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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스 Oct 31. 2019

11. 기적이 일어나다

2019년 10월 17일 목요일

오전 7시.

날이 밝았다.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했다.

밤새 병원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우리 그릉이가 또 밤을 버텨냈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0월 17일. 오늘은 아내의 생일이었다.

그릉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다면,

매년 아내의 생일마다 생각이 날테니,

제발 오늘만은 아니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그릉이의 상태가 궁금했지만,

10시 정도는 되어야 선생님들 통화가 가능하니,

무겁고 긴장되고 가라앉은 마음으로

우선 출근을 했다.


오전 10시.

병원에 전화해서 선생님께 전화를 요청했다.

그리고 곧 전화가 왔다,


어제 수혈한 후로 빈혈 수치가 14%에서

오늘 23%로 올라갔다.

30%부터 정상이라

아직 빈혈 상태이기는 하지만 올라갔다.


그리고 컨디션은

어제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별 기대치 없이 이야기를 듣다가

선생님의 한 마디에 놀랐다.


"그릉이가 스스로 일어나서 밥도 조금 먹었어요."


세상에...

금방이라도 무지개 다리를 건널 것 같던 그릉이가,

아무 힘도 없이 사지도 못 가누고 있던 그릉이가,

자기 발로 일어나 돌아다니고 밥을 먹는다니!


눈에 또 눈물이 고였다.


아직 혈당, 혈압 등은

아직 불안정해서 맞추는 중이고,

오전에 컨디션이 좀 괜찮아져서

초음파 검사를 다시 했는데,

가능하면 오후에 와서

상담을 받아보시라는 얘기 후 전화를 끊었다.


이 소식을 빨리 아내에게 알려야했다.


"그릉이가! 그릉이가! 자기 발로 일어나서 밥을 먹는대!"


통화 당시 팀장님과 같이 있던 아내는,

수화기를 든 채로 오열을 했다고 한다.

(탐장님 미안...)


오랜만에 조금은 들 뜬 마음으로 오전을 보내고,

오후 예약 시간에 맞춰 아내와 병원을 찾았다.


입원실 문이 열리고 저기 그릉이가 보이는데,

어제와 달리 일어나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이게 우리 그릉이가 맞나?!

도대체 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니?!

엄마 생일이라고 힘을 내준거야??!!!


챙겨 간 츄르를 꺼내어 주니,

얼굴을 내밀고 열심히 짜먹는다.


그릉이를 잠시 본 후,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초음파 상으로 장간막이 비대해져있어서

일반적인 복막염과 조금 달라보이고,

섬유화성으로 경화되는

다른 종류의 복막염 가능성이 있다.


다만 섬유화성 복막염은

전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데,

복수상 코로나 바이러스 유무에 따라

양성일 경우 FIP로 확진할 수 있으나,

음성이더라도 전염성 복막염이 아니라고

확신은 할 수 없다고 했다.


정확한 진단은 마취 후 일부 개복하여

장간막을 체취하여 조직검사를 하는 것이나

혈당 및 혈압이 정상범위가 아니어서

마취의 위험이 더 있어서 할 수 없고,

섬유화성 복막염은 전염성 복막염보다

긴급성을 요하지는 않아서,

우선 전염성 복막염에 가능성을 두고

지금처럼 치료를 지속하기로 했다.


온몸에 염증 증상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혈당과 혈압이 주사로 잘 잡히지 않는다.


다만 이전 이틀 동안

GS441524에 반응이 없던 그릉이가,

이 병원으로 옮기면서 뮤티엔 으로

신약을 처치한 효과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저 우리 부부에게는

그릉이가 조금 힘을 내준 것,

다시 일어선 모습을 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너무나 고맙고 대견한 마음에 또 눈물이 났다.


상담을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복귀해서 일을 하고,

퇴근 후 아내와 다시 그릉이 면회를 갔다.


오후 8시.

그릉이가 자고 있다.

너무 아파서 눈도 못 감아서 잠도 못 잤던 그릉이가,

쌔근쌔근 아가처럼 잠을 자고 있었다.


몇 일을 고통 속에 잠을 못 잤으니,

얼마나 힘들고 피곤했을까.




오늘은 계속 스스로 밥을 먹고 츄르도 먹으면서

혈당 수치가 40에서 90까지 올라왔다고 한다.

그리고 혈압도 80정도로 유지가 되고 있다고 한다.


아직 수치들이 아주 좋은 것은 아니고

안심할 정돈 아니지만

그래도 어제보다 많이 좋아진 것은 분명하고,

그 무엇보다 아침부터 스스로 밥을 먹는게

가장 좋은 시그널이라고 한다. 


어제 이 시간.

그릉이를 고양이별로 보내줘야한다는

너무도 슬프고 어려운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어쩌면 그릉이가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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