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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쥰 Mar 26. 2024

거부하고 싶기도 한 강렬한 그림의 매력

<그래픽 종의 기원>

책에 있어서는 특히 충동구매를 거의 안 하는 편인데 간혹 할 때도 있긴 하다. 예를 들어 <그래픽 종의 기원>(마이클 켈러 글, 니콜 레이저 풀러 그림, 이충호 역, 랜덤하우스)는 헌책방에서 보자마자 바로 구매를 해버렸다.

사지 않기엔 책의 외관이 너무 예뻤기 때문이다.

이런데 어떻게 안 사요.. (브런치는 사진이 굉장히 크게 올라가네요.;;)

득템에 기뻐하며 의기양양하게 집에 돌아와 자세히 보니 표지에 손때가 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책만 사지만 때 탄 책 안 좋아함) 그러나 역시 흔치 않은 판형과 꼼꼼한 제본, 과하지 않으면서 고급스러운 하드커버의 마감 등 만듦새가 매우 훌륭한 책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는데… 책을 읽어볼까 해서 펼치는 순간, 그림체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다윈은 뭐랄까 생김새로 너무 많은 공격을 받아온 편이라 (늘 그렇듯 유인원과의 유사성에 집중해서 조롱하는 편) 이 책도 은근히 다윈(과 그의 가족들까지) 조롱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려던 차에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작화가의 스타일일 뿐이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상태로 책을 다시 읽어가던 중,


이 대목에서 큰 웃음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초반의 당혹감은 잊고 이 일러스트레이터의 유머감각이 또 발휘되는 곳을 찾는 데 주력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후부터는 책의 내용에 충실한 그림들이다 보니 동물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다윈의 아이디어가 도약을 하는 순간을 포착한 유쾌한 그림 같은 것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볼수록 이 일러스트레이터가 인간을 동물의 한 종으로 충실하게 그리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책에 등장하는 인간이 아닌 동물들의 그림은 대부분 아름답다. 민둥한 얼굴에 드문드문 털이 난 인간은 사실 매우 추악한 모양새를 지녔다. 공평한 눈으로 보면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다 보니 그림에 대해서만 평하게 되었는데 <종의 기원>을 요약해 놓은 내용도 훌륭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원작의 목차에 따라 충실하게 구현해 놓았으며 책이 나오기까지, 그리고 책을 쓰고 출간되기까지, 마지막으로 출간 후의 논란부터 후대의 진화론의 분화와 발전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모든 사항을 깔끔하게 글과 그림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2010년에 출간된 이 책은 현재 절판이라 헌책으로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림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꽤 갈릴 것 같아 한 번 읽어들 보세요라고 가볍게 말하기만은 망설여지는… 그런 아주 아리송하게 매력적인 책이다.


책의 끝으로 갈수록 다윈을 비롯한 인물들의 강렬함은 좀 수그러들고 평범해지는 편이다. (편집자의 입김이 있었을까?) 마지막장에 이르러 매우 보기 좋게 인자한 모습이 된 다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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