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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쥰 Apr 25. 2024

난류를 이해하면 샤이 훌루드도 정복할 수 있을까?

필립 볼의 형태학3부작 중 <흐름>

… 여러분은 신을 만난다면 어떤 질문을 하겠는가? 독일 물리학자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마음속에 있던 질문은 아마도 다음과 같았던 듯하다. “내가 신을 만난다면 신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겠다. 왜 상대성인가? 그리고 왜 난류(turbulence)인가? 나는 신이 첫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을 거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이 인용문은 비록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출처가 불분명하다. 난류는 하이젠베르크의 1923년 박사 논문 주제였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그런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어떤 주장을 위해 지어낸 이야기다. 난류 유체의 흐름을 이해하기는 너무나 어려워서 하이젠베르크도, 아마 신조차도 그것을 해 낼 수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중략)

 실화든 아니든, 하이젠베르크의 말은 무엇인가 계시를 던져 준다. 왜냐하면 과학 문제가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수 있는가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 방식 중 하나는 그 현상 자체가 우리의 일상 경험 밖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아인슈타인이 개발한 상대성 이론은 적어도 1930년대의 시각에서 보기에는 자연 종교의 미궁 같은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세계에서는 보이지 않게 잘 숨겨져 있고, 따라서 다소 불필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중략)

 … 난류는 다른 방식으로 어렵고 복잡하다. 근본 문제는 단순하다. 우리는 빨리 흐르는 유체를 수학 용어로 어떻게 설명하는가? 우리가 앞 장에서 본 규칙적 구조와 패턴들은 흐름이 충분히 강할 때는 용해되어, 매 순간순간마다 변화하는 명백한 카오스 상태를 남기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모든 구조를 파괴하지는 않는다. (…) 소용돌이들은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만드는 질서에 관한 실마리를 제공하며 지속적으로 태어나고 사라진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질서를 어떻게 포착하고 묘사하는가?

-필립 볼, <흐름>(필립 볼 형태학 3부작 중), 김지선 역, 사이언스 북스, 217~9

 책꽂이에 남겨놓은 숙제 중 하나인 필립 볼의 3부작 중 2부를 읽었다. 1부인 <모양>을 2018년에 읽고 리뷰를 남겼으니 6년 만이다. 그때는 3부작을 순서대로 모두 읽을 생각이었지만, 2018년 마리가 아프기 시작해서 떠나간 후, 한 동안 책을 손에 잡지 못한 이후로 이 시리즈는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었다. 책을 보면 그 순간들이 떠올라 도저히 다시 읽을 수 없었던 것인데 결국 다시 읽게 되었다. 미루던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필립 볼 씨의 사진은 아무리 봐도 락 스피릿이 느껴지는데, 글은 ECM의 세련된 현대 재즈 음악의 느낌을 풍긴다. 화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화학과 물리학을 매우 유연하게 오가는 저술 활동이 인상적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자연과학보다는 인문학자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우아한 서술 방식이 매력적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매력은 감점 요인이 되기도 한다. 왜인지 나는 가끔 멋들어진 문장을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문장의 우아함이 때때로 상투적으로 흐를 가능성 때문인지, 아니면 나 자신의 거친 심성 때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문장에서 풍기는 우아함이 책이 주는 정보성을 압도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 형태학 3부작의 테마를 나누는 방식도 매혹적이다. 사물의 본질을 ‘모양’ ‘흐름’, ‘가지’로 분류할 생각을 했다는 것부터가 범상치 않다. 이 시리즈가 유독 인문학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내용 때문이 아니라 형식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때로는 유독 이 독서가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교양과학서적들이 ‘쓸모 있는 지식’을 미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의 느낌적 느낌은 말 그대로 느낌일 뿐이고 책의 내용물을 보자면 필립 씨는 실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형태학의 예시들을 풍부하게 제시한다. 예를 들어,

… 알갱이와 가루에는 뭔가 심오하게 기묘한 점이 있다. 그들은 단단한 물질(모래는 대체로 석영으로, 견고하고 결정 같다.)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흐를 수 있다. 모래는 우리가 밟고 설 수 있을 만큼 단단하지만, 컵에 담아서 쏟아부을 수 있을 만큼 유동성도 있다. 1989년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만의 마리나 구를 뒤흔든 지진과 같은 몇몇 지진에서는 이 이중성의 예를 극단적이고 다소 무시무시한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중략) 마리나 구가 함몰된 것은 모래가 풍부한 매립지에 지어진 탓이었다. 땅이 흔들리자 습하고 모래가 많은 토양은 당밀처럼 줄줄 흐르는 곤죽으로 변해 버렸다. 알갱이로 이루어진 물질의 이러한 성질은, 자연스럽게 액화라고 불리는데, 지진학자들과 토목기사들은 그 성질을 익히 알고 있다. 그것은 한 알갱이 물질이 특수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는 예 중 하나다.

공학자들과 지질학자들은 그런 행동을 이해향 할 시급한 필요가 있다. 단순히 지진 피해를 측정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시멘트에서 약물, 아침 식사용 시리얼, 못, 땅콩, 그리고 볼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산업 원료들은 흔히 알갱이 같은 가루들의 형태로 이용된다. 알갱이의 성질은 지질학적 세계에서는 어디나 존재한다.

-위의 책 107~8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난류의 문제가 이토록 난해하고 심오한 것인지도 몰랐다. 난류라 하면 비행기가 난류를 만나 위아래로 크게 흔들렸던 아찔한 기억을 떠올리며 언젠가 다시 여행을 갈 수 있겠지 뭐 그런 생각이나 하는 정도였달까. 몰라도 되는 건 모르고 살자고 마음먹으면 먹고살기 위해 굳이 알아야 하는 것은 극히 작은 범위에 국한되어 버린다. 해외여행을 밥먹듯이 나가고 지구를 몇 바퀴 돈다 해도 지식의 한계는 경험의 한계를 미리 결정해 버린다고 생각한다. 반면 칸트처럼 동네 한 바퀴 도는 게 여행의 전부여도 세상 모든 지식을 흡수하려는 강한 욕망과 무한한 상상력만 있으면 우주 끝까지도 가볼 수 있는 게 인간의 뇌라고 오늘도 방구석에 앉아서 가열차게 주장하는 바이다.

​필립 볼의 형태학 3부작을 다시 읽기 시작한 것 외에도 마리가 떠난 후 듣지 못하던 음반 중 하나인 베보 발데스와 하비에르 콜리나의 빌리지 뱅가드 실황을 6년 만에 다시 들었다. 왜 이 음반을 듣는 것이 힘들었을까?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주말, 마리를 품에 안고 이 여유로운 음악을 들으며 흥에 겨워 춤을 추고 와인을 마시던 기억 때문이었을까? 다시는 오지 못할 그 시간이 너무 그리워서였을까? 그랬을 것이다. 여전히 그립지만 이제는 단절되어 있던 시간들을 요즘 조금씩 다시 잇고 있다. 이제부터는 그 모든 순간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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