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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쥰 Jun 11. 2024

햄버거병과 사료 파동

… 1982년 햄버거로 인한 위장병 유행을 일으킨 대장균 O157:H7의 감염 출처는 감염된 소로 추적되었고, 광범위한 발병 범위는 햄버거가 광범위하게 팔렸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햄버거는 커다란 통에서 만들어진 다음 전국으로 배송되기 위해서 조금씩 나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축들이 이 대장균 균주를 갖고 있음이 밝혀졌다. 몇몇 무리에서는 거의 대다수가 갖고 있었다. 햄버거는 소의 분변 때문에 오염되었을 것이다. 이후 몇 년간 대장균 O157:H7로 인한 전염병 사건이 몇 차례 더 일어났다. (중략)

1996년 병에 들어간 사과 주스에서 대장균 O157:H7이 발병한 것은 감염의 새로운 루트를 보여주었다. 가축들이 사과 과수원에 방목되었고, 주스를 만들기 위해 모은 낙과 중에 오염된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주스는 살균 처리되지 않았다. 그 공정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발병으로 인해 수십 명의 아이들이 용혈요독증후군을 일으켰고, 그중 한 명은 사망했다. 용혈요독증후군은 완치 불가능한 신부전을 일으킬 수 있다. 미국에서 이 병은 현재 아동신부전증의 주요 원인이다.

그 후로 대장균 O157:H7 감염은 줄기콩, 토마토, 시금치, 다른 포장된 야채를 포함한 신선한 야채들을 통해서도 일어났다. 박테리아가 야채의 표면에 단단히 달라붙어 있어서 세척을 해도 제거되지 않는 것이다. 몇 가지 과정을 거쳐 박테리아 세포가 보균 동물에서 야채로 옮겨졌고, 2002년부터 2006년 사이에 이런 발병이 열 차례 보고됐다. 또한 대장균 O157:H7은 우유로 전파될 수도 있으며, 오염된 물에서 수영을 해도 전염될 수 있다.

-존 L. 잉그럼, <미생물에 관한 거의 모든 것>, 김지원 역, 이케이북 369~370

이 책에 대해서는 한두 번 정도 더 리뷰를 쓸 예정인데, 위의 인용문을 서둘러 소개한 것은 최근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양이들의 질병과 사망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도 더 허무하게 진실규명을 촉구하던 여론은 사그라들었고, 사료협회의 ‘자체 조사’ 결과 부적절한 것은 아무것도 검출되지 않았다는 정도로 무마되었다. 여전히 투병 중인 고양이들과,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넌 무수한 아이들의 고통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이번에도’ 국산 사료 파동은 이렇게 대충 입을 틀어막은 상태로 끝나고 만 것이다.

햄버거병의 발병 과정을 보면 사료를 만들어 납품하는 과정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국으로 팔려나가 무작위적으로 발병하고, 특히 신장을 무력화시키고 근육을 녹이는 등의 증상은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상당히 비슷한 점이 있다. 수의사들이 어느 정도 정보를 수집한 뒤에 사료를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매우 타당한 것이었다. 독성을 지닌 대장균은 열저항 성격을 지닐 수 있고, 진화의 속도가 빠르다. 때문에 협회에서 분석했다는 빈약한 분석 결과만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의심되는 사료의 원료를 분석한 것조차 아니기 때문이다.

햄버거병 말고도 해당 대장균으로 인한 피해는 아이러니하게도 건강을 더 고려하는, 즉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신선한 유기농 채소’로부터 추가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료 파동에 해당되는 많은 사료 중 상당 부분이 ‘자연주의’ ‘올가닉’ ‘유기농’ 등을 내세우며 홍보한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명 생협에서 판매하는 사료도 있었다.) 십여 년 전에 이미 볼드모트 사료로 이름을 날렸던 그 원흉과도 같은 사료 역시 일찌감치 ‘유기농 국산 원료’를 강조하며 판매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사료에 문제가 생기면 싸구려 원료를 이용했기 때문이라는 생각부터 한다. 의외로 그런 사료들에서 단발성의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특히 최근에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그 원료들의 위험성을 알기 때문에 재료의 소독과 무독성화 과정, 철저한 열처리 과정 등을 거쳐서 인간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만한 이를 테면 뭐가 원료인지조차 알 수 없는 치킨 너겟과 같은 사료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런 사료만 장기 복용하면 몸이 서서히 약해질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기 급여로 문제가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게다가 이런 저가의 사료를 제공받는 대부분의 길고양이들은 비교도 안 되게 비위생적인 음식물 쓰레기 등으로 연명해 온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그들에게 이 저렴한 대용량의 사료는 생명줄이나 마찬가지다.)

말하고 싶은 것은, 국산 사료 협회가 다시 집사들의 신뢰를 얻고 싶다면 문제가 된 사료뿐만 아니라 ‘원재료’ 분석의 결과를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햄버거병은 이미 원인이 밝혀졌음에도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추가적인 감염 소식이 들려온다. 그만큼 ‘대량의 무작위적 원료배합’은 위험하다. 해당사료들이 자체 공장이 아닌 oem시스템으로 한 공장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은 햄버거병과 가장 유사한 점이다. 최소한 해당 사료 회사들이 발 벗고 나서서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보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리콜 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수의사의 레시피라는 것과 유기농 원료라는 것을 홍보하고 있다. 나름 고급이라고 하는 유기농 채소와 고기를 썼는데 우리가 무슨 죄가 있느냐는 억울함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미생물의, 특히 대장균의 문제는 그렇게 안이한 생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이번 사료 파동 이후 길고양이를 돌보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먹이고 있는 저가의 국산 사료의 안정성에 대한 불안감과 동시에 저가의 사료를 먹이는 죄책감을 함께 표출하는 것을 보았다. 길냥이들에게 주로 급여하는 대표적인 사료들은 자체 공장을 갖고 있으며 아직까지 이런 심각한 이슈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최근에는 그간 부족했던 영양분을 추가적으로 배합하고 대신 가격을 올리는 방향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모양새다. 어찌 되었든 길냥이들에게 정성을 쏟는 분들이 죄책감을 가질 하등의 이유는 없어 보인다. 마찬가지로 유기농이라고, 좋은 원료를 썼다 하는 홍보에 문제의 사료들을 사서 먹인 집사들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좋은 사료인 줄 알고 내 손으로 독을 먹였다며 눈물을 쏟았을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볼드모트 사료는 나 또한 애들에게 급여한 적이 있다. 십수 년 전이다. 커피에게 심각한 방광결석이 생겼고, 급성신부전으로 생사를 잠시 오갔으며, 간신히 회복했던 그때 먹였던 사료다. 그때도 오가닉 원료를 쓴 매우 위생적이며 개별 소포장으로 신선함을 보장한 사료라고 홍보했고, 지금도 버젓이 팔고 있는 그 사료를 보면 온몸의 털이 다 설 정도로 화가 나고 한편으로는 무섭다. 동물들의 목숨이 얼마나 우습길래 그들은 이토록 뻔뻔하고 안이하단 말인가? 무작위적인 대량 생산이라는 프로세스를 포기하지 않는 한 햄버거병이 간헐적으로 무작위의 아이들을 공격하듯이, 이토록 안이하게 덮어버린 사료 파동 역시 또다시 돌아올 것이다. 볼드모트 사료를 전혀 알지 못하는 순진한 초보 집사들이 대거 유입되는 십여 년 후쯤 되려나?

커피 - 소싯적 결석과 급성신부전과의 힘겨운 싸움에서 승리한 후, 후유증을 잘 극복하고 비교적 건강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훌륭한 고양이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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