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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맛동산 Aug 03. 2023

방글라, 나를 잘 부탁해!

어느 날 갑자기 내 인생에는 없었던 방글라데시로 가게 되었다.

어느 날 친구 A로부터 방글라데시 출장 제안이 왔다. 평소 외국에서 한 달 살기를 꿈꿔왔던 나는 단 1초의 주저함 없이 가겠다고 외쳤다. 처음에는 버킷리스트를 하나 해결할 수 있다는 설렘에 별 고민 없이 출장 갈 것을 결정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주변에서 정보를 쉽게 접해볼 수 있는 나라도 아니었고, 우리나라 검색엔진으로는 잘 나오지 않는 희귀한 나라니까... 그래도 발걸음을 뗄 수 있었던 건 어디든 사람 사는 곳 아니겠어?라는 마음과 생각보다 괜찮다는 출장 유경험자의 말들이 나를 안심시켰다.


방글라데시 하면 막연히 동남아시아에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한 위치마저도 생소한 곳. 코로나 이후로 직항이 없어져 태국을 거쳐 장장 11시간 만에 도착했다. 여러 공항을 다녀봤지만 명색이 국제공항인데 이렇게나 아담하고 심플할 수 있을까? 김포공항 국제선보다도 작은 곳이었고 왠지 모르게 허술함까지 느껴졌다. 짐을 챙기느라 남들에 비해 조금 늦게 입국 심사장으로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입국심사를 도우러 나온 친구가 그 새벽에 줄 선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제치고 나를 먼저 세울 수 있는 정도니... 먼저 와서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밤늦은 새벽에 도착한 터라 공항 밖을 나왔을 때 이미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상태였다. 간헐적으로 세워진 가로등 아래로 확인할 수 있었던 첫인상은 교과서로만 보던 한국의 7-80년대의 모습이었달까...? 개발도상국 그 자체의 생생한 현장이었다. 선진국, 혹은 휴양지의 나라에서 볼 수 없는 광경. 창밖으로 보이는 뷰가 그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이곳에 도착했다. 내가 외국에서 살아보게 되다니!


하루 만에 진행된 업무 인수인계, 간단한 주변 생활 공유를 마치고 선배 B는 바로 한국으로 출국했다. 곧바로 찾아온 주말은 정말 지구 내핵을 뚫을 만큼 외로움의 끝판왕이었다. 아무런 정보도 지인도 없는 곳에서 혼자 외로이 동떨어진 느낌이란… 이런 게 셀프 감금인가.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항상 사람들과 함께였고, 매번 가득 채워져 있는 나의 시간들로 인해 외로움이라는 것을 느껴보지 않았던 나인데... 이런 감정이 너무 생소했다. 그렇게 외로운 첫 주말을 보내고 나니 오히려 출근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먼저 출장을 다녀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같은 말들을 했다.

‘쉬엄쉬엄해’, ‘시간 많을 거야, 공부하기 딱 좋겠더라’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여가시간에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며 읽을 책도 준비했고, 러닝을 위한 준비도 했다. 하지만 여가시간이 뭐죠? 새로 나온 시간 이름인가요? 영어 공부하겠다고 책도 들고 왔지만 아직까지도 들춰보지 못했다.

시기가 잘 맞아서 이곳의 가장 큰 명절도 보내게 되었고, 상상이상으로 한국 사람에 대해 우호적이라 덕분에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들을 했다. 리액션이 좋은 나의 모습들을 즐거워하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하는 모습에 따뜻한 마음으로 꽉 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열대지방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들이 나를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 속으로 스미게 만들었다.


그저 평범한 삶을 살던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운명, 그것은 운명이었다. 평소 낙천적인 사람들을 동경했다. 아무리 바빠도 마음만큼은 여유를 가지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직접 보고 배우라고 여기에 오게 된 것이 아닐까? 수없이 비교하고 비교당하며 살아오던 나였는데, 출장을 핑계로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두고 왔고 동시에 그 짐에서 해방되었다. 오로지 지금에 집중하는 단순한 삶을 살게 되었다. 오늘을 즐겁게!라는 나의 모토를 온전히 실천하게 되었다. 물론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나의 습관은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 여기에서도 여전히 스스로 일을 만들어서 시간을 채우는 나를 보며 여전하네, 그 버릇 어디 안 가. 라며 혀를 차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달라진 또 한 가지.

그렇게 한국에서 실천하기 힘들었던 미니멀리스트… 여기에 오니 자동으로 실천하게 되었다. 있으면 편리하겠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삶.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뭘 그리 매일 꽉 채워 넣었는지. 다시금 미니멀리스트를 다짐해 보게 된다.

‘방글라 나를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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