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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쥰 Feb 28. 2024

수포자들을 위한 수학에 대한 책

 <미적분의 힘>

… 아르키메데스는 <구와 원기둥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자신이 얼마나 큰 기쁨을 느꼈는지 이야기한다. “이 성질은 수들에 자연적으로 줄곧 내재해온 것이지만, 나 이전에 기하학 연구에 몰두한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것들이다.” 여기서 자부심이 넘치는 그의 기분은 무시하고, 그가 자신이 발견한 성질들이 “수들에 자연적으로 줄곧 내재해온 것이지만… 알려지지 않았던 것들”이라고 한 말에 주목하라. 여기서 아르키메데스는 모든 수학자가 소중하게 여기는 특별한 수학철학을 표현하고 있다. 수학자들은 자신이 수학을 ‘발견’한다고 느낀다. 그 결과는 바로 저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들은 우리가 발명한 것이 아니며, 수들 속에 줄곧 내재해온 것이다. 밥 딜런이나 토니 모리슨과 달리 우리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음악이나 소설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존재하고 있던 사실, 곧 우리가 연구하는 대상에 내재하는 사실을 발견한다. 비록 우리는 그 대상 자체를 발명할 (완전한 구와 원과 원기둥 같은 이상적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창조의 자유가 있긴 하지만, 일단 만들어내고 나면 이것들은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스티븐 스트로가츠, <미적분의 힘>, 이충호역, 해나무, 109

이 책을 추천한 대단한 사람들의 평을 잠시 훑어보면, ‘당신이 언젠가 미적분학을 배우고 싶었다면, 그 언젠가는 바로 지금이다(조던 엘렌버그)’ ‘훌륭하다. 모든 이들을 수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전 중 하나인 미적분학의 통찰력으로 이끈다 (브라이언 그린)’ 이외 이언 스튜어트, 리사 랜들, 대니얼 길버트 등이 호들갑스럽다고 느낄 정도의 찬사를 늘어놓았다. 이것의 효과는 매우 좋아서 나는 이 책을 사고 말았다. 그리고 끝까지 다 읽었다. 다른 책도 아닌 수학에 대한 책을! 사실 그 사실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인물들의 호들갑은 정당하다고 생각하긴 한다. 왜냐하면, 내가 읽다가 ‘잠시 중단한’ 수학에 관련된 책이 벌써 몇 권이나 되기 때문이다.

아마 나 같은 수포자들 중에서도 ‘미적분만큼만은 흥미를 갖고 풀었다’는 사람들이 꽤 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주위에 물어본 결과로, 아닐 수도 있다.) 미적분은 수학에 관심이 없던 이라 할지라도 그 개념의 놀라움 때문에 일단 그게 어떤 원리를 통해 작용하는지 알게 되면 흥미를 갖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무한대의 개념을 이용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맥락 하나하나가 다 매력적이다. 고등학교 때 가발로 대머리를 감추고 성추행과 폭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징그러운 수학선생 때문에 수학이 혐오스럽기까지 했지만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계기를 통해 최소한 미적분만큼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때도 미분과 적분의 개념을 듣고 꽤나 놀랐던 기억은 남아있다. 그러니 이 책을 보고 이것만큼은 끝까지 읽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여러 훌륭한 과학저술가들이 호들갑을 떤 것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책은 정말 쉽게 느껴진다. 구분해야 할 것은 우리가 영어의 유래와 역사, 특징, 다양한 변이와 현재의 활용도에 대해서 한국어로 쓰인 책을 정독한다 해도 영어로 프리토킹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듯, 이 책 역시 미적분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것이 우리가 미적분을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매일 조금씩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그 사실이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평론을 읽는다고 시나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고딩때 미적분에 대한 개념을 접하지 않았더라면 그나마 손을 놀려 식을 풀어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고딩때 접했으면 좀 더 좋았겠지만 (그랬다면 미적분에서 확장되어 가는 다른 함수들에도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뭐 어쩌랴. 관심이 수학점수를 획기적으로 올려주었을 거라는 확신도 없는 마당에 지금에라도 한 번쯤 읽어본 것으로 만족할 생각이다.

… 파동 이론과 푸리에 해석은 음악 연구에서 시작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컴퓨터 단층 촬영술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한 순간에도 음악이 필수적인 역할을 했다. 하운스필드가 획기적인 개념을 생각해 낸 것은 1960년대 중반에 ‘일렉트릭 앤드 뮤지컬 인더스트리 EMI’라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그곳에서 처음에는 레이더와 유도 무기를 연구하다가 나중에는 영국 최초의 트랜지스터 컴퓨터를 개발하는 일로 관심을 돌렸다. 여기서 큰 성공을 거두자, EMI는 하운스필드가 원하는 연구 계획은 무엇이건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 당시 EMI는 자금이 넘쳐나 그런 모험을 얼마든지 감수할 여력이 있었다. 리버풀의 비틀스라는 밴드와 계약하고 나서 수익이 두 배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운스필드는 X선으로 내부 기관을 촬영하는 아이디어를 듣고 경영진을 찾아갔고, EMI의 넉넉한 재정은 그가 그 연구에서 첫걸음을 내디디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10년 전에 코맥이 그것을 이미 풀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독자적인 접근법으로 수학의 재조립문제를 풀었다. (중략) 순수수학 분야의 연구가 이미 50년 전에 CT스캐닝에 필요한 도구를 준비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위의 책, 435

미분학의 태동과 발전, 그리고 뉴턴과 라이프니츠에 와서 꽃을 피우고, 현대 과학, 나아가 실생활에 어떻게 응용되고 활용되고 있는지를 알면 수학자인 저자가 왜 미적분에 대한 경외심을 이토록 표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 책에는 이런 일화들이 넘치게 많이 나오지만, 사실 핵심적인 내용은 수식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있다. 이 책도 그 과정을 ‘쉽게’ 다루지만 읽다 보면 약간 마술 같다. 아, 그렇구나 하면서 돌아서면 내가 이해를 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수포자의 위엄! 그러니 그냥 덮어놓고 외우라고 시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 조금은 슬퍼진다.

이 책은 오후에 읽으면 집중을 도통 못할 것 같아서 아침마다 사과를 사각사각 먹으며 조금씩 읽었다. 미적분 수식에 이르는 그 과정들은 기억이 안 나도 사과의 맛과 이상하게 머릿속에 크게 울리던 사과 씹는 소리가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수포자의 위엄 2) 그리고 변화율을 나타내는 도함수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들던 ‘낮의 길이 변화율이 가장 빠른 달이 3월’이라는 사실이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다.


… 그 변화율은 파도처럼 출렁인다. 그것은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한겨울과 초봄에 양의 값으로 시작해 79일째(춘분인 3월 20일)무렵에 정점에 이른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이 무렵은 낮의 길이가 하루당 약 2.72분씩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시기이다. 하지만 그날 이후에는 변화율이 하향 추세로 돌아선다. 변화율은 죽 감소하다가 172일째인 하지(6월 21일)을 지나면 음의 값으로 변한다.


-위의 책, 266


낮의 길이와 변화율의 파동이 1/4 사이클씩 어긋난다는 사실은 날씨에서 나타나는 기온과 밤낮의 길이가 어긋나는 것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런 예시들을 수학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즐거웠다.  (늘 인식하고 있던 사실이 도함수와 관련 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과 기쁨이랄까.)  그리고 곧 변화율이 가장 가파른 시기가 다가온다. 날은 여전히 춥지만 이제부터 드라마틱하게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즉, 봄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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