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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쥰 Apr 12. 2024

두뇌풀가동하여 본능 극복

<생각은 어떻게 행동이 되는가>

… 이 책을 마지막으로 손보고 있는 지금 인류는 핵무기가 출현한 이후로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큰 지구적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바로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 변화다. 이미 세계가 유례없는 속도로 더워지고 있고, 이 온난화의 원인은 화석연료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의 배출이라는 점에 과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하지만 그러한 합의에도 우리는 이 문제에 놀라울 정도로 나태하다.

(중략)

201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인간이 기후 변화를 일으켰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은 약 75퍼센트에 이르고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는 50퍼센트에 이른다. 이 조사가 정확하다면 많은 사람이 기후변화를 믿고, 인간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문 하나가 환경운동가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왜 어떤 사람들은 기후 변화를 믿지 않을까?”가 아니라, “왜 많은 사람이 기후 변화를 믿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다.

이 역설은 앎과 행동의 단절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이 기후 변화를 알고, 그 위기를 피하거나 피하지 못하는 시나리오를 상상할 줄 안다는 것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교육과 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기후 변화를 알리고 회의론과 부인론을 논파하는 것도 여전히 유익하다. 하지만 기후 변화에 대해 알고 그 효과를 상상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그 외에도 우리는 우리의 지식과 행동을 연결할 필요가 있다. 이건 조절 문제다.

(중략)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고나 할 때 사람들은 행동의 이익과 노력에 들어가는 비용이 긍정적으로 맞거래된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지구의 기후의 생태계가 파멸에 이르지 않을 미래에서 이익을 보고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미래가 올 수 있음을 알면서도 많은 사람이 행동하지 않는다. (중략)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지 않거나 채식을 하겠다는 개인적인 선택으로 지구 온난화를 막을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더 나아가, 만일 필요한 행동에 더 많은 비용이 들면 사람들은 결과를 깎아내린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때는 우리가 처한 상황이 심각하다고 강조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환경운동가들도 기후 변화를 되돌리기 위해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개인적인 행동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행동의 비용이 클수록 효과가 크다는 것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데이비드 바드르, <생각은 어떻게 행동이 되는가>, 김한영 역, 해나무 438~441

 인간이 하는 일들의 상당 부분이 무의식적으로 행해지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후자 쪽이다. 생각하는 것들이 모두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의 뇌)은 어떻게 생각을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조절체계를 갖추고 있는가?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만 생각은 비로소 행동이라는 결과로 드러날 수 있을까?

이번에도 전전두엽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는 대부분의 특성이 전전두엽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전전두엽이 손상된 환자들은 보통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계획도 세울 수 있지만 막상 그것을 실행하는 것에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각종 두뇌 회로와 보상체계 등 아직은 가설에 좀 더 가까운, 그러나 하나씩 실험으로 증명되어 가는 뇌의 체계 분석으로 이어진다. 이 주제에 관심이 없거나 뇌과학 책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이 과정을 쫓아가는 게 쉽지는 않을 듯하지만 ‘일을 수행하는 능력’은 곧 생존능력과도 직결되는 만큼 어느 정도 대중성도 갖추고 있는 주제일 것이다. (일에 대한 집중력을 효율적으로 높이는 메커니즘이라든가 멀티 태스킹이 왜 비효율적이며, 그나마 가능한 멀티태스킹의 이상적인 환경 등을 다루고 있기도 하다.)

데이비드 씨는 위에 인용한 문구가 포함된 책의 후기에서 ‘왜 인간들은 돌이킬 수 없는 기후변화의 위협 앞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인가’에 대해 의견을 쏟아낸다. 큰 공감과 함께 큰 한숨을 자아내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비용이 들어가는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 마치 인지조절계가 고장이라도 난 듯이 행동한다. 당장의 편안함과 쾌락을 추구하는 좀 더 본능적인 욕구를 스스로 제어하게 만들려면, 그 제어가 훗날 더 큰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확신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개인이 채식을 실천하고 쓰레기 덜 버린다고 뭐가 달라지느냐는 말을, 기후위기는 그런 식으로 돌이킬 수 없다는 회의론 뒤에 숨은 ‘실행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얼마나 많이 접했는지 모른다. 기후 위기를 걱정하며 다음 휴가 때 갈 비행기표를 예약하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함부로 비난했다가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더 큰 비난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환경 문제라는 분야에 있어 공리주의는 힘이 없다. 내가 겪기로는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더 큰 강제가 필요하다. 정부 정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회용품에 대한 엄격한 규제 등도 그에 해당되는 것이겠지만 당장 이번 정부의 정책만 봐도 지지율 신경 쓰느라 겨우 정착시켜 놓은 정책도 후퇴시켜 버린다. 정말 헛웃음이 나온다. 한국인들만, 한국 정부만 그런 건 아니라지만 한국인들의 연간 탄소소비율은 늘 최고 수준에 접근한다. 교육방송의 ‘위대한 수업’에 출연한 환경역사학자는 ‘인구 억제만큼 환경 문제 해결에 강력한 해법이 없다’면서 인구수를 자발적으로 줄여나가는 한국의 젊은이들에 자리를 빌려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한국은 경제문제 때문에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차별적인 정책으로 어떻게든 아이를 낳게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물론 한국인들은 공리주의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국가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 팬데믹 상황에서의 놀라운 자제력은 한국인들의 인지조절 능력이 집단적이고도 집약적으로 드러난 사례이고, 개인의 자유보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기본 개념부터가 서구인들과 다른 점이기도 하다. 최근 후퇴하고 있는 환경에 대한 대중의 의식은 정부라는 리더집단의 성격에 따라 집단의 인지조절의 수준 또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야기가 매우 엇나가버렸는데, 하여튼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흔히 생각하듯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당장 이 글을 쓰는 행위만 하더라도, 사실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지만 미루고 미룬 끝에 꾸역꾸역 쓰고 있다. 무엇일까, 내가 책을 읽고 그에 대한 글을 쓰게 강제하는 메커니즘은, 그 보상체계는. 보상은 없습니다.. 네.. 이것은 (지금보다 더 멍청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해소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그 또한 일종의 보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책을 읽는 것, 글을 쓰는 것, 분리수거를 하는 것, 채식을 하고 소비를 지양하고 추위와 더위를 견디는 것 등은 모두 인지조절체계를 풀가동해야 가능한 일들이다. 쓰다 보니 급피곤 해지네… 어쨌든 저자 데이비드 씨는 인지조절에 성공한다면 ‘우리가 사는 방식과 우리가 살고 싶은 방식이 하나로 연결된다. 우리는 어떤 것이든 해낼 수 있다. 무엇이 이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을까?’(444)라는 근사한 말로 책을 끝맺고 있다.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 좀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풀가동하는 인지조절 체계라면 좀 피곤해도 할 만할 것이다. 데이비드 씨가 좀 낙관적이긴 한데, 생각이 실제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하면 된다’는 낙관주의가 정말이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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