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그네 한 Jul 04. 2022

인생의 시작, 나의 관한 이야기들

난 나의 처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전해 들은 이야기들


"넌 어릴 때 정말 얌전했는데"

"넌 쑥떡을 아주 좋아했단다"

"고모가 너 한 살 때 석 달을 키웠어"


온 가족이 모인 어느 날. 이젠 삼촌, 고모, 이모로 불리기보다 누군가의 할아버지, 할머니로 불리는 나의 어른들. 가족이 모두 모인 그 자리에서 난 40년도 더 된 나에 관한 이야기를 어른들에게 듣는다. 그들은 40년도 더 된 한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정확히 기억한다. 난 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그들에게 아직 난 40년 전의 어린 아이다. 그리고 "내가... 너를"하며 자신이 나에게 보여준 크고 작은 일들을 강조한다. 그렇게 난 여러 어른들이 기억하는 나의 어린 모습들을 들으며 나를 이해한다.


아주 단순하고 평범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어른들에겐 커다란 의미이며 나에 대한 좋은 추억들이다. 난 그렇게 나의 어린 시절을 알게 된다. 난 자고, 먹고, 싸고, 웃고, 울고만 하던 그 어린 시절의 기억은 하나도 없지만 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를 추억한다.


기억이야 말로 지난 과거를 추억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각자의 어린 시절을 기억이 아닌 이야기로 듣는다.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과장된 것인지, 축소된 것인지는 난 알 길이 없다. 우리의 어른들이 "넌... 그랬어!"라고 하기에 그대로 믿을 뿐이다.


나는 알지 못하는 몸의 흉터


나의 몸엔 몇 개의 흉터 자국이 있다. 이마에 실로 꿰맨 작은 흉터 자국, 오른손등 위에 있는 약간 큰 화상 가국, 오른발 무릎에 난 흉터 자국... 나의 어른 들은 내가 어떻게 그 흉터들을 갖게 되었는지 알려주었다. 하지만, 난 당시 다친 기억들을 하지 못한다. 나의 어른들은 그때의 아찔했던 기억들을 회상하며 "그때 넌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그 정도만 다친 거야!"라며 감사해한다.


아주 가끔 난 평생을 함께 해온 나의 흉터들을 보며 어른들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그들에겐 이야기이지만 나에겐 평생 함께 해왔고 앞으로 그리고 죽는 날까지 지워지지 않는 가장 가까운 존재들이다. 그 흉터가 있기에 난 오래된 나의 이야기들을 잠시나마 회상할 수 있다.


(나에겐) 그 이야기들은 아름다운 추억이다.


많은 사람들이 추억을 말할 때 가장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절은 어린 시절일 것이다. 좋은 기억, 슬픈 기억, 아찔했던 기억,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기억들이지만 시간은 그것들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 준다. 나에게 그 이야기들이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난 전혀 그때 그 이야기들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의 관한 추억을 간직한 어른들의 환한 얼굴과 톤 높은 목소리는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들을 만들어 준다. 그렇게 난 아름다운 추억이 있기에 아름다운 미래도 소망할 수 있다. 어쩌면 그와 같은 '아름다움'이 그때 끝이 났을 지라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