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월의쥰 Nov 25. 2023

천재는 못 돼도 조롱박벌은 되지 말자.

더글라스 호프스테터 <괴델 에셔 바흐>

… 조롱박벌은 기계-모드로는 탁월하게 작업하지만, 자신의 틀을 선택하거나 심지어 자신의 기계-모드를 조금이라도 변경할 수 있는 능력은 전혀 없다. 조롱박벌에게는 자신의 체계 안에서 같은 일이 자꾸자꾸 되풀이되는 것을 알아차릴 능력이 없다. 왜냐하면 그런 일을 알아차리는 것은, 아주 조금이라 할지라도 체계 밖으로 벗어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롱박벌은 반복의 동일성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떤 반복적 사건들의 동일성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이 생각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 보면 흥미롭다. 우리의 삶 속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일어나고 있는데 그 동일성을 지각할 충분한 개관능력이 없기 때문에 매번 똑같은 어리석은 방식으로 처리하는 고도로 반복적인 상황이 있는가? 이 질문으로 인해서 “동일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논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패턴인식을 논의할 때 인공지능의 주제로서 이 논점과 곧 마주할 것이다.

-더글러스 호프스테터, <괴델 에셔 바흐>, 박여성 안병서 역, 까치, 842

이 책의 경의로움 중 하나는 못 알아먹을 페이지가 그렇게나 많은데 너무나 멋지고 근사해서 사람들한테 큰소리로 반복해서 읽어주고 싶은 구절도 비등하게 많다는 것이다. 이야말로 천 페이지가 넘는 책의 위엄이라 할 수 있다.

호프스테터 씨는 인공지능 파트에서 지능이 어떤 식으로 ‘가능’하게 되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이 책이 쓰인 70년대에 비하면 현재 인공지능의 수준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차이가 나는 것일 테지만, ‘지능’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기본인식의 토대는 이 책에서 논의하는 것이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책에서 ‘여전히 튜링테스트는 무엇보다도 유효하다’고 말하고 있듯이, 호프스테터의 통찰력도 여전히 유효하고, 매우 앞서간 것이 아닐 수 없다.

호프스테터의 가장 뛰어난 우화인 개미와 개미핥기로 빗대어 설명한 지능의 창발성, 즉 서로 다른 층위를 갖는 지능의 구조라는 기본 개념 위에 인공지능의 논의도 이루어진다. 과연 ‘지능’은 어떤 식으로 학습하는가? 여기서 저자는 지능 모드와 기계 모드를 구분하여 이야기하는데, 기계모드는 덩어리로 학습된 지식을 이용한다. 그것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갖지 못한다. 목표를 설정한 뒤 입력을 하면 출력이 나오는 식이다. 인용문에서는 조롱박벌의 경우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지능’은 그런 덩어리 지식으로 입출력을 완성하지 않는다. ‘지능적인 프로그램이란 아마 서로 다른 종류의 많은 문제들을 충분히 해결할 정도로 다재다능한 프로그램일 것이다. 그 프로그램은 각기 다른 일을 하는 것을 배우고 그렇게 하는 데서 경험을 쌓을 것이다. 그것은 규칙들 안에서 작업할 수 있을 것이나 또한 적절한 순간에는 뒤로 물러나서, 프로그램이 달성해야 할 전반적인 목표의 관점에서 볼 때, 규칙들 안에서 작업하는 것이 유리한지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주어진 프레임 안에서 작업하는 것을 중단하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고, 필요하다면, 새로운 규칙틀을 창출해 한동안 그 안에서 작업할 수 있을 것이다.’(841)

즉 지능적인 프로그램은 체계 밖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니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지능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통찰을 준다. 우리가 때로는 우리 삶을 메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인간의 두뇌가 지닌 메타의식을 활용하지 않는 한 인간의 삶이 조롱박벌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 또한 시사한다.

호프스테터 씨가 그런 문과적인 통찰을 제공하려고 쓴 것인 아닌 것이 분명하지만서도 굳이 삶으로 치환해서 읽어볼 만한 구절 하나를 더 인용해 보자면,

첫 번째 방법은 가기에 여유로운 길로 보일지도 모르고, 두 번째 방법은 가기에 어렵고 복잡한 길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 공간의 재구성을 통한 해법은 일련의 느리고 의도적인 사고과정의 산물이 아니라, 종종 전광석화 같은 갑작스러운 통찰로서 나타난다. 아마 이런 직관적인 섬광은 지능의 가장 깊은 핵심부에서 나올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섬광의 근원은 우리의 뇌가 지키려고 애쓰는 엄중하게 보호된 기밀이다.

-위의 책, 840

이 이야기는 철망 밖에 있는 뼈다귀를 호프스태터씨네 개 샌디가 어떻게 입에 넣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샌디가 뼈다귀만 바라보고 직진한다면 결코 뼈다귀에 닿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저 멀리 철망을 통과할 수 있는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본다면, 그것이 한참 돌아가는 길이라고 할지라도 샌디는 입에 뼈다귀를 물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올 수 있다. 그 차이는 무엇인가? 호프스테터 씨의 따뜻한 조언을 추가하자면, ‘철망 앞의 개들은 때때로 부과된 것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는데, 특히 뼈다귀가 아주 가까이 놓여 있고, 개들 눈에 빤히 보이며, 너무나도 맛있어 보일 때 그렇다. 그런데 문제 공간이 물리적 공간보다 약간 더 추상적일 경우, 사람들 또한 짖어대는 개들과 마찬가지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통찰력이 부족할 때가 자주 있다.’(840)

… 왜 갑자기 홍상수 영화들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그 일정한 패턴들, 반복이 만들어내는 우스꽝스러움은 철망을 향해 돌진하며 짖어대는 개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인간 군상들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다 된 호프스테터에 홍상수를 뿌리며 이 글은 여기서 일단락.


작가의 이전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작가가 만들어낸 작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