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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Jan 20. 2019

플라멩코 ㅡ 정열의 불꽃을 듣다 1

FLAMENCO - 정열의 불꽃을 듣다 1

  

* 스페인의 영혼이 담긴 음악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Dream the impossible)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Do the impossible love)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Fight with unwinnable enemy)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Resist the unresistable pain)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Catch the uncatchable star in the sky)'

  

돈키호테(Don Quixote)는 그래서 별을 잡았을까? 스페인을 꿈꾸는 우리 가슴 속에는 지금도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는 낭만기사 '돈키호테'가 숨 쉬고 있는지... 그런데 지금 그 돈키호테는 붉은 망토를 휘두르는 투우사가 되어 날카로운 뿔을 흔들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거대한 소와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열적이고 관능적으로 춤을 추는 플라멩코 댄서는 혹시 키트리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아! 꿈이나 깨고 음악으로 가자.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음악의 장르가 파두(Fado)라면 스페인에는 플라멩코(Flamenco)가 있다. 이 두 장르의 음악은 수세기 동안 이베리아 반도를 대표해 온 음악이다. 본래 플라멩코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전통 민요와 향토 무용, 기타 반주 세 가지가 하나 되어 이루어진 전통 음악이다. 이 플라멩코는 남자와 여자가 앉아서 감정을 넣어 부르는 노래(칸테 Cante), 열정과 구애를 관능적으로 표현하는 춤(바일레 Baile), 기타와 캐스터네츠 박수 등과 같은 음악 연주(토케 Toque)라는 3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옆에서 장단 맞추어 추임새를 넣거나 환호하는 관중의 소리 할레오(Jaleo)를 제 4요소로 꼽는다. 도식적인 설명은 아무튼 이렇다.

  

플라멩코는 곡마다 하위의 음악적 양식이 있다. 이것은 대체로 지역 명칭을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종류 역시 대단히 많으나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양식은 대여섯 가지 정도 된다. 구체적으로는 말라게냐(malagueña), 알레그리아스 데 카디스(alegrías de Cádiz), 불레리아스 데 헤레스(bulerías de jerez), 그라나이나(granaína), 세비야나스(sevillanas), 판당고스 데 우엘바(fandangos de Huelva), 베르디알레스 데 로스 몬테스 데 말라가(verdiales de los montes de Málaga), 론데냐(rondeña), 탕고스 데 트리아나(tangos de Triana), 티냐스 데 코르도바(cantiñas de Córdoba), 타란타 데 리나레스(Taranta de Linares), 타란토 데 알메리나(Taranto de Almería) 등이 있다. 이 양식에 대한 분류는 곡 옆에 대부분 친절하게 붙여놓는데, 음반을 사면 곡 옆의 작은 괄호 속에 반드시 이 양식을 병기한 것을 볼 수 있다.

  


*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문화

때로 신나고 때로 슬프고, 또 정열적이며 처절한 플라멩코는 오랜 세월 동안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화되어 왔을까? 그리고 지금은 또 어떤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진화? 그럼 플라멩코가 갈라파고스에서 온 거야? 아! 또 꿈꾸고 있구나.

  

711년에 아랍의 무어 족과 아프리카 북부 지금의 사하라 사막 북부에 근거지를 둔 베르베르 족의 연합군이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하여 이슬람교도의 지배가 시작되었고, 1492년 1월 2일 그라나다의 나사리 왕국이 아프리카 북부(지금의 튀니지와 모로코 지역)로 물러날 때까지 800년에 걸친 지배가 이어졌다. 플라멩코의 탄생지라고 할 수 있는 안달루시아(Andalusia) 지방의 어원은 아랍인들의 지배시기였던 716년 무슬림 정권의 알-안달루스 Al-Andalus (الأندلس)에 기인한다. 지금도 안달루시아 지역에는 알함브라 궁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아랍 식 유적과 문화가 남아있어서 사람들은 ‘유럽 속의 아랍’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안달루시아에서 태어난 플라멩코가 여러 가지 면에서 아랍의 창법이나 서정성이 깃들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1492년 이슬람 정권이 북아프리카로 물러간 이후에도 무어인의 일부는 자의반 타의반 기독교로 개종하고 안달루시아에 남아 그들의 문화를 이어갔다. 이들을 일컬어 ‘Moriscos’라고 하는데 이는 ‘무어인들’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이들의 음악을 ‘Zambra’라고 하는데, 플라멩코의 음악적 토대가 되었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잠브라’는 당시 결혼식 때 축하하는 춤곡으로 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 무렵 집시들이 안달루시아 지역에 유입된다. 그리고 집시의 독특한 음악적 특성이 점차 ‘잠브라’에 입혀지기 시작한다. 즉, 손뼉을 치거나 함성을 지르거나 하는 특징들이 ‘잠브라’의 '판당고(Fandango)'에 스며들면서 자연스럽게 플라멩코로 변화하는 것이다.

  

* 플라멩코는 지금 진화 하는가

무슨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일까?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는 없다는 말은 진리다. 플라멩코도 오늘날 변하고 있고 또 진화의 길을 가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이른바 ‘크로스 오버’로서 변화하고 있지만 더 심하면 ‘하이브리드’가 되어 버린다. 크로스 오버는 영역을 넘나들면서 나름 고유의 영역을 지키는 것이지만, 하이브리드는 융합이 되어서 DNA마저 바뀌는 잡종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잡종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생물학에서는 잡종에서 비롯되는 우성유전의 우월성을 ‘잡종강세’라고 하니까 말이다. 플라멩코는 ‘잠브라’에 집시의 춤과 흥이 더해지면서 태어난 하이브리드라고 해도 누가 뭐 크게 따지고 들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이런 변화가 플라멩코를 세계적인 음악 장르의 반열에 올려놓기도 했기 때문이다.

  

플라멩코는 한 동안 플라멩코의 일반적 전통성을 이어오다가 20세기 초중반에 들어서는 세포분열을 시작한다. 플라멩코라는 핵이 둘로 나뉘면서 전통적인 플라멩코와 기타 연주 위주의 플라멩코로 나뉘게 된다. 이런 현상은 오히려 플라멩코를 더 친근하게 접할 수 있게 한 동력이 되었다. 즉 플라멩코를 감상하려면 노래하는 사람, 춤추는 사람, 연주하는 사람, 또 일정한 공간이 동시에 필요했지만, 기타 연주는 기타 연주자 한 명만 있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영역을 개척한 연주자는 적지 않지만, 그래도 당대 최고로 꼽는 연주자로는 역시 파코 데 루시아(Paco de Lucia)일 것이다.

  

한편 이런 진화에 조금 앞서 또 다른 잡종이 태어나기도 했다. 이른바 룸바 플라멩코(Rumba Flamenco)라는 하이브리드이다. 쿠바의 하바나에 기원을 둔 쿠바 룸바와 ‘Guaracha’는 19세기 거꾸로 스페인에 상륙하여 안달루시아에서 탈피를 시작한다. 그리고 플라멩코와 교접한 룸바는 플라멩코 룸바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냈다. 오늘날 이 장르의 음악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음악가로는 ‘Gipsy Kings’를 들 수 있다.

  

이외에도 지금 전 세계에는 플라멩코를 연주하는 기타리스트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쉽고 간단한 플라멩코 리듬만 가져다 쓰면서 ‘새로운 플라멩코(Nuevo Flamenco)’라고 주장하는 연주자들도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로부터 “그게 무슨 플라멩코냐?!”하고 이른바 짝퉁 플라멩코라고 비난 받기도 한다. 하지만 경음악 수준의 몸집 가벼운 ‘짝퉁(?) 플라멩코’가 일반 대중에게는 아주 편한 음악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어필하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그들의 음반이 나름 엄청나게 팔려나가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연주자로 Ottmar Liebert를 들 수 있다. 그는 게다가 ‘누에보 플라멩코’라고 이름 붙인 것이 마케팅 전략 아니냐는 비난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귀신도 부린다’는데 그런 비난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좌우간 음반은 플래티넘 급으로 많이 팔렸다.

이제 플라멩코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고전음악부터 오늘날 변화하는 플라멩코까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세계음악 컬럼니스트 김선호>

https://youtu.be/M7WFwh2FPT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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