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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스 Oct 31. 2019

10. 오늘을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2019년 10월 16일 수요일

날이 밝았다.


그릉이는 밤새 고통스러운 상태로,

결국 밤을 버텨냈다.


오전 8시 20분.

상태 체크를 위해 산소방 문을 열었다.

 

나가고 싶은 그릉이는 안간힘을 써보지만

겨우 얼굴만 밖으로 뺀 채 축 늘어진다.

 

츄르 한 방울에 물을 조금 개어

주사기로 입에 넣어줘보지만,

그 좋아하던 츄르도 먹을 힘이 없다.


너무 아파 눈물과 흐른 침 때문인지

수액을 맞아 소변을 볼 법도 한데

소변의 흔적이 거의 없다.


젠장, 어제 휴가를 냈는데 오늘은 출근을 해야한다.

나에게는 새끼인데,

이 감정을 모두에게 공감시키기는 어렵다.


우리가 없는 상태로 집에 둘 수는 없었기에,

출근길에 병원에 맡겨두기로 했다.


아내는 병원에서 빌린 핫팩을 다시 채워보내주려고

약한 락스물에 소독을 하기 시작했다.


락스 냄새를 너무 좋아하는 애용이는,

그 냄새를 맡고 온다..


오전 10시.

병원이 여는 시간에 맞춰 그릉이를 데리고 갔다.


밤새 복수가 또 차서 200ml 를 뺐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 출근길에 오른다.


출근해 자리에 앉기까지는 했다.

그릉이 생각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시 생각을 해보자.

지금 이 상황이 최선인가?


낮이야 그렇다해도,

밤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가,

집에서 그릉이의 마지막을 지켜보는게 맞는건가?


현재 이 이상의 치료는 할 수 없을까?


갑자기 TV에서 자주 보던 수의사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 병원을 찾아봤다.


24시간 운영되는 고양이 전문 병원.

그리고 신약 치료를 시도하고 있는 병원.

서울 역삼에 있는 B동물병원이 그랬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정말 마지막으로 그 곳으로 옮겨보자고.


옮길 병원에 연락해 1시30분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 그릉이를 맡긴 병원에 연락해서

그간의 진료 기록을 메일로 보내달라하고,

전원을 위해 점심에 갈테니 준비를 부탁했다.


그리고 중환자인 녀석을

용인 수지에서 서울 역삼까지,

최대한 안전하고 빠르게 옮겨

1시30분에 역삼에 도착했다.


처음 보는 고양이지만,

누가 보더라도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고,

빈혈 수치가 너무 낮았기에 바로 수혈을 진행했다.


사실 반려동물도 수혈이 필요한 상황이 있다.

하지만 사람만큼 혈액은행이

잘 갖춰져있지 않기 때문에,

동네에 있는 일반 동물병원에서는

수혈 준비도 몇 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곳은 수혈센터를 운영하고 있어

바로 수혈이 가능했고,

몇 시간 수혈이 진행되는 동안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모를 일과를 끝내고,

아내와 다시 역삼으로 이동했다.


20시.

입원한 그릉이 면회를 했다.


점심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힘이 없어 늘어져있고,

앞에서 손을 흔들어도

신음 소리 외에 반응은 없었다.


혈압과 체온은 조금 올랐으나,

호흡이 가쁘고 혈당이 떨어졌다.


그릉이를 바라봤다.

어젯밤보다 상태가 더 좋지 않았다.

이제는 눈에 초점도 없어보였다.


입원 후 그릉이 처치와 상태를

설명해주시던 선생님이,

어렵게 말을 이었다.


"오늘 밤을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어제랑 비슷한 얘기인데 더 좋지 않은 그릉이.

진짜 마지막일 것 같아,

아내에게 그릉이와 인사를 나누라했다.


아내는 그릉이를 쳐다보며

한참을 잘 할 수 있다고 다독이며 안아주었다.

그릉이 앞에서 눈물을 참으려했지만

끝내 참지 못하고 터지고 말았다.


그릉이를 집으로 데려가도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없고,

그나마 이 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도록 하는게 최선일 것 같아,

그릉이에게 힘내라는 인사,

마음 속으로는 마지막 준비를 하며,

흐느끼는 아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슬프지만, 대비를 해야했다.

태어나 처음 찾아보는 반려묘 장례 절차.

집에서 멀지 않은 경기 광주에 업체가 있었고,

유선으로 절차와 비용 등을 문의했다.


그리고 통화를 끝내는 순간,

상담하시는 분의 마지막 멘트가

날 뒤흔들어 놓았다,


"최대한 늦게 뵙겠습니다."


나까지 그러면 안될 것 같아서,

최대한 꾹 누르고 참고 있던 눈물이

저 한 마디에 결국 터져버렸고,

새벽에 병원에서 연락이 올 것 같아

머리맡에 옷가지를 챙겨두고,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해보려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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