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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gun Jung Mar 29. 2019

젊음, 어림, 그리고 원칙

다듬어지지 않은 원칙은 독약이다.

바보 같은 원칙보다 내 감정에 충실하게 살기로 했다.


최근 훑어본 레이 달리오의 「원칙」에서는 물론이고, 성공한 사람들은 항상 자기만의 원칙을 강조한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스스로 만든 원칙을 냉혹하게 지키며 살려했었다. 스스로와의 약속이라 생각하며. 자신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며.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초반부 케빈 스페이시의 명대사가 나온다.

The nature of promises, Linda, is that they remain immune to changing circumstances.

이 말을 곱씹어본다. 약속은 상황이 바뀌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본질이라는 말. 약속의 본질이 불변성이고, 그 고귀함이 아름답다 믿은 나는, 스스로와 한 멍청한 약속 때문에 상황을 망쳤고 감정적으로 불행해졌다.


내가 세우고 지키려 한 원칙은 세 가지 방식으로 나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내 경험은 너무 부족하다. 살아온 짧은 시간은 나라는 사람의 특성을 파악하기엔 충분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특성, 세상의 특성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부족했다. 편협한 경험은 치졸한 원칙을 만들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말년에 세워진 원칙과 비교해 한없이 초라하다. 당연히 섣불리 세운 내 원칙이 제대로 된 것일 리 없다.


멋지다고 여겨지는 곳에 도달한 이들이 다들 원칙이라는 나침반을 들고 있기에 나도 하나 골랐다. 하지만 제대로 된 나침반을 고르는 눈썰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고, 내 눈썰미는 엉망이었다.


그렇게 잘못 세워진 원칙은 잘못된 방향으로 지켜졌다. 원칙은 도구일 뿐인데, 마치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인 것처럼 살아왔다. 고집스럽게 다른 모든 것들을 무시하면서라도 원칙을 지키려 했다. 원칙대로 행동하는 것이 좋은 삶의 자세라고 되뇌었고, 스스로를 자극하고 칭찬하며 원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고 세뇌했다.


고장 난 나침반을 들고 걷던 나는, 다른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나침반에만 집중했다. 마치 나침반을 따라가는 것이 길을 걷는 목적인 것처럼. 나는 주변을 감상할 여유도 없었고, 같이 길을 걷는 사람의 발에 잡힌 물집조차 되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다른 성공한 이들처럼 나침반만 따라 걸으면 될 것이라 안일하게 생각했다.


최악인 것은 원칙 때문에 가장 소중한 내 감정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원칙을 지키는 것은 결과와 무관하게 내 행복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건 원칙 준수도, 성공이라는 목적지의 도달도 아닌, 내 감정을 만족시켜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감정 따위보다 이성적인 원칙이 더 중요하다고 착각했다. 그리고 종종 감정에 충실했던 스스로의 행동을 원칙으로 포장하려고까지 했다. 결국 그 원칙은 대립하는 상황에서 감정을 찍어 눌렀고, 나는 불행해졌다.


내가 왜 걷고 있는지 물어봤어야 했고, 누구와 함께 거기로 가고 싶은 건지에 더 집중했어야 했다. 나침반조차 잘못 골랐지만, 목적지조차 성급하게 정해버렸다. 정한 목적지가 틀리지 않았다며 스스로를 압박했고, 걸어가는 길에 느낀 감각은 앞으로 방해만 된다며 애써 무시했다.


함께 걷는 사람들이 길을 벗어나면 윽박질렀고, 그들이 지치면 질질 끌어당겼다. 이제 돌아보니 언제나 목적지에 그들과 함께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중요한 건 목적지가 아니었다. 내 감정은 어디에서든 그들과 함께 있고 싶어 했을 뿐이고, 결국 목적지는 편하게 놀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이 중요한 걸 따라가지도, 심지어 차분히 관찰하지도 못했다. 방해된다고 착각했기 때문에.


24살. 내가 알면 얼마나 알고 겪어봤으면 얼마나 겪어봤을까. 그냥 조금 다른 길을 걸은, 그 조차도 절뚝거리고 헤매면서도 고집만 부리던 미숙한 애새끼다.


여러 힘든 일들을 겪으며, 삶의 목표가 바뀌었다. 더 많은 돈도 아니고, 더 많은 권력도 아니다. 그건 다 내 감정을 도와주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저 먼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되돌아볼 때, 지금처럼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려면 쓸데없는 원칙을 만들기보다는, 현재 내 마음과 감각에 더 집중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다행히 아직 젊고, 심지어 어리다. 조금 더 경험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그 뒤에 조금 더 내 감정을 솔직하게 바라볼 여유 정도는 아직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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