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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쥰 Dec 19. 2023

층위란 무엇인가

<괴델, 에셔, 바흐>

… 괴델의 문자열 G와 바흐의 푸가는 둘 다 다른 층위들에서 이해할 수 있는 속성이 있다. 우리 모두 이런 종류의 일에 익숙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그것을 다루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도 없다.

예를 들면, 우리는 인간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약 25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따라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원리적으로는 세포 차원에서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또는 심지어 분자의 층위에서 기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것을 아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병이 나면 의사한테 간다. 의사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낮은 층위에서 우리를 관찰한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면서 DNA나 “유전공학”에 대해서 읽는다. 우리는 그것들을 그냥 따로 떼어놓음으로써 우리 자신에 대한 완전히 다른 이 두 가지 모습을 조화시켰다. 우리 자신에 대한 현미경적 기술을 우리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느끼는 것에 결부시킬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에 대한 별개의 표현들을 우리 마음속에 완전히 별개인 “구역”에 저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 자신에 대한 이러한 두 가지 개념 사이를 오가면서 “완전히 다른 이 두 가지가 어떻게 똑같은 나일 수 있단 말인가?”하고 의아해할 일은 거의 없다.

또는, TV화면으로 웃고 있는 셜리 맥클레인의 동영상을 본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가 그 영상을 볼 때, 실제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어떤 여자가 아니라, 평면 위에서 점멸하고 있는 점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지만, 전혀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화면 위에 나타난 것에 대해서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두 개의 표현이 있지만 우리는 그로 인해서 혼란을 겪지는 않는다. 우리는 한 표현은 차단하고 다른 표현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하는 방식이다. 어느 표현이 “더 현실적”인가? 그것은 당신이 사람인가, 개인가, 컴퓨터인가 아니면 텔레비전 수상기 세트인가에 따라서 다르다.

- 더글라스 호프스테터, <괴델, 에셔, 바흐> 385~6

어제 층위의 중요성을 전제로 책을 소개했지만 막상 그래서 층위가 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포스팅을 수정하기보다는 새로 글을 정리하게 된 것은 인용하고 싶은 글이 길기 때문이다.) 층위란 무엇인가? 당장 네이버에 층위라고 쳐보면 각 분야에서 쓰는 층위의 개념이 여러 개 검색된다. 그중에서 국문학자료사전에서 제공한 정의를 가져와 보자면,

“ 언어 계층의 각 층, 어떤 유(類)의 언어 요소가 전체의 언어 구조상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말한다. 언어의 발화(utterance)는 부분들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며, 음에서 문장에 이르기까지 하위(下位)의 요소가 상위(上位)의 요소에 포함되는 밀접한 계층적 관계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따라서 층위는 언어 분석의 절차를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개념이 된다. 복잡한 언어 구성을 과학적으로 기술하기 위하여 언어학자들은 각 분석 단계에서 분석 대상을 음운ㆍ형태ㆍ통사 등의 어느 한 면, 즉 한 층위에 제한한다. 각 층위에 상이한 특징이 있으며, 또 상이한 기준이 적용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것을 분석 층위 혹은 언어 기술 층위라고 한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호프스테터가 컴퓨터 체계의 설명을 위해 가져온 것은 기술층위 개념이기 때문에 위의 설명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저 정의에서 특히 ‘각 층위에 상이한 특징이 있으며, 또 상이한 기준이 적용’된다는 것을 재미있게 풀어쓴 것이 호프스테터의 책에서 인용한 위의 글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세포 층위에서 생각하며 살아간다면(가능하지도 않겠지만 가능하다고 가정한다면) 느껴지는 시간의 개념부터도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통합된 의식이라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상위 개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 자체가 의식이라는 층위의 독립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가 된다. 의식의 하위 층위에 존재하는 신경세포, 즉 뉴런, 혹은 뉴런을 구성하는 분자, 원자, 양자 차원 또한 우리 자신을 이루는 구성요소이지만 이를 상위 층위에 결합시켜 생각하지는 않는다. 방금 내 뉴런이 그렇게 지시했어!라고 말하는 것은 재치 있는 변명이 될지언정 실제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이의 유명한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프로그램과 기계, 길고 복잡한 명령의 배열과 그 명령을 수행하는 물리적인 기계 사이의 차이이다. 나는 소프트웨어를 “전화선을 통해서 보낼 수 있는 모든 것”으로, 하드웨어는 “그 밖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피아노는 하드웨어이고, 인쇄된 악보는 소프트웨어이다. 전화기는 하드웨어이고, 전화번호는 소프트웨어이다. 그런 구별은 쓸모는 있지만 항상 그렇게 명확한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들 또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측면이 있는데, 이 두 개가 다르다는 것은 우리에게 제2의 천성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리학적인 경직성에는 익숙하다. 그저 두 개의 간단한 예를 들면, 우리의 질병을 의지대로 고칠 수 없다거나 머리카락을 아무 색깔로나 자라게 할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나 우리 마음을 “다시 프로그래밍해서” 새로운 개념틀 속에서 운용할 수 있다. 우리 정신의 경탄할 만한 유연성은 우리의 뇌가 재프로그래밍할 수 없는 고정된 규칙의 하드웨어로 틀림없이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과는 거의 화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중략) … 하드웨어에 관한 한 그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다. (중략)

그러나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사고의 측면들이 분명히 있다. 의지의 힘으로 스스로를 더 똑똑하게 만들 수는 없다. 원하는 대로 빨리 새 언어를 배울 수도 없다. (중략) 등. 이것은 일종의 원초적인 자기-앎으로 너무나 명백해서 어쨌든 그런 것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공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우리 정신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결점”을 야기하는 것, 즉 우리 뇌의 조직에 대해서 결코 애써서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의 주요 목표는 정신이라는 소프트웨어를 두뇌라는 하드웨어와 조화시키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 위의 책 408~9

저자의 놀라운 통찰력에 감탄하다가도 이 책이 얼마나 오래된 연식을 자랑하는지를 ‘전화기’ ‘전화선’ 그리고 상당히 자주 등장하는 ‘체스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한 언급을 통해 환기하고는 한다. 전화선으로 네트워크에 연결하던 통신 시대, 그리고 아직 컴퓨터가 체스 챔피언을 이기지 못하던 시대에 쓴 책이라니. 그리고 이 책의 목표는 너무나도 원대하다. 뇌와 정신을 조화시키는 방법을 제시하다니. 최근에 나온 관련책들도 이 정도의 성취를 이뤄내지는 못한 것 같다. 의식의 비밀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끈질기고 야심 차게 의식의 탐구를 추구했던 프랜시스 크릭도 저 세상으로 갔다. 혹자는 컴퓨터를 통해 의식의 비밀이 결국 밝혀지는 것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도 하는데, 내가 살아있는 동안 뭐가 됐든 성취하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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