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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구 변호사 Jun 10. 2022

033  1원 소송

(2009년 05월 22일 칼럼 기고분)

사건을 의뢰받아 처리하다보면, 소송은 합리적으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일 때도 많습니다. 소가나 소송비용도 감정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송에서의 소가(訴價)가 가진 의미


형사사건과 관련해 소액 벌금형으로 약식기소된 것을 무죄판결을 받기 위해 그 이상의 변호사선임료를 주고 소송을 하는 예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상대방으로부터 억울하게 고소당했다든지 하는 감정적인 문제가 엮이게 되면 당해 벌금형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억울함을 풀겠다는 것이 주안점이 됩니다.


민사적 손해배상청구가 결부될 수 있는 명예훼손이나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의 형사사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때가 많습니다.


참고로 이혼재판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위자료의 액수는 통상 3,000~5,000만 원을 넘기 힘든데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수억에서 수십억 원씩 청구하기도 합니다.



1원 소송


사회적으로 경종을 울리거나 상징적 의미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소위 ‘1원 소송’이라 불리는 것들 중에 많습니다.


 ○ 지난 2005년에는 6·25전쟁 중 납북된 인사의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는데, 이들은 단돈 1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통해 납북자 숫자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의 무관심에 경종을 울릴 생각이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 서울 강남의 한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김모씨는 S화재보험사와 직원 남모씨를 상대로 “보험사 직원 김씨가 어느날 새벽 간호사나 병원 직원을 대동하지 않고 환자 동의도 없이 병실에 들어와 환자복과 속옷만을 걸치고 있는 여자환자들의 자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봤다. 안정을 취해야 할 환자들을 가짜환자여부를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범죄인 감시하듯 하며 병실에 무단침입, 모욕감과 불안감을 준 만큼 보험사측은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며 그 위자료로 ‘1원’을 청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법원에서는 “손해배상 청구액보다 사법비용이 훨씬 큰 만큼 소권 남용으로 각하요건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적이 있습니다.


 ○ 사업을 하는 박모씨는 “식사대금을 카드로 결제하려다 거래정지사실을 알고 은행측에 항의하여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것을 바로잡았는데도 10여일 후 또 다시 신용불량자로 등록이 됐다. 이렇듯 2차례에 걸쳐 신용에 피해를 입었으니 손해를 배상하라."고 위자료청구를 하면서 힘없는 서민들의 처지가 사람들에게 천대받고 찾아보기도 힘든 1원짜리 동전과 비슷해 보여 소가를 1원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1원 소송은 소송비용 중 송달료만 해도 소가의 수만배가 될 정도로 배보다 배꼽이 큰 소송입니다.


때로는 상대방측에서 ‘당신네 주장을 받아드리지 못하겠는데, 1원이든 1,000원이든 줄 수 있으니 가져가라’고 청구를 인정하여 시시하게 끝나는 경우도 있고, 법원에서 ‘변호사님 왜 이러세요? 진지하게 해주세요. 1원은 너무 하지 않나요?’하면서 소권남용으로 각하시킬 수도 있음을 비치면 그때서야 청구금액을 살짝 올리기도 합니다.



어떤 손해배상청구 소장


어느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 법원에 판사님들의 업무부담을 가중시키는 유명하신 한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제기한 소송이 무려 20~30건이 되고, 검찰에 진정한 것만 하더라도 수십건이 되었습니다. 이쯤되면 할아버지 ‘소송중독증’이구나 싶은 구석이 있는데, 실제로 보면 의외로 인텔리 학자 스타일에다가 젠틀하시기까지 합니다.


소장의 첫 문구는 대체로 “00판사님 안녕하시지요. 항상 건강하시고 잘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은 이러 이러한 사건으로 소를 제기하게 되었습니다~”로 시작됩니다.


그 시골법원에 첫 부임한 판사가 할아버지의 손해배상청구소장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저는 이 나라가 잘되기를 조상님들께 빌고 기도하며 수 차례 제사를 올렸습니다. 특히, 피고 000(정치인)이 다른 정치인, 관료들과 함께 나라를 잘 이끌어 주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요즘 피고 000가 하는 일들을 보니 제사올린 것이 헛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제사비용에 들어간 비용을 피고 000에게 청구하오니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소장을 받아본 초임판사는 어떠한 마음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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