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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Aug 08. 2023

음식이 나를 부른다

다시 그리운 그 맛들

식탐이 없고, 미각이 출중하지 않은 나같은 사람도 한국의 음식은 그냥 음식이 아니고 내게 손짓하는 유혹의 강력한 손길이 아닐수 없다. 이번에도 사람들을 만날때는 음식이  함께 했고, 맛에 취해, 사람에 취해 나의 한국사랑은 농도가 진해져갔다.


"그 시절 추억의 맛! 사장님이 만드는 '사장님 맘대로' 옛날 떡볶이"가 음식이름이다. 메뉴 위에는 "수요미식회"가 선정했다고 하고, 밑에는 사장님의 스케줄, 컨디션 또는 주말, 공휴일 등에 주문이 안될 수 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라고 쓰여있다. 하, 얼마나 인간적이면서도 음식에 자존감이 느껴지는 설명인지. 그집의 "옛날 떡볶이"의 흠이라면 옛스럽지 않다는 점이었다. 주인장에 의해 다시 태어난 떡볶이는 화로밑에 작은 촛불이 들어가 온기를 더한 출세한 옛날 떡볶이였다.  한국의 많은 식당들이 이런 자존심과 철학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혹자는 경쟁이 치열해서, 특출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워서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떠나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는 선구자적인 면모에 존경심이 일었다. 이 식당은 안국동에 있는 "사발"이라는 이름의 식당인데, 밖에서는 간판이 보이지 않는 아파트밑 상가에 입점해 있었는데, 우리는 실외에 자리를 배정받았다. 처음에는 조용한 음식점인가 했는데, 때가 되자 빈 자리가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운동권(?) 선후배와의 만남은 이 식당이 주는 전문적이지만, 소란스럽지 않은 서비스와 메뉴를 보면서 음식을 고르는 재미에서부터 시작됐다.


사장님 맘대로 만든 떡볶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왼쪽 아래 음식은 굴 버섯 흑임자 들깨탕 국수, 내가 먹었던 것. 이름 그대로 굴을 비롯한 재료들이 풍성했다.


다른데로 자리를 옮기고 싶지 않아서, 우리는 맥주를 시키고 조금 더 머물렀다. 이민오기 전까지 함께했던 선배의 운동권에 발을 붙이게 된 사연을 듣게 됐는데, 좋은 학교를 다녔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다고 했다. 어떤 것에도 마음을 붙일 수 없었다고. 어느 순간 머릿속에 차있던 검은 구름이 뒷머리를 통하여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고, 그때서야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평소 존경하는 선배에게 찾아가서 의논을 하고, 공동체 일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선배들을 도우면서 이길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 선배를 쫓아다니며 그를 도왔고, 그러다가 배신을 때리고 캐나다로 사라진 후배 때문에 그는 마음이 아팠을 터.


선배는 연구소를 차려 글쓰기에 관한 여러가지 작업들을 하고 있는 듯하다. 논술학원도 경영하고.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듯싶다. 그자리에는 선배의 아내도 있었는데, 최근에 은퇴를 하고 유럽여행을 준비중이라고 했다. 선배가 과하게 맥주를 좋아해서 속을 끓였는데, 이제는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어떻게 남편의 음주에 무심할 수 있느냐는 다른 후배의 질문에 그녀는 잠시 숨을 멈추고 말을 고르더니, "어느순간, 내가 모든 걸 감당하면 되겠다고 결정하고나자 가능해졌다"고 했다. 남편이 병에 걸려 반신불수가 되던, 다른 사고가 생기던 내가 뒷바라지를 하겠다고 결심했단다. 선배는 이 말에 웃으면서 그런데 아내가 더 골골해서 내가 병시중을 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자신은 술을 마시기 위해 운동을 꾸준히 한다고. 후배 하나는 아가씨같은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생각은 우리 모두 보다 노숙해 보였다.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는 그녀는 저질체력이라 많은 일을 하지못한다고 했다. 그래도 상담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 자신한테는 맞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예리한 시선으로 우리들의 대화를 진지하게 유지시켜줬다.


학원을 경영했던 친구는 선후배, 그리고 나같이 외국에 나가서 가뭄에 콩나듯 들어오는 사람들까지 서로서로 연결시켜주는 고리의 역할을 하는 듯했다. 요즘엔 유기농을 파는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고. 시절이 바뀌고, 운동권이 욕을 먹는 시대가 됐지만, 큰 욕심없이 사는 그들은 젊을때의 신념이 삶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같아 보였다. 식당에 자리를 비워줘야 할 것 같아서 일어나서 광화문 근처를 걸어서 카페를 찾았는데,  그집이 문을 닫았고,  그래도 야외의자가 있어서, 근처에서 커피를 사서 함께 했다. 밤온도가 적당했고, 식당과 커피 마시는 곳, 모두 마음에 들어서 우리는 선배의 맥주사랑의 정도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나는 좋은 텔레비전 프로를 보면서 휴식을 하는 걸 즐기는 것처럼, 선배는 2시간에 걸친 식사시간에 맥주를 초대해 행복한 하루를 마감한다고 했다. 두명이 시작한 자리가 한 사람은 자리를 뜨고 결국 혼자 맥주의 시간을 끝낸다고. 부인이 일하는 동안 완벽한 외조를 했다는 선배의 맥주사랑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  건강을 생각할 나이가 되어서 조금 걱정이 된다. 그날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친구가 선물한 책을 지하철 화장실에 두고 집으로 가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내게는 같은 장소, 같은 칸의 화장실을 찾는게 큰 미션이었는데, 선물받은 책이기에 반듯이 찾아야했다. 광화문 지하철은 수많은 출구가 있기에 출구밖으로 나가서 되짚어 들어오는 방법으로 마침내 찾았는데, 책은 그자리에 있었다. 한국에서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가지 않는다고 하더니, 역시였다. 


떡볶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들어가보자. 신당동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곳이 원조라고 하지 않던가. 홀로 떠돌던 어느날 신당동을 찾아 갔다. 신당동 떡볶이 골목에 가니, 입구만 거창할뿐, 몇개의 가게만 있었다. 시장같은 곳에 크고 작은, 혹은 길거리 노점상이 도열해있는 것 아닌가 기대했던 나로서는 좀 실망이었다. 접근이 쉬운 음식이어야 하는데 말이다.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는 곳이 아니고, 한산해보이는 곳에 들어갔더니, 최소주문은 2인분이다. 나 혼자 가서 2인분을 먹고오는 것도 그렇고 해서 2인분 포장을 했다. 나중에 집에 와서 끓였는데, 그 맛은 영 매력이 없고, 아니올시다였다. 


이렇게 조금 실망을 하고, 나중에 친구와 함께 갔던 광장시장에서 진짜를 만났다. 긴시간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찹쌀도넛을 사려고 한 친구는 줄을 서고 나와 또다른 친구는 떡볶이집에 줄을 섰다. 줄을 설 곳이 없을 정도로 협소한 공간이었지만, 그래도 그것이 가능했다. 그곳에서 정말 맛있는 떡볶이를 먹었다. 찹쌀도넛도 다시 먹어봐야 그 맛에 대한 품평을 할수 있을 것 같다. 아~~ 다시 먹고 싶으다. 


원주에서 식당을 하는 친구는 서울에 오면 이렇게 맛집탐방을 하는데, 그것이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외국서 온 친구를 위해서 광장시장의 먹거리 골목으로 데리고 가서, 유명한 찹쌀도넛과 떡볶이를 선뵈었으니, 어찌 고마움을 표현할지. 이렇게 대강 배를 채우고, 청계천 산책로를 걷다가 카페를 찾아갔다. 이곳은 옛 한옥을 고쳐서 카페로 만든 곳이었는데, 그 가격에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수 없었다. 친구가 사겠다고 뭐 먹을래, 하는 바람에 몇가지 빙수중에서 망고빙수를 부탁했는데, 계산을 하던 친구가 깜짝 놀란다. 그래서 앉았던 의자에서 일어서서 그 가격을 보았는데, 아마도 여기돈으로 40불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나는 거의 고함을 쳐서 망고빙수를 취소했다. 그리고 자몽 빙수로 대체했는데, 그래도 절반의 가격은 되었다. 요즘 시세를 모른다고 여러 사람이 내게 말해줬다. 음료수값이 대체로 그렇게 비싸다고. 자릿세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도 40달러짜리 빙수를 먹고싶지는 않았다. 모양은 요란벅적, 음식디자인에 대한 가격이었던 것같다. 


광장시장의 떡볶이와 고급 카페에서 먹은 자몽빙수


과친구들이 지난번 내가 왔을때 의쌰의쌰해서 여행계를 시작했다. 나도 밀린 돈을 내야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나뿐 아니라 미납자가 많고, 여행계가 좌초에 빠져있었다. 여행이라는 게, 그리 쉽게 이뤄지는 건 아니고, 한순간의 결정으로 끌고가는 건 무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회원 사이에 껄끄러움이 발생하면 그것이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여행계를 위해 짐을 졌던 친구가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것같았다. 그 친구를 만나 여행계를 무산하기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쪽저쪽(?) 박쥐였으므로 서로의 입장을 알고 있으니, 이런 상황에서 이것을 끌고가는 것은 무리가 있다 싶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어쩌면 나의 오지랖으로 인해 싹을 띄울뻔 하다가, 다시 말라죽은 일이 아닐지. 원주 친구가 가고, 그날 나를 재워주겠다는 여자 동기와 여행계 대장이었던 친구와 함께 교보서점을 방문했는데 친구가 책을 고르라고 했다. 결국 박범신 산문집 "두근거리는 고요"와 이관호 작가의 "오십이 앞으로 어떻게 살거냐고 물었다"라는 책을 추천, 선물해줬다. 두 책을 읽으며 허전했던 방문후유증을 많이 극복했다. 특별히 "오십이..."는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 없는 것을 그리워하지 말고, 있는 것을 잘 활용하라,는 메시지가 내게 닿았다. 작년, 올해 몇번의 만남을 통해 가까워졌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소원해지는 우리들, 그들의 안부는 묻지 

않지만, 언제나 잘지내고 있기를 기원하게 된다.


한국에 올때마다 첫번째로 얼굴보는 사람들이었던 제주도 여행 친구들은 이번에는 조금 뒤로 밀쳐졌다. 가족들을 먼저 보고 나중에 보자고 하면서. 1박이라도 하면 좋았겠지만 그럴 상황들은 되지 않았고, 하루종일 함께 하는 계획을 짰다. 아침에 만나 실학박물관쪽으로 차를 몰아서, 도산공원을 함께 걸었다. 실학박물관 해설사로 봉사하는 친구가 있어서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도산 공원 둘레길을 걸을 수 있었다. 


점심으로 갔던 곳이 기억에 남는다. 일심 본가 콩요리 식당이었다. 두부요리, 비지찌개, 코다리 찜 등이 포함된 식탁은 깔끔했고, 보기만 해도 건겅해지는 메뉴에다, 맛도 일품이었다.


가평 근처라고 들었다. 콩요리에 진심인 곳이었다. 


갈까, 말까 나는 안가도 돼, 이렇게 심지없이 말하다가 처음 계획했던 "아침고요수목원"을 결국엔 갔다. 거대한 산을 테마별로 정원을 만들고, 곳곳에 멋진 나무와 꽃들, 그리고 정자와 연못까지. 아마도 아침에 가면 더욱 호젓하고 아름다우리라. 처음 세웠던 계획을 변경하는데 일초도 안걸리는 나를 반성했다. 한 친구가 가기로 했던 데를 가보자라고 밀어서 수목원의 아름다움을 볼수 있었다.


이곳에서 인생샷을 건지기도 했다. 친구가 최근에 구입한 비싼 카메라로 찍어줬는데, 이게 꽤 분위기가 있다. 아마도 그 장소는 베스트 포토존이 아니었는지. 나뿐 아니라 친구들 모두 좋은 사진을 하나씩 받았다. 최근에 들어서 사진이 곧잘 나온다. 그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잔주름을 펴주는 앱, "스노우" 덕분이기도 하지만, 보통으로 찍어도 45%는 마음에 든다. 아마도 그날의 환경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 속깊은 데서 쏟아져나오는 기쁨은 얼굴에 고스란히 올라오는 것같다. 웃으면 절반은 성공이다. 많은 순간 주인공이 되어서 찍힘을 받았고, 그걸 마다하지 않았다. 언제나 이뻤던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가족사진을 찍으면 나만 동떨어진 어떤집 아줌마처럼 나왔던 적이 많았던 지라, 사진이 잘나오기 시작한 요즘은 이변에 속한다. 이것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니까, 열심히 찍는다. "나 찍지마" 하던 사람중에 한명이었으니까. 사람의 얼굴은 많이 변하는 것같다. 


아침고요수목원, 사진이 잘나오던 정자를 낀 풍경
도산공원 둘레길


낮시간에는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하고 일했던 친구가 사는 곳까지 가서 저녁을 샤부샤부로 해결했다. 더이상 먹지 못할 정도로 음식이 풍부한 곳이어서 다 맛보지도 못했다. 그 음식들이 그립다.


사발식당을 한번 더 찾았다. 남편을 통해 알게된 그녀와의 두번째 만남이었다. 첫번째는 내가 회를 좋아한다고 그녀의 집근처에서 회를 사줬었다. 이번에는 내가 갚아야지, 하면서 장소까지도 내가 골랐다. 식당도 잘찾고 좋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간발의 차, 몸싸움에서 져서 이번에도 그녀가 계산했다. 나는 김혜자의 책, "생에 감사해"를 지난번 만남때 사다줬는데, 그녀는 나보고 읽어보고 다음에 만나면 주라고 해서, 두번째 만남을 갖게 됐다. 사실 이번 방문은 1달간이었기 때문에 가족을 빼고는 모두 한번씩 볼수밖에 없었는데 유일하게 그녀와 두번의 만남을 가졌다. 공통화제가 두집의 남편에 대한 것이어서 서로 흉을 볼수 있었다. 그런데 상대방 남편의 행동을 너무 잘 이해하는 이것은 무엇이람. 말하자면, 그녀의 성격은 나의 남편의 성격과 흡사하고, 나는 그녀의 남편의 오지랖을 닮았다. 말하는 것마다 서로 손뼉을 치며 웃느라 혼났다. 이세상은 나처럼 사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도 있다는 것을 우리 둘을 통해서 깨닫는다.


호주에서 어머니를 돌보느라 한국에 나와있던 친구와도 하루 반나절 만남을 가졌다. 두번 다 같은 시간 한국에 있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긴시간 얼굴을 볼수는 없었다. 그녀와 함께 방문했던 "떡 박물관"은 관람객이 우리 두명밖에 없었다. 한국전통 음식, 문화, 혼례등을 전시해놓았는데 우리에게는 좋은 구경거리였다. 친구는 한국 전통인형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내게 보내준 그녀의 작품들은 전문가의 솜씨에 가깝다. 밖에 있으니 더욱 한국적이 되어가는 건가? 


어문계열 여학생들도 이번에 만났다. 안국동의 한 식당은 일인분씩 음식이 나왔고, 카페 2층은 널찍해서 이야기 보따리가 풀어진 우리들이 눈치안보고 오래 앉아있을 수 있었다. 친구들은 내가 스마트폰 삼각대를 이용해 단체 사진을 찍었더니, 내가 대단한 얼리어답터(이말도 내겐 낯설다)인양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광주에서 교수로 있는 친구는 농사에 집중해서, 은퇴후 귀농을 생각한다면서 준비중이다. 그녀는 오는 길에 텃밭의 상추를 따서 가져와   모두에게 한봉지씩 나눠줬다.  아줌마들은 그날 저녁 모두 상추를 상에 올리고 밥을 먹었다고 사진을 올렸고, 나는 상추와 함께 상경한 달팽이 사진을 찍어 보냈다. 친구들은 상추와 달팽이를 보면서 동화를 쓰면 좋겠다며 우선 제목부터 짓자고 말했다.  나는 "상추와 여교수"를 제안했는데, 다른 친구의 "KTX를 타고온 상추"가 더 그럴싸 해보인다.  


친구중에 한명은 대학때 MT갔다가 얼굴에 화상을 입었었다. 그때 엄청난 사건이었는데, 나는 친구를 병문안가서 한마디도 할수 없었다. 지난번 방문때 그때 한마디도 못해서 미안했다고 사과했다. 그녀는 뭘 그런 것을 다, 하면서 손사래쳤다. 20살 즈음에 그런 큰 사고를 당했던 그녀가 흉터를 가리느라 언제나 목에 두르고 다녔던 스카프를 두르지 않아서 깜짝 놀랐다. 그녀는 긴 시간의 회복기를 거쳐서 완전히 치유됐고, 행복해보였다. 화상을 입을 때 함께 있었던 후배와 가정을 이뤄 잘 살고 있음에 감사드린다. 친정어머니를 오랫동안 모시다, 이제는 시어머니를 모시느라 시간을 내기 어려운 친구까지, 모두 자신의 사연을 안고 묵묵히 성실히 생활하는 그들이 내친구라는 사실이 얼마나 좋은지.


함께 앉은 식탁인데, 음식은 일인분씩 나오는 곳이었다. 미역국 정식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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