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월의쥰 Jun 08. 2024

제시의 구내염과 전발치 수술, 방사의 과정  

길냥이 이야기

오늘 제시의 퇴원과 재방사를 진행했다.

뜬금없이 뭔 소리냐, 하면, 약 1년 반 전쯤 자주 가는 산책길에서 꼬리가 괴사 된 길냥이를 데려다 단미 수술을 하고 방사를 해준 적이 있는데, 그 아이가 바로 제시이고, 일 년 반이 지난 2주 전, 제시의 구내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이번에는 전발치 수술을 위해 다시 포획해 병원에 데려갔었던 것이다.

지난번 단미 수술 때는 고민도 길었고 병원 선택도 쉽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하루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고다 카페를 검색한 끝에 길냥이들을 ‘전문적으로’ 돌보는 병원을 알게 되었고, 바로 전화해서 금액을 확인했으며(전발치 수술, 혈액 검사, 치아 엑스레이와 열흘 입원 비용까지 포함하는데도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었다) 제시를 돌보는 캣맘, 캣대디에게 부탁해 다음 날 바로 포획을 진행했다. 제시가 구내염일 것이라고 확신한 것은 그토록 먹성이 아름다운 아이가 봄부터 잘 먹지 않더라는 캣대디의 이야기, 육안으로 확인된 상당히 마른 몸, 슬슬 지저분해져 가는 입가와 앞 발 등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표정.. 제시의 표정은 아픈 고양이가 보이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 표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픔을 참고 있는 그 표정이 나를 움직였다.

이렇게 써놓고도 마음 한구석이 너무 안 좋다. 길에는 무수히 많은 구내염 고양이들이 있고, 작년 5월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동네 노랑이부터 시작해서 제시가 사는 산책길에도 이미 구내염이 상당히 진행된 고양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에게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서 왜 제시만 데려다가 수술시켜 주느냐고 항의한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음.. 일단 제시는 포획이 매우 쉽고(이건 정말 레알 사실이다. 이번에도 구내염으로 밥도 잘 못 먹는 아이가 음식에 대한 유혹을 못 참고 아주 잠깐의 망설임 끝에 덫에 들어갔고, 통덫 문이 닫힌 후에도 밥을 먹어서 인간들을 웃게 만들어줌) 이미 돈 들여 살려놓은 아이인데 구내염으로 죽어가는 꼴을 보는 것이 왠지 억울했으며, 삼색이들에 대한 나의 원죄에서 비롯된 죄의식이 저변의 동력으로 작용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그토록 먹는 것을 사랑하는 아이가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고 다른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것을 지켜보기가 힘들었다. 무수히 많은 구내염 고양이들이 어떤 단계로 죽어가는지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겨우 만 두 살을 넘긴 제시가 그 과정을 통해 서서히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볼 자신이 없었다.

써놓고 보니 이유가 아주 구구절절한데, 사실 이번 구조는 내 마음이 편하고자 한 것이다. 지난 구조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 제시에 대한 나의 마음이 서서히 몸집을 불리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제시를 입원시키고 2주가 지난 오늘 퇴원을 위해 병원에 가서 제시를 확인한 순간 웃음부터 나왔다. 수술 후에 완전히 아물지도 않은 입으로도 열심히 먹었는지 그새 제법 통통해진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제시는 사람손을 타지 않는 제법 야생성 있는 고양이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히 얌전하고 조용하다. 차에 타서도, 병원에서도 울거나 요란을 떨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입원 상태에서도 엄청! 잘 먹는다… 그런 것들이 이미 확인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잘 극복하리라는 확신을 갖고 데려간 것이기는 했다.

하여튼 오늘 제시가 살던 곳에 방사를 하기 위해 제시 동네의 캣맘분(거의 포획 전문가)을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내게 제시를 입양하면 안 되느냐는 바람을 넌지시…는 아니고 얼마 전부터 계속 피력하셨다.

나 또한 제시를 데려오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커피와 쥰의 나이를 생각하면 함부로 변수-그것도 너무나 강력한 변수-를 아슬아슬하게 균형 잡힌 현재의 일상에 추가하고 싶지 않다. 제시가 자신의 동네에서 제법 잘 지내고 있다는 것 또한 무리하고 싶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캣맘께는 나중에 집의 아이들이 모두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그때는 제시의 나이도 적지 않을 때이니 이제 집에서 살자고 손 잡고 함께 집으로 갈 수도 있다고만 말했다. 그때까지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지금처럼만 버텨주기를 바란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내 마음도 결코 편치는 않다.

오늘 제시를 방사할 때 우연히 제시의 베프였던 수컷냥이가 함께 하게 되었는데, 제시를 보고 반가운 듯 다가오더니 냄새를 맡고는 이내 뒤로 물러서서 경계를 하는 모습이었다. 제시는 이내 풀숲으로 뛰어들어가 자취를 감췄지만, 방사 후 집에 와서 이 시간이 되도록 제시가 배척당하지 않고 친구들과 다시 잘 지낼 수 있을지 등 이 없는 합죽이가 된 제시에 대한 걱정이 마음 한 구석에서 계속되고 있다. 통장이 가벼워지면 마음도 가벼워질 줄 알았지만 통장만 가벼워지고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사진은 포획 바로 전날 찍은 것으로 오랫동안 못 먹어서 몸이 앙상해지고 입가가 거뭇해지기 시작한 것이 보인다. 오늘도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 방사에만 신경 쓰느라 사진 안 찍음… 요즘은 별 걸 다 찍어서 올리는 것이 문제라는데 나는 찍어야 할 것도 안 찍어서 문제다. 하여튼 사진보다 살도 좀 오르고 많이 깨끗해졌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구내염은 대부분 칼리시 바이러스 문제라 춥거나 비 오는 등 날씨에 따라 다시 컨디션이 나빠질 수 있으니 영양제를 먹여 면역에 신경 써주면 훨씬 나을 거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두고 전발치 해봤자 구내염 완치도 못하는데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데, 아니, 하늘과 땅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안정적인 밥자리만 보장된다면 전발치수술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구내염만 있느냐, 엄청난 치통이 함께 있느냐의 차이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까? 하여튼 너무나 좋은 병원을 알게 된 것은 덤이라고 할 수 있다. 병원 정문에 ‘고양이, 강아지, 길냥이 전문 병원’이라고 대놓고 박아놓은 병원도 처음 본다. 여기에 병원 이름을 써도 될지 몰라서 일단 여기까지. (이미 많은 캣맘들이 알고 있는 것 같기는 했음. 하긴 모를 리가 없다.)

작가의 이전글 계속 지혜롭기를 바랄 수밖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