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결정의 제1원칙, 게리 클라인 지음
우리는 매일 매일 많은 결정을 내리고 산다. 그렇기에 대부분은 이 의사결정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잘 알고 이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을까? 이 논의는 의사결정과 인지과학을 통해 오래 전부터 연구되고 논의된 주제다.
카너먼, 트버스키로부터 시작된 행동경제학의 등장은 이 분야에서 큰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인간의 행동과 판단에 내재된 불완전성과 제한적 합리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인간의 판단과 감이란게 외부 요인과 변수에 너무나도 쉽게 흔들린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카너먼 트버스키의 가석방 실험이다. 가석방 심사에서 시간별로 허가율을 분석한 결과, 점심시간 직전이 가장 낮았고 점심시간 직후가 가장 높았다. 11시 즈음에 특별히 특별히 나쁜 사람을 심사하고 1시 이후에 특별히 좋은 사람들을 심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결과는 인간의 배고픔과 배부름이 관대함에 영향을 미쳐 가석방 심사의 결과차이를 낳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이후의 의사결정은 이 인간의 제한적 합리성과 불완전성을 최대한 배제하는 방향으로 논의 되고 발전되어 왔다. 인간의 판단이 이토록 외부 변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면 인간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최선일테니 말이다. 이 때문에 매뉴얼에 의거한 판단, 데이터와 논리를 활용한 분석을 통해 인간의 편견과 감정적 요소를 배제하고자 한 것이다.
자 그럼 이러한 의사결정이 과연 만능인가? 저자인 게리 클라인은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대니얼 카너먼이 인간의 제한적 합리성을 밝히고 이를 최대한 배제한 의사결정을 연구해왔다면 게리 클라인은 인간의 직관적 판단과 이를 통한 의사결정을 연구해온 인물이다. 실제로 이 둘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이 주제로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공동 연구를 하기도 했다.
이 책, [이기는 결정의 제1원칙]은 바로 게리 클라인이 자신이 연구하는 직관을 바탕으로 '어떠한 의사결정 과정이 좋은 의사결정에 이르게 하는가?'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게리 클라인의 전작인 [인튜이션]에서 좀 더 일반적인 의사결정으로 한단계 나간 책인 셈이다.
게리 클라인은 좋은 성과를 낼 것으로 믿는 의사결정의 10가지 통념을 제시하고 이를 논파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자기 딴에는 나름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노력도 보인다. 결론만 얘기하자면 좋은 책이다. 하지만 게리 클라인이 자기의 주장의 근거를 위해 사례 폭탄을 내리 퍼붓는데 이 때문에 꿰어 맞추기 식의 사례도 많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니 책에서 소개된 사례에서 일부만 반박을 해보고자 한다.
먼저 2장에 소개된 유나이티드 에어 232편 사고(1989)다. 유압계통의 문제로 기체가 비상착륙을 하고 동체가 박살이 났음에도 당시 기장들의 대처가 좋았기에 생존자가 있는 몇 안되는 사고다. 책에서는 이 사례를 매뉴얼적인 대처가 아니라 전문적인 경험을 축적한 기장들의 효과적인 대처 덕분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사고 4년 전에 JAL 123편 추락사고(1985)가 발생하면서 이 때부터 유압 계통의 손실 상황시의 사고 대처에 대한 연구와 케이스 스터디가 본격화되었다. 물론 이에 관한 매뉴얼이 나오진 않았으나 비슷한 상황에서의 대처 방법에 대한 연구는 다각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사고 당시 공교롭게도 승객 중에 이 사고의 대처를 연구한 DC-10 운용 기장이 존재한 것이 사고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매우 큰 역할을 했다. 때문에 이것을 클라인의 주장처럼 단순히 경험에 의한 임기응변 사례라고 들기엔 어렵다.
또한 책에서는 2003년 CIA의 이라크 분석 이야기를 들고 있다. CIA에서 이라크가 WMD(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행하였고 이것이 이라크전쟁 발발의 근거로 쓰였다. 하지만 막상 까보니 CIA에서 확실히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던(슬램덩크라는 표현까지 들어갔었다) WMD는 어디에도 없었다.
클라인은 이 처참한 실패 이후에 CIA의 분석 방식이 인간의 오류를 최대한 배제하는 방식으로 움직여 분석가들의 직관을 배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는 직관의 실패가 너무 처참했기 때문에 생긴 반작용이란 점을 빼놓고 있다.
이라크전 당시 CIA의 실패는 '사담 후세인이 마치 WMD를 가진 사람처럼 행동했다'는 점에 있었다. 데이터와 자료만으로는 이라크에 WMD가 있다고 확신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사담 후세인의 발언과 행동은 외부의 시선에서는 WMD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심을 들게 만들어왔다.
예전에 [슈퍼예측] 북리뷰에서도 잠깐 언급한 적 있지만 데이터를 통한 분석은 행동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사담이 WMD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70%라고 했을 때, 이걸 기반으로 엄청난 인명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전쟁이란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결국 결정을 내리는 것은 직관이다. 당시의 CIA는 결정의 근거를 내려줘야 했기에 애매한 가능성과 분석을 제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사담의 발언과 행동까지 고려해보면 WMD를 가지고 있다는 직관적 판단이 나온 것이다. 그래서 나온게 슬램덩크란 표현이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이라크전이 벌어졌고 말이다.
이와 정 반대의 상황이 진주만 공습이었다. 진주만 공습의 경우 전쟁이 임박했다는 것은 정보와 징후를 통해 알 수 있었지만 발발 장소를 알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이때 진주만 주변에서 일본의 공습 징후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일본 잠수함이 진주만 근처에서 침몰했다든가, 레이더에 일본 정찰기의 신호가 잡혔다든가 말이다. 당시 미군은 이러한 징조를 전부 무시했다.
이것만 보면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할거란 직관을 무시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진주만은 당시 미 태평양 해군의 집결지역이므로 전쟁을 앞둔 경우 사전 정찰이 필수적이다(잠수함 격침이 정보가 될 수 없는 이유). 또한 레이더에 잡힌 일본 정찰기의 신호는 b-17로 오인할 수 있다는 사후 판단 결과가 나왔다.
이런 정보와 신호들을 활용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바로 직관적 판단 때문이다. 진주만을 직접적으로 타격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직관적 판단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한 케이스다. 만약 정보를 분석적으로 조심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오히려 이들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을 수도 있다.
어떤 사건에 대한 판단의 적합성을 사후에 내리는 것에는 매우 신중함이 요구된다. 결과가 판단의 적합성을 가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이 책에서 언급하는 사례들은 결과가 판단의 적합성을 가린 사례라는 지적을 피하기가 어렵다. 사례의 가짓수가 많다고 해서 주장의 근거가 더 탄탄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걸 이 책이 보여주고 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이기는 결정의 제1원칙]을 좋게 평가하는데 그것은 이 책이 다른 시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가치있는 다른 관점'을 던질 수 있느냐가 책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란 걸 알게 된다. 나는 책을 평가할 때 이 부분을 중요시하게 여기기에 여러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호의적인 시각을 보내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 가을에 트레바리에서 내가 이 책을 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많은 비판을 하기도 했다)
의사결정에 관한 책은 많다. 이 책은 다른 시각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할 만한 책이지만 이 한 권만 놓고 보자면 충분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은 데이터 기반, 논리와 이성 기반, 매뉴얼 기반의 의사결정이 만능은 아니라는 점을 던지고 있지만 직관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다른 의사결정에 관한 책들과 함께 읽을 때 이 책의 강점이 부각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