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dy Jun 02. 2022

돈이란 무엇인가

2022.06.02

_에밀졸라


학생 시절 돈은 나와 무관한 무엇이었다. 어른들이 나에게 가끔씩 할애에 주는 권위의 한 조각 같은 그런 것. 그래서 돈을 번다는 행위는 학생 신분으로는 아직 고려 대상 너머 어떤 것으로서,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주어진 운명과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어리지 않은 나이에도 돈의 의미는 어린 시절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돈에 대한 개념은 대학 경제학 시간에 배운 교환매개, 가치저장, 가치측정과 같은 인문학적 정의를 넘어서지 못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돈이 돈으로서 진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당연히 사회생활이 시작되고 나서부터다. 누군가의 결정에 의해 내 손에 쥐어진 돈이 아니라, 내가 벌어 내 자율에 따라 처분이 가능한 지속적인 돈의 공급이야말로 바야흐로 돈에 대한 정의를 스스로 정립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돈이란 무엇인가?


돈을 벌기 위해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성인들에게 위 질문에 아주 성실한 답변을 요구한다면? 우리는 이론이 아닌 각자가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오롯이 들춰내 똑바로 마주해야만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우리의 인생과도 같은 돈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PAGE 186-187

투기(돈), 투기라!!! 하지만 투기, 그것은 삶의 미끼이자, 우리로 하여금 투쟁하고, 살게 만드는 영원한 욕망이요. ……….. 일상적인 거래의 현명한 수지 균형, 그것 만으로는 단조로운 사막, 일체의 힘이 잠들고 익사하는 늪이 생길 뿐입니다. 그게 아니라 열정적으로 지평선에서 꿈을 불태우세요. 1 달러로 100달러를 벌어보세요. ……… 이런 혼란을 틈타 단지 쾌락을 위해 땀을 흘리는데도 가끔 아이들이 생겨나죠. 위대하고 아름다운 생명 말입니다.


PAGE 314-315

그때 불현듯 카롤린 부인은 돈이란 내일의 인류를 자라나게 할 거름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사카르의 말, 즉 투기에 대한 단편적 이론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에 따르면 투기 없이는 풍요를 생산하는 거대 기업도 있을 수 없었고, 욕망이 없으므로 후세도 있을 수 없었다. 생명의 존속에는 이런 과도한 열정, 이처럼 천박하게 소진되는 욕망이 반드시 필요했다. 저 머나먼 곳에서 오빠가 작업장이 탄생하고 건물이 땅에서 솟아나는 가운데 즐겁게 승리를 구가하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파리에서 돈이 비 오듯 쏟아지며 모든 것을 투기의 광풍 속에서 부패시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중독과 파괴를 초래하는 돈이야말로 사회적 생장의 효모였고, 인간들을 서로 가깝게 하고 대지를 평화롭게 할 대역사에 필요한 부엽토였다. 오직 돈만이 산을 깎고 바다를 채우며 대지를 인간의 땅으로 만들어줄 힘을 갖고 있지 않을까? 일체의 선이 일체의 악을 만드는 돈에서 나왔다.


돈 그 자체에는 있을 수 없는 감정. 하지만 우리는 마치 돈이 태어날 때부터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돈과 함께 울고 웃는다. 의미를 부여하고 일생을 받쳐 서사를 입히며 돈이 주인공인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다. 주머니 속에서 만져지는 동전을 가지고 뭘 먹을지 한참 동안 행복한 상상을 하는 어린아이처럼, 돈은 이미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무엇인 듯, 돈에 구체적 감정을 부여하며 살아가는 우리 개인 개인들.


그렇다면 현재 나에게 돈이란 어떤 의미일까?


나의 대답은: ??????


우리는 쉽게 자극을 행복이라 착각하곤 한다(백수의 시간, 그 엄청난 무료함과 극히 대비되는). 돈이 가치 있게 쓰이는 시간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자극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지금 나에게 돈은 눈에 보이는 순간적인 자극과도 같은 것이다. 천천히, 슴슴하게, 일시적인 자극에 반응하지 않을 때 돈이건 행복이건 그 본모습을 드러내 보일 것임이 자명한데도 말이다.


이 책은 돈에 대한 작가 나름의 철학과 1800년대 프랑스 파리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최근 주식투자를 해본 입장에서, 이 책은 주식투자자의 원시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고고학 유적과도 같은 책이다. 중요한 건 현재에도 유용한 핵심 증권시장원리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용어가 복잡해지고 매매하는 방식이 추가되고, 세계가 디지털화된 속도로 빠르게 정보를 쏟아내고 있을 뿐, 그 핵심을 이루는 본질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현재의 자본시장 체계를 파악하기에 오늘날 책보다 훨씬 유용하다 할 수 있다. 오늘날 파리와 뉴욕과 서울의 거대한 빌딩 숲이 수백 년 전 기본 설계 위에 서 있듯이, 그 옛날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증권시장과 욕망이 들끓는 사람들은 여전하다. 이 책은 말잔치를 늘어놓은 수많은 현재의 주식투자 개발서들이 놓치고 있는 증권시장의 실질 작동원리를 엿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 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PAGE 400

‘돈을 없애야 합니다. 돈을….’


‘오! 그건 미친 짓이오, 그건! …….. 돈이란 인생 그 자체요! 다투어 경쟁하며 삶을 살아갈 그 이유를 없애다니, 돈을 없애 보시오.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을 거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 공터에서_김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