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렉스 Oct 31. 2019

8. 무겁게 가라앉는 공기

2019년 10월 15일 화요일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놀란 마음으로 그릉이를 찾는다.

어젯밤과 같은 상태로 힘없이 누워있다.


오전 6시 리커버리 캔 한스푼과,

평소에 그렇게 잘 주지 않던 츄르 1/3을 주었다.

 

6시 반.

항생제 그리고 철분제를 먹였다.

약이라면 질색하더니 힘이 없으니 별 거부도 못한다.


이사와서 애들 방이라고 꾸며놓았던,

캣타워와 바닥에 매트가 깔린 애용이만 놀던 방에,

병원 냄새가 묻어있는 그릉이가 들어가서 누우니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 것이라 느낀 듯 하악질과 솜방망이질을 한다.


그러고보니 우리집 캣폴 최상층은 그릉이 자리였는데

어느샌가 애용이가 차지하고 있다.


오전 8시 30분.

오늘은 출근하면 안될 것 같아 휴가를 냈다.


잠시 후 바닥에는 구토의 흔적이 있었다,

아침에 먹은 리커버리 한숟갈과

어제 준 습식사료 일부를 개워낸 것 같다.

추르와 물을 조금 먹였으나

걷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이 자꾸 휘청인다.

 


오후 12시.

빈혈 수치가 떨어져 산소 치료가 필요하다고 해서,

전날 급하게 연락한 산소방 대여 기사님이 오셨다.


산소방을 설치한 후 산소방에 넣어두었다.

갇힌게 싫어 나오려 몇 번 긁다 기력이 없어

금세 포기하고 스크래치 위에 눕는다.


오후 2시.

틈새로 나오려고 탈출시도를 하길래

우선 배변 패드도 깔아줘야해서 문을 열어주었다.


배변패드를 깔아주고 얼마간은 누워있다 움직인다.

들여다보니 소변을 보았다.

소변 양은 44.4그램.


통에 냄새가 가득이어서 잠시 냄새를 빼고

츄르 1/5정도를 주었다.

냄새를 빼고 다시 들여보냈지만

나오고 싶다고 계속 긁는다.

저러다 더 안좋아질까 걱정인데..

우선은 지켜보자.


오후 1시.

계속 눈물을 흘리던 아내 때문에

겨우 참고 있었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릉이가 가장 좋아하던 파란색 벤치에 올라가려는데

힘에 부쳐 오르지 못하는 모습에..


오후 3시반.

그릉이가 병원가기 전까지만이라도 편안히 쉬라고 산소통에서 꺼내주었다

입맛 없는 아이, 츄르라도 먹고 힘내라고

두어번 짜주니 더 이상 먹지 않는다.


오후 4시 40분.

밤새 제대로 못 자 잠시 몸을 누이고 있으니

그릉이는 없는 힘을 짜내 내가 있는 침대 위로 올라온다.

힘겨운 숨소리..


오후 5시 10분.

신약 투여 및 수액을 맞히기 위해 병원으로 향한다.

케이지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그릉이.

차 안에선 신음 소리만 들린다.


오후 6시.

그릉이 체온이 너무 낮다고 한다. 35도..

다행히 혈압은 어제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입원을 해서 산소방에서 수액맞으며 가온치료를 하거나

집에서 산소방에 따뜻한 팩을 넣고 가온해주는 방법을 선택하라고 한다.


선택이 너무 어렵다.


우선은 아내에게 저녁도 먹여야했기에

병원이 문 닫는 9시 반까지 수액을 맞히고

가온을 하기로 하고 집에 왔다.


오후 9시 30분.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다시 병원에 갔다.

야간에는 병원 근무도 없고,

함께 시간을 보내시라고 한다.


함께 시간을 보내라는 말.

그 얘기는 얼마 남지 않았음을 뜻했다.


그릉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오니,

집안에 무겁게 가라앉는 공기가 마음까지 무겁게 눌러버린다.


이제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7. GS44152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