할 때는 꼭 해야 하는 일만 챙기는 것만으로도 얼이 빠져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일하면서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기꺼이 마음을 쓰는 친구들도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의 생일이면, 먼저 알고 단체 카톡방에 ‘oo아! 생일 축하해’ 먼저 남겨주고, 함께 찍은 오래된 사진을 보내면서 안부를 물어왔다.
백조가 되어서 잃은 게 더 많다. 그럼에도 하나를 얻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필요할 때 언제든 나를 찾을 수 있고, 꼭 하지 않아도 되는 기분 좋은 일들을 찾아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다 잃어도 하나는 주어지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