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져도

사라져 버린 것이 이름이 될 때.

by 적적

고양이들 중에도 간혹 발가락을 하나 더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 여섯 번째 발가락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전 세계 바다를 항해하던 시절 배에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죠. 훨씬 납작하고 착지력이 좋은 발바닥을 가지고 있어 흔들리는 배에서 균형을 잘 잡을 수 있어 귀중한 식량을 축내는 쥐를 더 잘 잡아서였기 때문이었죠.


소설가 헤밍웨이의 친구였던 선장이 배에서 태어난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헤밍웨이에게 선물한 것도 이 때문이었는데, 이 고양이에게서 시작한 여섯 발가락 고양이들은 혈통까지 이뤄가며 헤밍웨이 생가에서 지금도 번성하고 있다고 해요.


집 앞으로 작은 도로가 있었고 건너편 길가엔 친구가 살고 있었죠.


동네에선 그 집을 서슴없이 육손이네로 불렀습니다. 한 아이는 친구였고 다른 아이는 그보다 한 살 어린 남자아이였어요. 두 아이 모두 까만 피부에 장난기 어린 눈동자로 오늘은 어떤 장난을 칠 수 있을까를 매일매일 발전시켜 가며 크고 있었죠.


이제 중학교 입학이 얼마 남지 않은 아이들은 조금 불안하고 조금씩 두려웠습니다. 아이들은 중학교에서 일어나는 불길한 사건들을 물고 와 머릿속에 심어 놓고 사라지곤 했죠. 때론 머릿속에 미친 듯이 자라난 갈대밭 속을 헤매느라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나 같은 아이들도 있었죠. 어떻게든 되겠지 뭐. 이렇게 말이죠.


그때 겨울은 몹시 추웠습니다. 그렇게 기억됩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손이 터서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콧물을 한없이 훌쩍거렸습니다. 엄마는 잠들기 전 바세린을 손등에 듬뿍 발라주셨는데 밤새 손사래를 치다 자고 일어나면 이불이며 베개에 끈적한 것이 잔뜩 묻어있기도 했습니다.


형제를 키우던 친구 엄마는 두 아들에게 소리를 지르느라 늘 목이 쉬어있었어요. 가끔 말을 하기 전에 헛기침을 하곤 했었지만, 건설업을 하던 남편이 매월 한번 집에 들어와 커다란 종이봉투에 현금 다발을 가져온다며 자랑을 하곤 하였죠.


그녀에겐 두 아들을 키우는 일만 잘하면 되는 것처럼 보였어요. 물론 그녀는 두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키우며 늘 넘치게 아이를 먹이고 입혔습니다. 두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문밖으로 나와 아버지 팔에 번갈아 가며 매달려 소리를 질렀습니다.


한 달에 한번 집에 오는 아버지를 한 여자와 형제는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학교 입학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겨울에 손이 어마어마하게 큰 친구 아버지는 작은 여자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며칠 동안 그 집은 밀림에 내리는 폭우처럼 들썩였습니다.


까만 피부의 계집아이는 늘 흙바닥에 작은 나뭇가지를 들고 무언갈 쓰고 있었습니다. 가끔 그 아이가 썼던 글귀가 궁금하곤 하였지만, 그 아이는 늘 떠나기 전 자리를 정리하듯이 글귀를 발로 지워버렸습니다.


손이 유난히 컸던 그 집 남자들은 엄지손가락 옆에 작은 손가락 하나가 더 있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육손이라고 불렀던 거고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들었던 그 소리를 친구 아버지는 친구 엄마를 만나 이제 엄지손가락 옆에 아무 불편함 없던 손가락을 자르고 상견례를 치렀다고 하더라. 첫째 아이의 엄지손가락을 제거하고 둘째 아이도 태어나자마자 엄지 손가락 옆의 작은 손가락을 잘랐다고 하더라


친구 아버지가 데려온 계집아이는 고양이처럼 사랑스러운 눈을 가지고 있었죠. 목소리가 예뻐서 말을 하면 모두 목소리에 빠져들곤 하였어요.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는 동백 아가씨라는 노래를 아주 잘 불렀어요.

윤희라는 이름의 아이였어요. 그 집에 온 뒤로 윤희는 학교 가기 전 오빠들의 도시락을 싸야 했고 집으로 돌아오면 청소를 해야 했어요.


우린 가끔 양쪽을 다 이해해 버려서 누구도 미워할 수가 없는 때가 있곤 하죠.


친구 엄마가 집으로 찾아와 하소연하는 걸 들은 적이었었죠.

윤희가 엄마라고 부를 때마다 옆구리를 뾰족한 물건으로 찌르는 것 같아. 내 안에 가장 질 나쁜 년이 귓속말하고 있는 것 같아 엄마라고 불릴 때마다.


윤희는 작고 마른 몸을 가지고 있었는데, 친구 아버지가 올 때마다 하루는 윤희를 데리고 나가서 노을이 지고 나서야 돌아오곤 했죠.


윤희가 오른손을 내밀어 보이자 그녀의 엄지손가락 옆으로 아카시아 이파리보다 크고 가리기엔 너무너무 작은 손가락 하나를 보게 되었어요.


아이들은 윤희를 육손이라고 놀렸어요.


그럴 때마다 손을 활짝 펴 자기 얼굴을 가렸어요. 적어도 멀리서 그렇게 부르는 사내아이들에겐 말이죠. 가까이서 부르면 부른 사람의 눈을 자기 손으로 가려버렸죠. 그녀의 보드라운 손바닥이 얼굴을 덮고 나면 다시는 그녀에게 육손이라고 부르지 못했어요.


부드러운 모든 것은 불손한 의지까지 꺾기도 하니까….


대학에 다니던 오빠들 시중을 들며 윤희도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친구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자 그 집을 떠날 것을 모두 예감하고 있었어요.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윤희가 다가와 담배 한 대를 달라고 했었죠.


담배 연기가 사라지지 않았어요. 윤희가 입을 열었죠. 마른 혀를 꺼내 입술을 적시는 소리가 들렸던 새벽녘이었죠.



고마웠어요. 오빠…. 난…. 난…. 매번 사람들의 맘에 들고 싶어서 살았던 것 같아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 줄도 모르고 그 깊은 곳을 매번 헤엄쳐 바닥에 닿으려고 했는지도 몰라 사람들의 마음은 바닥이 한없이 깊어져가는 줄도 모르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한 번도 쉬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속에 들어가려고 그땐 숨을 참고 살았는지 몰라

아버지가 한 번씩 올라오시면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데려가 소고기를 사주셨어. 아무 말 없이 그냥 먹고 있는 날 쳐다보셨어요. 나는 매번 아버지를 기다렸어요. 아버지가 가실 때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는데 난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오빠가 흙바닥에 무언가 쓰고 나면 보러 온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


윤희는 고등학교를 졸업식을 앞두고 사라졌어요. 작은 회사 경리로 취직했다고 했었어요.


그녀를 다시 본 건 어느 소모임에서였는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 눈이 기억났었죠. 고양이처럼 사랑스럽고 매혹적이었던 그 눈빛이.


그러고도 그녀가 맞는지 한참을 바라다보고 있었는데 멀리 있던 그녀가 자기 얼굴을 손으로 가렸었죠. 그리곤 잠시 쉬는 시간에 가까이 다가오더니 제 얼굴을 손으로 뒤덮었죠.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으응. 첫 월급 타고 그 밤에 그 집에 갔었어요. 오빠들 선물이랑 아주머니 내복 사서 그리고 석 달 치 봉급 모아서 손가락은 제거해 버렸죠. 이제 날 육손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변치 않았죠. 아니 더 쾌활해진 그녀를 보자 행복해졌어요.


사람의 연이란 게 너무 가벼워서 핸드폰 번호 바꾸고 이사 한 번 하면 사라져 버릴 사람들은 대부분 사라져 버려요. 그 이후에도 아주머니에겐 가끔 용돈을 보내드려요.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왜 미워했는지 알면 용서는 터무니없이 쉬워지거든요.


오빠 핸드폰 번호 알려줘요. 다른 오빠들한텐 비밀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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