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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 kim Jun 16. 2022

프라우드먼의 마지막 무대가 보여준 파괴적 혁신

작년에 스트릿우먼파이터 프로그램이 대흥행을 거뒀다. 오랫동안 경연 프로그램을 흥행시켜온 엠넷의 노하우가 당긴 미션과 크루별, 포지션별 대결이 내용을 이뤘고, 여성 댄서들의 현란한 움직임은 눈을, 경쟁 속 휴머니티인 크루원들의 자부심, 팀원들을 이끄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 패배를 안겨준 상대의 실력에 대한 인정과 존경은 마음을 빼앗았다. 스트릿우먼파이터에서 특별히 여성 댄서들이 특히 겪는 어려움이나 여성 댄서의 자부심을 이야기하지 않았음에도 (분명 있을 것임에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스트릿우먼파이터를 신선하게 느끼게 한 요소가 무엇이었는지는 역설적이게도 후속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되었다. 후속 프로그램인 비 엠비셔스(남자 댄서들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자 댄서들이 스트릿우먼파이터에 출연했던 여자 댄서들이 보여주는 춤을 따라 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참가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동작은 걸리시한 춤으로 대표되는 엉덩이와 허리를 흔드는 트월킹이었다. 처음에 당황했던 참가자들이 걸리시한 매력을 뽐내는 것이 하이라이트이다. 그런데 그보다도 나를 주목하게 한 것은 여성 댄서들이 남자 댄서들에게 코칭을 하고, 좁은 공간에서 심사위원인 여자 댄서들이 압박감을 주면 남자 댄서들을 심사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단순하게도 성별을 전환한 것에 신선함을 느끼고 있었다. 여성만으로 가득 찬 장면이, 남성이 여성들의 퍼포먼스를 보며 감탄과 존경을 보내고, 여성에게 코칭과 심사를 받는 장면이 새로웠다. 그런데 신선함을 넘어 나를 충격에 빠뜨린 것은 프라우드먼이 떨어진 마지막 무대였다.


그들의 마지막 무대는 너무 독창적이고 예술적이어서 경연 프로그램의 무대로 어울리지 않았다. 잔잔하게 내레이션이 쭉 흘러나오는 곡에 맞춰 대단한 스킬 없이 춤을 추다가 끝이 났다. 무대가 끝났을 때 보는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무대를 본 다른 크루도 용기가 대단하다는 말을 했고, 심사위원도 딥하고 어려워 대중적이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들은 경연 프로그램의 보편적인 전략을 선택하지 않았다. 처음에 잔잔하게 시작했다가 클라이맥스로 치닫으며 끝나거나 처음에 잔잔하게 시작한 후 클라이맥스를 찍었다가 다시 잔잔하게 여운을 남기는 무대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모든 스킬을 보여주며 몸이 부서져라 춘 것도 아니었다. 경연에서 이기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하고 싶은 무대를 하고 내려왔다. 프라우드먼의 리더 모니카는 탈락 후 소감으로 탈락자답지 않게 위로 안 해 주셔도 된다 계속 같이 춤추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들의 무대가 준 충격은 성별 전환을 통한 신선함을 넘어서 짜인 구조와 일반적인 관념을 부셨다. 그들의 무대는 예술에 대해 순위를 매기는 짜인 구조에, 모두 경쟁에 치열하게 임해야 하고, 패자는 아쉬워야 한다는 보편적인 생각에 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구조 안에서 응원하고 있던 우리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들이 춤을 췄던 내레이션에는 영혼의 눈으로 사악하고 사악한 구조의 문제를 보자는 내용이 나온다. 남녀, 여남 갈등 구조에서 일부의  개선을 만들어 낼 것이 아니라 짜인 구조밖에 서보자고 우리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있다. 구조 밖에서 보면 근본적으로 왜 갈등이 만들어지는 것인지, 갈등을 만들어 내는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없는 것인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라우드먼 마지막 무대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YD5PBcK_D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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