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월의쥰 Jun 20. 2024

미각을 깨우는 미생물에 건배

존 L. 잉그럼  <미생물에 관한 거의 모든 것>

…다른 미생물들 역시 소테른 와인에 특별한 영향을 미친다. 이 포도에 존재하는 자연발생 효모는 포도당을 선호하기 때문에 완성된 와인에 훨씬 더 단맛을 내는 과당만을 주로 남겨둔다. 그래서 보트리티스 시네레아와 내재된 와인 효모라는 두 미생물의 선물 덕에 소테른 와인은 독특한 풍미와 입 안을 채우는 묵직한 맛을 가진 달콤한 금빛 디저트 와인이 되는 것이다.

소테른은 귀부 와인의 최상급이고, 샤토 디켐은 최상급 소테른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만 이런 와인이 생산되는 것은 아니다. 헝가리의 토코이 와인 역시 대단한 칭송을 받고 있고 독일의 여러 와인 역시 그렇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별로 생산되지 않는데, 기후가 좀 더 건조하기 때문에 보트리티스에 별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보트리티스에 좋은 기후와 해는 (보트리티스를 감염시키고 퍼뜨리기 위해) 한참 습한 날씨가 유지되다가 그 뒤에 (감염된 포도를 건조하기 위해서) 건조한 기간이 지속되어야 한다. 독일의 귀부 와인은 포도가 어디서 어떻게 수확되었는지에 따라서 이름을 붙이고 분류한다. 보트리티스의 관여 정도가 높아지고 이에 따라 질이 높아지는 순서대로 이야기하자면 슈패트레제(늦게 따다)는 포도를 늦게 수확해서 보트리티스가 감염될 시간을 좀 더 많이 준 것이고, 아우스레제(선택되다)는 보트리티스가 감염된 포도송이를 선별한 것이다. (중략)

샤토 디켐은 우리의 거의 모든 감각으로 미생물을 인식할 수 있다. 눈으로는 금빛 색깔을 보고, 맛과 향기를 느낄 수 있으며, 글리세린이 들어간 그 진득함을 느낄 수 있다. 흥미롭게도 여기에 관여하는 미생물 활동은 모두 자연적인 것이다. (후략)

-존 L. 잉그럼, 김지원 역, <미생물에 관한 거의 모든 것>, 이케이북, 88~89

이 책의 원제는 <March of the Microbes>로, 국내 출판 제목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맨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대중들에게 특히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거의 모든 것들의 역사>에 너무 편승하는 느낌이라 성의 없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책을 읽다 보니 왜 그 제목에 욕심을 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두서없이 느껴질 정도로 다양하고 방대한 미생물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미생물 관련 이야기 중 독자가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던 종목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나는 물론 헬리코박터(ㅠㅠ)에 대해 관심이 있었지만 특별할 것은 없었고, 오히려 예전에 즐기던 와인이나 최근 관심을 갖게 된 소금 등 먹거리에 대해 (사실 대부분의 미생물은 먹거리와 관련이 있기는 하다) 특히 흥미롭게 읽었다.

헝가리의 토코이 와인(요즘은 토카이 와인으로 부름) 부분은 해당 와인을 마시면서 궁금했던 부분들이 꽤 해소가 되어 특히 흥미롭게 읽었기 때문에 내용을 소개했다. 몇 년 전 (아직 와인을 마시던 시절) 남집사가 헝가리에서 꽤 질 좋은 토코이 와인을 몇 병 사다 줘서 먹었을 때 그 특유의 단 맛과 입안을 채우는 묵직한 질감-위에 쓰여있듯이 ‘글리세린이 들어간 진득함’-에 놀란 적이 있는데 그것이 보트리티스라는 미생물의 활약으로 얻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 와인 두 병을 내리 마시고 지독한 위염을 앓았기 때문에 마냥 기억이 좋지는 않다. 인간이 주선한 보트리티스와 헬리코박터의 만남… 후후)

발효 자체가 미생물의 작업이기 때문에 이 책에는 발효 식품에 대한 이야기가 다양하고 자세하게 나온다. 그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필히 읽어볼 만하다. 사람들이 샤토 디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은 이미 이런 쪽의 공부를 글뿐만 아니라 미각을 통해서 아주 열심히들 하는 모양이었다. 역시 취향에 매진하는 사람들은 공부도 열심히 할 뿐 아니라 (와인을 사는 데) 돈도 아낌없이 쓴다.

… 항생제와 항균제의 대성공 덕에 지나친 도취감이 퍼졌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이 박테리아성 질병과의 오랜 사투에서 마침내 승리했다고 여겼다. 감염성 질병 분야의 유명 전문가들 여러 명이 전쟁에 이겼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루이 파스퇴르의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것은 미생물일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기억했다.

균류가 일으키는 질병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제는 별로 많이 발견되지 않았고, 바이러스가 유발하는 질병에 대한 것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효과적인 항균성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 균주들은 이미 속속 생겨나고 있다. 새로운 발견 사이사이로 반걸음쯤 느리게 이에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 균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빨라질수록 연구자들이 펼치는 경주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 새로운 항생제는 굉장히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새로운 항생제를 발견하는 빈도는 이미 발견된 항생제의 수와 비교할 때 로그 함수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자연계의 화학요법제 저장고가 비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 348~9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슈퍼 박테리아에 대한 공포감은 의외로 바이러스보다는 덜 한데, 아마도 병원에 입원할 일이 없으면 내게 닥칠 현실은 아니라는 불안정한 안도감 때문인 것 같다. 나 또한 그랬지만, 항생제 치료를 받으면서 그 안도감은 박살이 났다. 거의 모든 항생제가 들지 않는 것이 아닌가, 결국 나는 항생제 내성으로 죽음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것이 마냥 괴담 수준은 아닌 것이, 요즘 심심치 않게 이곳저곳에서 슈퍼 박테리아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이것이 항생제 남용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들의 자유로운 대륙간 이동이 미생물의 진화에 날개를 달아주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인데, 이는 바이러스에도 날개를 달아주었고, 지난 팬데믹이 이를 증명한다.

알고는 있지만 여전히 바이러스 치료제가 없다는 사실을 접할 때마다 흠칫 놀라게 된다. 결국 백신만이 바이러스에 대항할 유일한 무기가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백신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와 공포심이 만들어내는 ‘안아키’ 종류의 집단은 역설적으로 그들 자신이 공포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선진국에서 대부분의 경우 접종을 거부하는 것은 아동이 병에 걸릴 가능성을 별로 높이지는 않지만, 사회 전체에 위험이 될 수 있다. 모두가 면역성을 갖고 있어야 우리 모두가 안전하기 때문이다. 75~80퍼센트의 인구가 디프테리아 백신을 접종한 사회에서는(질병에 따라 비율은 다양하다) 백신이 감염의 사슬을 끊기 때문에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도 보호된다. 하지만 만약 백신 접종률이 75퍼센트 이하라면 그 결과는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에게 끔찍한 재난이 될 수 있다’(328)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부터 가끔 몸 어디가 이유 없이 간지럽거나 하면  나는 그곳에 어떤 미생물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부터 궁금해지는 병에 걸렸다. 호르몬에 대한 책을 읽은 후 한동안 ‘이게 다 호르몬 때문이다’를 입에 달고 살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려나. 하여튼 다시 한번 인간의 시력이 그저 그런 수준에 머무른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시력이 미생물을 볼 수 있는 정도였다면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물론 그런 조건에 또 적응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딱히 상상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헌 심정이다. 미생물을 볼 수 있는 외계인이라면 지구의 주인을, 최상위포식자를 미생물이라고 단언했을 것이라는 말은 옳다. 인간도 미생물의 군집으로 보일 것이니 말이다. 인간은 미생물의 일부이자 미생물은 인간의 일부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든 함께 살아야 한다. 하지만 요즘 인간들 하는 짓들을 보면 가끔 지구의 진짜 주인인 미생물들이 이 끔찍한 숙주인 인간의 수를 줄어들게 한들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기왕이면 공평하고 고통 없이. 역시 타노스는 자비롭다.


작가의 이전글 햄버거병과 사료 파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