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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Jun 14. 2020

죽으나 사나 빨래는 해야지.

82년생 한국 남자



"어떤 때 '아 내가 결혼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 제일 먼저 결혼했던 한 녀석에게 날아든 질문이었다. 그 친구는 술안주를 쩝쩝 먹어대며 잠시 생각하더니,


"일요일? 일요일 점심 먹고 나면 둘이서 빨래를 다 걷어. 그리고 다림질을 해. 한 사람은 잡아주고 한 사람은 누르고... 다음 주 출근할 옷을 그때 다 정리하는 건데.. 그게 좀 와 닿더라고."


10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지금도 그 친구의 대답은 가슴에 콕 박혀있다. 커튼 사이로 주말의 햇살이 펄럭펄럭 휘감겨 들어오는 오후의 나른함여유로움, 섬세하게 주고받는 부부의 말끔한 손가락쿠어어 소리와 함께 옷감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수증기 촉촉한 냄새까지, 프레임 속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손 끝에 감겨 들어온다.



내 인생에 빨래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각인된 건 군대에서부터였다. 부대 내 대형 세탁기가 있었다. 그러나 한 대 뿐인 세탁기를 백여 명이 넘는 부대원이 쓰기엔 무리였다. 세탁기 사용은 병장만 가능했다.


그럼 나머지 병사는 어떻게 했냐? 그냥 목욕탕 들어서 빨래 비누 잔뜩 거품 내선(거품도 여하튼 엄청 안 나긴 하지만) 전투복이고 양말이고 속옷이고 박박 문대고 비벼서 한 참 헹궈서는 밖의 빨랫줄에 널었다.


빨랫줄에 널린 옷들의 꼴은 정말 가관이었다. 보급품을 제때 공급받지 못한 때라 속옷과 양말이 귀했다. 신병의 속옷이 가장 먼저 없어졌다. 새 거니까. 다들 속옷이랑 양말에 군번과 이름하며 별 표시, 그림 등을 큼지막하게 매직으로 적어놓아 두었다. 그럼 양심상이라도 그건 안 입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래도 훔쳐 갈 인간들은  나타났다. 지독한 놈들.


그 시절에도 빨래만큼은 계급을 불문하고 병사 스스로가 해결했다. 병장도, 상병도 절대 빨래만큼은 시키지 않았다. 그건 쪽팔리는 일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한 참 뒤에 코인 세탁기가 들어왔을 때, 병장들은 "야. 같이 빨래 넣을 사람 있어?" 물어 손 든 자가 나오면 그 빨래까지 다 돌려줬다. 세탁이 끝나면 같이 돌린 사가 가져왔다. 병장이 돈 냈으니까.


다림질에 대한 독특한 세리머니도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100일 휴가. 군인으로서 첫 휴가를 나갈 때에는 통상 그 내무실의 일병 고참이 이등병의 외출용 전투복을 다려줬다. 옷을 그냥 다려주는 것이 아니라, 전투복에 여러 가지 각을 집어넣어 일종의 장식 같은 것을 만들어주는온갖 기교를 다 부려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일요일 오후 지나갔다. 다가 저녁이 되면 전투화에 물광을 내주는데 거짓말 살짝 보태어 얼굴이 비출 정도로 섬찟했다. 쫄병의 외출 준비는 고참의 권한이고 의무였다.


빨래는 국방의 의무다.


최근 벌어진 '황제 병사의 빨래 갑질'은 군 복무를 마친 사람으로서 보면 굉장히 치욕스러운 사건이다. 갑질이니 뭐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병사 고유의 신성한 임무를 등한시했다는 점이 수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는 것이다.



"촥! 촥! 촥!"

"아 고 녀석 빨래 참 야무지게도 잘 턴다. 손 끝이 아주그냥 네 고놈!"


엄마는 내가 빨래를 널 때마다 당신의 통쾌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다. 그래서 항상 세탁기 돌리는 날이면 내가 밖으로 뜨기 전에 빨래 너는 걸 맡겼다. 시원하게 갓 돌려낸 옷가지에서 피어 나오는 섬유향이 은은하니 좋았다. 둥글둥글 뭉친 빨래들을 하나둘씩 풀어내어 옷 어깨 끄트머리손가락으로 바 집어 번쩍 공중에 털어 날리면 흐느적대던 옷들에 물찬 기운이 들어가 모양이  잡혔다.


스트~~ 라잌. 아주 잘 들어갔어.


다림질은 아빠의 몫이었다. 일요일이면 가족들의 빨래를 다 걷어와 하나하나 느긋하게 구김살을 펴 나아갔다. 그렇게 제 모양을 갖춘 옷들은 아빠의 손에 들려 제 자리를 찾아갔다.


그 작업이 끝나면 아빠는 냉장고를 청소했다. "쉬세요. 그거 치운 거에요." 하면 "야. 이게 치운 거냐 대체? 니들이 치우면 뭐하냐 내가 해야지." 하고 안에 있는 내용물들을 싹 꺼내어 버릴 것은 버리고 행주로 안팎을 구석구석 닦아냈다. 아빠의 기준에 맞게 반찬통과 음식들이 재배열되었다. 다 쓴 행주는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빨아서는 고이고이 널어두었다.


빨래는 지구의 공전인가.



지금 직장의 입사가 확정된 후, 아빠는 나와 집 앞에 있는 대형마트에 갔다. 최대한 튀지 않는 것들로, 그냥 누가 봐도 패용증만 걸치면 아 저 사람 공무원이다 싶은 그런 저렴한 옷가지들로 수 벌 골랐다. 새 옷을 세탁기에 돌리고 나서 아빠는 나를 불렀다.


"너 옷 다리는 법 알아?"

"아유. 내가 그거 못 다리겠어요. 알죠 당연히."

"여기 앉아서 내가 하는 걸 봐봐. 대충 말고 순서대로 어떻게 다리는지 잘 보고 가서 고대로만 해. 알았지?"


아빠는 셔츠의 칼라부터 시작하여 어깨선을 따라 뒷 팔, 그리고 등, 앞의 어깨 부분과 팔, 몸통 부분의 다림질을 선보였다. 바지선은 잡아줄 사람이 없으니 집게로 고정해 두고 안쪽에서부터 바깥쪽까지 구김살 없이 다려 걸어두는 법을 설명했다.


"꼭 다림질하고 다녀. 그게 회사 시작의 기본인 거야. 회사 다녀오면 구둣솔에 약 묻혀서 깨끗하게 닦아두고 자."


용모를 정리함으로써 내 본분을 잊지 않는다.



첫째가 태어났을 때, 아내는 거진 반년 동안 천 기저귀를 썼다. 어느 주말 아침, 아내가 빨랫줄에 천 기저귀를 줄줄이 널어놓고서는 개운한 얼굴로 외쳤다.


와. 천기저귀 숲이다!


천기저귀 투성이도 아니고, 천기저귀 더미도 아니고 그것도 숲이라니! 한 줄의 시라고 칭송하자 아내는 뭐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닌데 쩝했지만 나는 빨래대에 하얀 천기저귀들이 햇빛에 너울너울거리는 모습이 숲이라는 단어와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아침부터 기분이 설렜다.

퇴근하고 부리나케 돌아와 후다닥 씻고 아들을 들춰 안아 집 구경 놀이를 하는데 어느 곳 하나 아내 손이 미치지 아니한 곳이 없다. 아들 목욕을 시키고 아내 품에 안겨주면 아내는 준비해둔 널찍한 하얀 수건으로 능숙하게 아이의 온몸 구석구석을 닦아준다. 연지곤지 녀석의 몸에 로션을 발라주고 나서 다시 내 품에 폭 하고 안겼을 때 아기아기한 향이 내 목덜미를 타고 올라온다.


하얀 숲의 아기, 아내의 손길과 향기



세 식구가 되니 빨래도 참 많다.  


"여보~~ 빨래 꺼내서 널어줘!"

"여보~~ 빨래 개 줘!"

"갠 거 제자리에 놔줘!"


둘째를 기다리는 지금, 빨래 널고 개는 작업은 내 몫이 되었다. 그래도 다림질만큼은 아내가 해준다. 옷방에 다림질할 옷을 모아두면 아내는 슬그머니 들어가 칙칙 물소리와 함께 옷을 다스린다. 그리고 종종 부른다.


"여보~~~"

"어~~~~"

"그냥 불러봤어."

"어어. 또 불러."


나는 개고, 아내는 다리고, 아들은 흐트러 뜨리고, 아내는 부르고 나는 대답하고, 이렇게 지금의 매일이 돌돌돌 돌아간다. 먹고, 자고, 리고. 는다. 입고 살기 위해선?


죽으나 사나 빨래는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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