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애플리케이션, 플랫폼과 프로토콜이 다른 점
현재 수많은 블록체인 업체들(대부분 자체 코인을 발행했다)은 대부분 플랫폼이나 애플리케이션을 지향하는 것 같다. 이름을 프로토콜로 붙인 대다수의 프로젝트들조차 보편적 프로토콜을 만든다기보다는, 자체적으로 구성한 폐쇄적 생태계 속 규격에 협조할 파트너들을 늘리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물론 부러울 정도로 돈을 많이, 쉽게 벌고 있다. 다만 이게 지속 가능한지, 그리고 방식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물음표다.
본 4부작 글에서는 다음 주제들을 다뤄보려 한다.
1) 퍼블릭 블록체인은 왜 애플리케이션이나 플랫폼이 아닌지
2) 왜 퍼블릭 블록체인은 프로토콜이 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3) 프로토콜이 되기 위해 블록체인은 어떤 속성을 가져야 할지
4) 프로토콜 블록체인에서 어떤 일들이 가능한지
참고: 이 글은 퍼블릭 블록체인을 다루며, 프로토콜은 TCP/IP와 같은 개방형 프로토콜의 뉘앙스에 가깝다. 따라서 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블록체인과 프로토콜은 개방형을 의미한다.
애플리케이션, 플랫폼, 프로토콜
애플리케이션과 플랫폼은 구분해서 정의하기 매우 어렵다. 겹치는 영역이 있기 때문이고, 사실상 플랫폼은 진화한 애플리케이션이다. 하지만 프로토콜의 경우 앞의 두 개와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이 존재한다.
가장 큰 차이는 이해관계 구조다. 애플리케이션과 플랫폼은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운영자가 직접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취한다. 사용자가 내재가치를 직접적으로 상승시킨다. 반면 프로토콜의 경우 특허 사용료 등을 책정하지 않는다면 제작자는 직접적으로 돈을 벌지 못한다. 사용자가 돈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애플리케이션은 특정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프로그램 기법이다. 복잡한 계산을 하기 위해 울프람 알파를 사용하고, 검색을 하기 위해 구글을 사용하고, 인맥관리를 위해 카카오톡을 활용한다. 애플리케이션 운영자가 돈을 버는 방법은 매우 심플하다. 누군가에게 사용료를 받는다. 나는 공대에서 수학 과제를 빠르게 하기 위해 중간 연산 과정을 보여주는 울프람 알파 프리미엄을 샀고, 차를 탈 때마다 20% 정도를 우버에 떼줬다. 구글에 뜨는 광고를 봤고,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 뜨는 짜증 나는 플러스 친구들을 인내한다.
플랫폼은 (주로 애플리케이션 단계에서 확보한 사용자를 기반으로) 더 큰 경제적 시너지를 만드는 장터이다. 울프람 알파는 소박하게 공학도 커뮤니티를 만들어 학술 세미나, 교재 판매, 과외 알선과 같은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구글은 뭐, 알아서 정말 잘하고 있다. 수익성 없는 메신저인 카카오는 현명하게도 메시지에 과금하지 않고, 무료 메시지에 중독된 사용자들을 활용해 다른 영역에서 꾸준히 돈을 쓰게 유도한다.
프로토콜은 이런 모든 것들의 작동 방식에 대한 규약이다. 범용성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장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토콜만으로 폭발적으로 돈을 벌기는 어렵다. 법률이라는 국가 작동 프로토콜을 만든 사람들이 법조계에서 명성과 존경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이 프로토콜을 통해 직접적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변호사이다. 달러라는 가치 교환 프로토콜은 전 세계를 휘어잡고 있지만, 북한에서 부유층이 달러로 사치품을 소비한다고 해서 미국은 정치적 영향력 이외에 직접적인 거래 수수료를 받을 수는 없다. TCP/IP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이 강연료로 떼돈을 벌었을지는 몰라도, 유튜브 광고수익을 셰어 하지는 못했다. 메신저 텔레그램은 사용자를 기반으로 수익모델을 만들 수 있겠지만, 자체적으로 개발한 프로토콜인 MTProto가 직접적으로 돈을 벌어다 주는 수단이 아니다.
착각의 이유
사람들이 지금껏 블록체인, 그리고 비트코인을 애플리케이션이나 플랫폼이라고 착각한 이유는 명확하다. 프로토콜이라고 여기기엔 특이한 진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제삼자에 영향받지 않고 송금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출발했다. 독점적 플랫폼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보이는 기술을 사용하므로 새로운 플랫폼이 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나도 한 때 이 논리에 동조했었다.
무엇보다도 블록체인이 돈을 많이 벌게 해 줬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크다. 페이스북 초기에 투자해 대박 난 교수님처럼, 비트코인 초기에 투자해 대박 난 사람이 많다. 가장 중요한 결과물인 수익의 모습이 기존의 대박 인터넷 플랫폼과 비슷하니 플랫폼 같은 거구나, 이렇게 이해해버리면 편하다. 대박의 꿈을 꾸고 사는 모양새도 비슷하다. 증권사와 코인 거래소는 거의 동일한 UX를 가지고 있고, 본질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 투기자들에게 코인은 거래할 때 세금 안내는 주식과 다를 게 없다.
사용자 확보 등 성장세와 가격의 추이도 비슷하다. 비트코인의 사용 범위가 넓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보유할수록 비트코인의 가격과 가치 모두가 오를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까지 그래 왔다. 뉴스가 뜨면 가격과 본질이 무관한 경우에도 가격이 올랐다. 누군가 가격이 오를 거라고 생각하고 급한 마음에 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성장의 방법이 다르다. 마크 주커버그의 주식 가치가 상승한 이유는 실제로 페이스북 주식이 외부에서 돈을 가져다줬다. 단순히 더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 주식을 더 사서 오르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돈을 벌고, 미래에도 벌 것이고, 부동산도 가지고 있어서 주식의 내재가치가 존재한다.
비트코인은 다르게 작동한다. 비트코인은 현재 전송되는 것 이외의 기능이 없는데, 전송량이 많아진다고 이론적으로 비트코인의 가격이 상승할 이유가 없다. 전송 수수료가 배당되는 것도 아니고, 사서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만큼 받아서 파는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과 관계된 사람들이 부자가 된 것은 처음부터 비트코인을 들고 있었을 뿐, 돈은 플랫폼과 전혀 다른 메커니즘으로 가격이 올라서 번 것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비트코인을 개발한 사토시 나카모토 중 한 명으로 추정되는 크레이그 라이트는 초기 채굴에 참여해 막대한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고, 채굴 업체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 것인데, 이 것은 위에서 언급한 간접 수익에 더 가깝다.
다음 글에서는?
이번 글에서는 비트코인이 애플리케이션, 또는 플랫폼과 겉보기에 유사한 모습으로 성장했으나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살펴봤다. 여러 속성들을 감안할 때 블록체인이 성공한다면 예전의 송금 애플리케이션에서 멈출 수는 없고, 그렇다고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는 없다. 따라서 프로토콜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속성을 가져야 프로토콜로써 기능하는 블록체인이 될 것인지 논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