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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Apr 28. 2024

거리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인도네시아 출장 때 일이다. 자카르타의 관광지중 하나인 Kota Tua는 한국인들도 많이 방문하고, Cafe Batavia는 꼭 한번 들려서 커피 한 잔 마셔야 할 곳이기 때문에 언제나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곳이었다. 하지만, Kota Tua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슬픈 역사적 사실들 그리고 우리가 멋지게 사진을 찍고 있는 그곳은 네덜란드 식민청이었단 사실을 알게 되면 잠시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오해를 살 만큼 Kota Tua의 모든 현장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건물이 망가지고, 낡더라도 그것은 네덜란드 식민지의 역사였으니 그 순간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둔 것이다.


Kota Tua에 남겨있는 대포에 흔적은 사실 인도네시아 국민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 인도네시아 인들을 억압하기 위한 수단이었단 사실은 우리가 착각할 수 있는 고정관념과는 많이 벗어나 있다. 그래도 인도네시아는 그렇게 했다. 숨기고 싶은 역사를 그대로 남기고, 그대로 방치하며 그대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심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 편으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자카르타 대성당을 볼 수 있다. 네덜란드 식민지의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어 가톨릭 신자도 많이 있지만 여전히 국가는 대다수가 이슬람신자이다. 그리고 일부는 가톨릭의 전통을 그대로 남겨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결혼이라는 문화이다. 나도 그날은 우연히 걸어가게 되었고, 우연히 찍은 사진이었다. 그리고 결혼식의 모습을 우연히 한 장 찍어 남기게 된다. (자카르타 대성당 맞은편에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 모스크가 있다는 사실은 우연일지도 모른다.)


내가 느낀 거리는 그랬다.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많은 것들을 표현했다. 그 나라가 가진 아픔을 이야기했고, 그 나라가 가진 문제점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 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해 줬다. 필리핀에 있을 때 일이다. 그나마 부유한 동네인 보나파시오의 한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소방차의 타이어는 광택이 날 정도로 맨들거렸다. 수많은 인프라에 대한 투자와  분배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소방서 옆에 우뚝 솟은 카지노는 휘황찬란한 불빛을 내뿜고 있지만, 소방차는 타이어가 너무 오래돼 반짝거리고 있으니 어찌 보면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은 양 극단을 보여주는 결과였을지 모른다.

이 모든 것들을 바라보며 내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단 하나였다. 바로 우리 눈앞에 놓여있는 그 모습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였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살아가는 그곳을 벗어나긴 힘들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걸어가며, 지켜보고 - 여전히 사진을 찍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 그리고 놓친 것들을 이야기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매거진을 시작할 때 놓친 것들에 대한 생각과 글을 담아보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거리가 담아낼 수 있는 본질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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