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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쥰 Feb 11. 2024

자유가 악이라는 사회를 상상해 보다

에드워드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

… 문명은 영장류에게만 내재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우연에 의해, 노출된 피부를 갖고 두 발로 서 있는 포유동물의 신체 구조 및 인간 본성의 특이한 성질과 연결되었을 뿐이다.

프로이트는 신이 괴상망측하고 불공평한 작품을 만든 죄를 지었다고 했다. 그 말은 그가 의도한 것보다 훨씬 더 의미 적절한 표현이다. 인간 본성은 상상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 중에서 나온 단지 하나의 잡동사니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의 식별 형질 중 극히 일부만이라도 떼어낸다면, 아마 무의미한 혼돈이라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인간은 구대륙 영장류 중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조차 참지 못할 것이다. 만약 상호 동의가 이루어져 어떤 인간 집단이 침팬지나 고릴라의 독특한 사회 질서를 상세히 모방하려 시도한다면, 그들의 노력은 곧 좌절될 것이고 그들은 인간의 행동으로 완전히 복귀하게 될 것이다.

- 에드워드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 이한음 역, 사이언스 북스, 52

출간 당시 화제성만큼이나 엄청난 비난-비판이라기보다는 비난에 가까운-을 받은 것이 지금에 와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책이다. 아마도 내가 이제야 읽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로부터 ‘악마의 사도’라고 불리는 리처드 도킨스를 이미 다양하게 접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도킨스가 인간의 모든 특성들을 유전자의 ‘숙주’로서 발현되는 것들로 봐야 한다고 했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약간은 다른 측면으로, 즉 ‘인간이 특별한 존재’라는 인간주의적 사고방식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그저 무수한 생물종의 하나인 ‘영장류인 인류’로서 가지는 생물학적 특성이라는 주장이다. 지금에 와서는 크게 놀라거나 분노할 지점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들’에게는 꽤나 충격적일 듯하다. 특히 생물학적인 특성에 수렴되는 영역들을 연구하는 학자들로서는, 다시 생각해 보니 화가 날 만하다. (ㅎㅎ)

목차에 드러난 그 영역들을 대충 살펴보면 문화, 성, 도덕, 종교 등이다. 사실상 인문학 전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현재의 인문학은 진화론과 생물학, 유전학 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면 도태될 위기에 있다. 어쨌든 이 모든 변화의 서곡이 된 책이니 이제야 읽은 게 머쓱할 정도다.

9장 희망 편의 한 대목은 왜 이 책이 인문학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탈인간주의’ 즉 인간이 인간의 관점을 벗어나서 인간을 관찰하는 사고를 보여준, 개인적으로는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라 길게 인용한다.

… 보편적 인권은 세 번째 기본 가치로 간주하는 편이 적절할지 모른다. 이런 생각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로 최근의 유럽-미국의 발명품이다. 나는 보편적 인권이 신의 명령(왕은 신권에 의해 통치하곤 했다)이나 미지의 초월적 근원에서 유래한 추상적 원리에 복종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포유동물이기 때문에 그것에 기본적인 지위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사회는 포유동물적 계획에 토대를 두고 있다. 즉 개인은 우선 자신의 번식에 성공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이차적으로 가까운 친족들을 번식시키기 위해 애쓴다. 그다음에 마지못해 하는 협동은 집단 구성원의 이익을 향유하기 위한 타협을 의미한다. 이성을 지닌 개미는 - 개미를 비롯한 사회성 곤충들이 진화하여 고도의 지능을 갖게 되었다고 상상하자 - 그런 순서를 생물학적으로 불건전할 것이라고, 개인의 자유라는 개념 자체를 본질적인 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고도 기술 사회에서는 권력이 너무 유동적이어서 이 포유동물적 명령을 회피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보편적 인권을 따를 것이다. 즉, 장기적인 불평등이 가져올 결과는 언제나 일시적인 혜택에 비해 위험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보편적 인권 운동의 참된 이유이고, 문화가 그것을 강화하고 완곡하게 표현하기 위해 아무리 합리화를 하든 간에 결국은 그것의 근원적인 생물학적 원인을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바이다.

그리고 나면 가치의 추구는 유전자 적합성이라는 공리주의적 계산법을 넘어서게 될 것이다. 비록 자연선택이 일차적인 동인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생존과 번식을 성공으로 이끈 메커니즘으로 작용해 온 이차적인 가치들을 근거로 한 연쇄적인 결정들을 통해 작동한다. 이 가치들은 주로 우리의 가장 강렬한 감정들에 의해 정의된다. 극도의 열정과 모험심, 발견의 희열, 전투와 경기에서의 승리감, 진심 어린 이타적 행동에서 우러나오는 만족감, 민족적 및 국가적 자존심의 고양, 가족의 유대에서 나오는 강한 감정, 가까운 동물과 식물로부터 얻는 내밀한 생물 사랑의 기쁨이 바로 그런 감정에 해당한다.

- 위의 책, 272-3

이 외에도 윌슨 씨는 과학정신을 종교의 우위에 두고 종교의 유일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쓴다. 쓰면서 생각해 보니 ‘만들어진 신’이라며 종교를 단호히 부정하는 도킨스보다도 더 화나게 만드는 부분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실실 웃게 된다. (종교라든가 인간중심주의에 대해 영국인 특유의 시니컬한 조롱을 이용하는 도킨스와 달리 이 분의 태도는 너무나도 진지하고 정중해서 듣는 입장에서는 왠지 더 열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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