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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구 변호사 Jul 24. 2024

213 유언

(2009년 10월 12일 칼럼 기고분)

한가위 휘엉청 둥근 달 아래 깔깔대며 재롱떠는 손자손녀들을 보며, 자린고비 A할아버지는 달이 차면 곧 기울듯이 자신의 여생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조용히 순응하고 있습니다. 



A할아버지는 얼마 전 50여년을 같이 살아온 할머니를 먼저 보내고, 둘째 아들네 식구들과 고향에서 살고 있는데, 서서히 상속이나 유언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사지면서 이룩한 재산이 좀 있는데, 골치 썩이는 셋째 아들 뒷바라지하느라고 밭떼기 3000평은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겼고, 이제는 5000평 정도되는 땅과 수용보상금 5억 원을 넣어둔 농협 통장이 전부입니다. 


한편, A할아버지에게는 3남 1녀의 자녀가 있는데 이 재산을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 고민이 들기 시작합니다. 아무런 유언을 남기지 않고 죽더라도 법정상속분이란 것이 있어 그에 따라 분배가 되든지 자식들끼리 알아서 협의분할할 수도 있지만, 형편이 좋지 않은 둘째 아들녀석이 눈에 밟혀 어떻게든 적절한 유언을 남기기로 하고 여기저기에 조언을 구합니다.      




유언(遺言)이라 함은 말 그대로 ‘사람이 사후를 위하여 남긴 말’인데, 법적으로는 ‘유언자가 자기의 사망과 동시에 일정한 재산상 신분상의 법률효과를 발생시킬 목적으로 일정한 방식에 따라 행하는 단독행위’를 의미합니다.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유언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사후 재산의 처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자율권을 준다는 것이지요. 


유언은 살아생전 자손들에 대한 명확한 재산 분배를 통해 유산상속과 관련된 불화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기도 하며, 가산(家産)을 늘리고 부모에게 효도한 자녀에게 그 기여를 보상해 줄 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 다만, 어떤 자녀에게는 아예 유산을 남기지 않고 일부 자녀에게만 유산을 남긴다던지, 유산을 전부 자선단체에 기증을 한다던지 하면 문제가 생길 여지가 많기 때문에, 민법에서는 ‘유류분 제도’를 두어 선친의 유언이나 사전증여에 의해서도 침해받지 않도록 적절한 균형을 만들고 있습니다.       


인감증명서를 첨부하여 인감도장만 찍으면, 컴퓨터로 깔끔하게 ‘유언장’을 쓰더라도 유언으로서의 효력이 있겠지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유언이 갖는 법적인 의미가 중대하므로 민법에서 정한 5가지 방식이 아니면 무효로 처리합니다.      


①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민법 제1066) -  유언자의 자필이라는 점에서 유언내용의 신뢰도가 높아 작성에 있어서는 가장 간편하면서도, 그 형식적인 요건이 까다로운 방법입니다. 즉, 자필증서는 유언자 본인이 직접 유언의 내용 전부와 그 유언서를 쓴 연월일 그리고 주소, 성명을 쓰고 날인해야 하는데, 이중 일부라도 빼놓아서는 안됩니다(헌법재판소 2011. 9. 29.자 2010헌바250 결정, 헌법재판소 2008. 3. 27.자 2006헌바82 결정, 대법원 2006. 9. 8. 선고 2006다25103,25110 판결, 대판 2007. 10. 25. 선고 2006다12848 판결, 대법원 1998. 5. 29. 선고 97다38503 판결).      


②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민법 제1068) - 유언자가 증인 2인을 데리고 공증인사무실에 찾아가 유언의 취지를 전하면, 공증인이 이를 필기․낭독하여 유언자와 증인이 그 정확함을 승인한 후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하는 방식으로 최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입니다.      


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0다21802 판결
유언 당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중이던 망인의 유언이 유효한지 문제된 사건에서, 공정증서에 기재된 내용과 같은 유언의 구수가 있었는지에 관하여 강력한 의심이 들뿐만 아니라, 유언의 구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공증인이 유언자의 구술을 필기해서 이를 유언자와 증인에게 낭독할 것'과 '유언자와 증인이 공증인의 필기가 정확함을 승인할 것'이라는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고, '유언자가 서명 또는 기명날인할 것'이라는 요건도 갖추지 못하여 민법 제1068조 소정의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의 방식에 위배되었다는 이유로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을 무효라고 한 사례. 


③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민법 제1069) - 증인에게도 유언내용을 밝히고 싶지 않을 때에는, 유언장을 작성하여 엄봉․날인하고 그 봉서표면에 제출 연월일을 기재한 다음 이를 2인 이상의 증인 면전에서 유언자와 증인이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하는 비밀증서 방식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변조방지를 위해 5일 내에 공증인 또는 법원서기에게 제출하여 그 봉인상 확정일자인를 받아야 합니다.      


④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민법 제1070) - 질병이나 급박한 사정에 의해 다른 방법에 의한 유언을 할 수 없을 때는 증인 2명 이상 참여하에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악용될 소지가 크기 때문에 엄격히 판단하고 있으며, 증인이나 이해관계인이 그 급박한 사유가 끝난 날로부터 7일 이내에 가정법원에 그 검인신청을 해야 합니다.      


⑤ 녹음에 의한 유언(민법 제1067) - ‘녹음에 의한 유언’도 자필에 상응하는 본인음성으로 기록한다는 점에서는 신뢰도가 높지만 증인이 참여하여 유언의 정확함과 그 성명을 구술하여야 합니다.     

 

한편, 유언은 일방적인 단독행위이므로 유효한 유언이 성립한 후에라도 생존 중에 언제든지 자유롭게 유언의 전부 또는 일부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법 제1108조). 따라서 수개의 유언이 있을 경우 최종유언만이 효력을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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