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고 많은 나라 중에 스위스가 초콜릿 강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오늘은 발렌타인데이니 만큼 초콜릿 이야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지금이야 벨기에 초콜릿이 고급 초콜릿으로 유명하지만 원래 이 분야의 원조는 스위스죠.
스위스 초콜릿 산업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돈슐랭 본영상을 확인해주시면 되고요. 오늘 제가 코멘터리로 자세하게 다룰 내용은 '왜 하필 스위스 초콜릿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가?'입니다. 스위스는 내륙지역에 다른 나라들처럼 카카오 생산지에 식민지를 가진 것도 아니고 초콜릿 산업 자체도 다른 국가들보다 100년 정도 늦었습니다. 그런데도 전세계적으로 초콜릿 분야에서 막대한 명성을 가진 나라라는거죠. 저는 이 이유가 옛날부터 궁금했거든요.
물론 스위스 초콜릿의 명성은 다니엘 피터나 로돌프 린트같은 혁신가들이 등장한 덕분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 혁신가들 때문이라고만 설명하면 이 또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그럼 왜 다른 나라가 아니라 스위스에서 이런 혁신가들이 등장했는가?'란 질문이 나오게 되거든요. 본 영상에선 시간의 부족으로 제대로 다루지 못한 내용입니다.
일단 본영상에도 언급했듯이 17-18세기 유럽 남부지역의 초콜릿 중심지이자 사보이아 공국의 수도였던 토리노와의 인접성이 스위스에 초콜릿 산업이 이식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실제로 스위스 초콜릿 산업의 초기 기업들은 스위스 서부의 레만호를 중심으로 브베, 제네바, 몽트뢰에서 주로 탄생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하죠. 토리노와 인접한 곳이 스위스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19세기 기준, 초콜릿 산업으로 유명한 도시를 꼽자면 영국의 버밍엄, 브리스톨, 요크, 독일의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 도시의 공통점은 인구로나 경제로나 당대 가장 빠른 성장을 기록한 산업도시이자 교통의 중심지란 점이 있습니다. 경제성장을 통해 형성된 부 덕분에 초콜릿의 소비가 가능했고 산업도시란 특성은 초콜릿 공장을 만드는데 필요한 다양한 장비의 제작과 조달이 쉬운데다 인력과 동력을 얻기에도 편한 장점이 있었거든요. 스위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기적으로 19세기의 스위스는 '가난한 산악지방 국가'라는 이미지를 벗고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던 때였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스위스의 시계산업이 완전히 안착하고 전유럽적인 명성을 얻어가던 시기이자, 1815년 파리 조약과 빈 회의에서 스위스가 유럽 열강들에게 영구중립을 인정받고 국제 정세적인 안정을 찾아 상공인들이 이주하던 때였거든요.
스위스의 시계 산업이 제네바를 중심으로 쥐라 산맥까지 이어지는 스위스 서부지역에 밀집한 지역적 분포를 보이고 있는데 초콜릿 산업의 분포 또한 비슷한 형태를 보였다는 것이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20세기 이전까지 초콜릿은 비싼 상품이자 부유층을 위한 상품이었는데 이게 공교롭게도 시계와 동일한 특성이기도 하죠. 시계 산업이 성업을 이루면서 해당 지역의 경제도 빠르게 성장했는데 이 영향이 초콜릿 산업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겁니다.
즉, 초콜릿 판매에 핵심이 되는 내수시장의 빠른 성장과 장비, 설비 제작과 조달에 유리한 환경, 풍부한 인력과 동력이 결합된 결과가 바로 스위스 초콜릿 산업이란 겁니다. 여기에 지리적 인접성으로 인한 기술교류와 경쟁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다니엘 피터와 로돌프 린트같은 혁신가들이 탄생하고 이들이 만든 상품과 기술이 전세계 초콜릿 시장을 뒤바꾸면서 스위스 초콜릿의 명성이 확립된 거고요.
또 스위스라는 작고 제한된 시장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하다보니 다른 국가의 초콜릿 기업들보다 수출 지향적이 되었고,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스위스 초콜릿 기업들 간의 M&A도 활발하게 이뤄져서 규모의 경제를 빠르게 달성할 수 있었죠. 기술적 우위와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는데 시장을 장악하고 대표 산업과 기업이 되지 못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겁니다.
물론 20세기 들어선 압도적인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몬델레즈(크래프트), 마즈, 허쉬에 규모로선 좀 밀리긴 합니다만 스위스로 하여금 초콜릿의 나라라는 명성은 바로 이러한 우위와 발전에서 나올 수 있었던거죠.
자세한 내용은 돈슐랭 본영상을 확인해주세요.
https://youtu.be/Z6l4y-pjM0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