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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Oct 31. 2023

나홀로였던 시간들

그를 기다리며

남편이 돌아오기전에, 그가 없이 보낸 시간들에 대해서 쓰긴 써야할 것 같다. 돌아오고 나면, 글의 맛이 없어질 것이 분명하다. 혼자 살아갈만하다는 걸 느꼈다. 2달이면 짧지않은 시간이었는데, 그걸 거진 견뎌내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좀 별다른 경험들을 하긴 했다. 


어느날, 집안에 쥐가 있는 것을 알게 됐다. 부엌 서랍 수저 포크, 등을 간수해놓는 진열통에서 그분의 흔적(쥐똥)이 보였다. 그 다음날은 그 숫자가 더 많아진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할지 깜깜했다. 일단 써야할 것들을 통에 담아놓고, 찬장도 모두 문단속을 했다. 혼자 먹는 부엌이니, 조금 조심하면, 쥐님의 발자취를 피해 생활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일단 그것을 잡아야 할 것이 아닌가? 작년에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왔을 때도 쥐님의 침입이 있어서, "빨리 빨리 잡아!!"라고 지시만 하면 됐는데, 이번에는 내가 직접 잡아야 했다. 밖에 나가보니, 부엌문 근처에 구멍이 있다.  그 구멍을 타고 들어와서 지하실에서 1층으로 왔나 싶었다. 구멍막기와, 쥐덫 설치가 과제로 떨어졌다.  쥐덫을 12개쯤 사왔다. 그걸 설치하다보니, 제대로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중국산이라 불량품이라고 생각했다. 쥐가 건드리면 튕겨져나와 죽이는 것인데, 그 작은 쇠줄이 고정이 안된다. 나중에 유튜브 몇개를 찾아봤다. 그러고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감을 잡았다. 쥐를 잡는다고 하다가, 내 손가락 부러지면 안되므로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피넛버터를 그 위에 얹어놓아야, 그분을 초대하기 쉽다.


그렇게 부엌 이곳저곳과, 서랍안에도 놓았다. 그리고 쥐구멍을 막는 것도 유튜브를 보면서 연구했더니, 가는 철사로 만들어진 울 스틸이 있다고 했다. 그것으로 막으면 쥐가 다시 뚫을 수 없다고. 구멍에 짜넣으면 부풀어서 굳어버리는 것도 있다고 하는데, 그 둘중 하나를 사용하면 될 것 같았다. 홈 하드웨어 상점에 가서, 이리저리 배회하면서 다녔더니, 직원이 무얼 도와줄까, 한다. 그래서 쥐구멍을 막을 걸 찾는다고 했더니, 유튜브에서 봤던 그 두가지를 다 소개해준다. 일단 울 스틸이 일하기에 좋을 것 같았다. 울 스틸도 굵기에 따라서 여러 종류가 있더라. 약간 거친쪽으로 한봉지 샀다. 모양은 철수세미처럼 생겼는데, 그보다는 더 굵은 철로 만들어졌겠지. 


집에 와서 부엌문 바깥에 있는 구멍을 일단 막았다. 개미도 그속을 헤치며 들어가기 쉽지 않아 보였다. 집으로 들어와서 지하실도 구멍이 있는듯 싶은 곳은 막았다. 쥐만 잡으로 되는데, 며칠간 피넛버터는 없어지는데 쥐는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쥐덫이 열리는 소리가 연쇄적으로 들리더니 그 다음날 아침, 마침내 쥐가 한마리 잡힌 것을 보게 됐다. 그 후로 계속 관찰하다가 더이상 쥐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아, 부엌 서랍에 있는 모든 것들을 꺼내 확인하고, 다시 다 닦고 정리했다. 덕분에 부엌청소를 할 수 있었다. 겨우 한마리 쥐가 그렇게 난장판을 만들었다는 게 신기할뿐이다.


쥐 때문에 힘들었던 시간은 한 2주쯤 된 것 같다. 그것밖에도 새벽에 작은 소리에 잠을 깰 때가 많았다. 집안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것 같아 머리가 쭈뼛 서기도 한다. 밖에서 들리는 빗소리이거나, 옆집, 혹은 밖에서 나는 소리였기에 내가 오늘까지 안전한 것이겠지. 


지금은 사진을 정리하고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앨범에 모아놓은 것이 헤아려보니, 20여권의 앨범이 된다. 아이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사진들은 몇개씩 빼가곤 했지만, 이렇게 부피가 큰 것을 가져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들의 사진도 그렇고. 이 일도 남편이 있으면 쉽지않을 수 있다. 나보다는 "역사"와 "추억"에 민감한 그는 아이들이 담긴 사진을 버리는 것에 대해서 쉽게 찬성하지 않을 수 있다. 지난번 이사올 때도 나는 버리자고 했고, 남편은 일단을 가져가자, 했던 것들이다. 아이들 사진을 정리하다가, 막내가 태어나던 그때를 담은 기록을 보게 됐다. 겨우 1.6kg으로 태어난 미숙아. 코와 온몸에 도움줄을 달고있는 여리고 여린 아기. 엄마가 된다는 것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는 게 확실하다. 아이를 가지면, 더욱 내몸에 신경써야 했던 것을. 두 아이를 순산했다고 해서, 세번째 아이도 그렇게 될것이라고 자만했던 그당시의 나를 만났다. 막내는 아직도 부모의 도움이 필요한,  미성숙한 성인이지만, 처음 날때와 비교해보면, 이또한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말근육"을 가진 내 남편을 만났다. 결혼 초기에 찍은 사진, 어떤 것은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더라. 몸은 말랐는데, 바지밑으로 드러난 다리근육에 깜짝 놀랐다. 남편은 허리통증과 발의 불균형으로 고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육은 많이 빠져서, 바지가 헐렁해졌다. 이번에 한국에서 정형외과의 "프롤로 주사치료"와 한방의 "침치료" 그리고 "도수치료"라는 용어도 낯선 치료들을 받는데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중이다. 그의 건강했던 한때를 본 것만으로 다시 그때로 갈수도 있지 않을까, 조금은 허망한 꿈을 꿔본다.


해넘이때 동네 산책을 하면서 


그가 하던 잔디깍기는 내가 한번 했다. 잔디가 잘 자라지 않는 가을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남편이 곁에 없고나서 또하나는 잠의 습관이다. 잘 못자기도 하고, 새벽에 깨기도 하고, 어떤날은 늦잠을 자기도 한다. 누군가 보는 사람이 없고, 지켜야 할 사람이 없으니 이리 되는 것 같다. 하루를 마치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휴식을 갖는게 우리들의 하루마감 수순이었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내가 좋아했던, 그가 맞춰준 부분이었던 것 같다. 요즘도 그런 시간을 갖고 있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프로를 만날때까지 고를 수 있는 점이 다르다. 남편은 외국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데, 나는 영어공부 한다는 명분을 세워 외국영화를 많이 봤다. 텔레비전앞에 앉아있는 것에 대한 민망함을 좀 씻어낼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음식하면서, 청소하면서 내가 듣고싶은 유뷰브 방송을 크게 틀어놓는다. 그것 한가지는 엄청 편하고 자유롭다.


남편이 없으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원없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혼자 동의하면 되므로. 그런데 그런 일이 그렇게 잘되지 않았다. 나는 많은 사회적 만남을 남편때문에 자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나 역시 일부러 만남을 주선하는 데에서 한발 물러서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부부는 살면서 닮아간다더니, 그렇게 되었나보다. 남편이 오면 함께 만나야 의미있는 만남들이 기획되어지길 바란다. 


함께 일하는 중국인 동료가 멸치액젓을 어떻게 구하냐고 해서, 토론토 한국식품을 갔다가 한병 사왔다. 그걸 주면서 그녀와 그녀의 딸의 방문을 유도(?)했다. 그녀는 내가 궁금하던 회사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그리고 옆집 젠이 두번이나 방문했었다. 부엌문을 두드려서 그녀를 불러들여서 함께 이야기했다. 그녀와 조금씩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남편없이 가족외에 사적인 만남은 이 둘이 다인 것 같다. 


남편과 자주 걸었던 호숫가 트레일


남편이 없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운전"이 아닐까싶다. 트레일러를 끌어야해서, 트럭을 샀고, 그 차로는 도시로 나가는 것이 어렵게 생각된다. 트럭으로 한번 사고를 낸 적이 있어서 더욱 그렇고, 주차 한번 하려면 온 시내를 헤매고 다녀야 하는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다. 둘째가 엄마가 외로워 보였는지, 저녁을 사준다며 토론토로 초대했다. 제가 가봤던 특별한 식당이라며, 동생, 조카와 함께 올수 있느냐는 것. 호기롭게 초대에 응했는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우선은 가는 길에 막내를 데리고 갔다가, 오는 길에 막내를 내려주어야 한다. 저녁약속이니, 밤늦게 운전해야 하고 말이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다운타운에 있는 식당에 자리가 없어서 스카보로 지역 식당으로 잡았다는 것이다. 다운타운이 아니니, 갈만할 듯싶었다. 


그랬는데, 최근에 입양한 고양이를 보러오라는 둘째의 부탁이 있어서 처음에 우리의 계획과 조금 달라야했다. 토론토에서 한국식품 시장을 보고, 식당에 가면 될것 같았는데 둘째네 가려면 시간이 애매했다. 딸과 사위가 애지중지, 새로운 고양이 가족을 맞았는데 처음보는 할미(?)로서 선물을 사가야 할 것 같아서, 애완샵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막내에게 검색해보라고 해서 한집을 찾았는데, 처음엔 한눈을 의심했다. Pet Shop 간판 아래 Cannabis 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닌가. 카나비스는 마리화나의 다른 이름으로 마리화나 샵이란 말이다. 차가 막혀 시간도 없는데, 다른 곳을 찾기도 힘들어 일단 들어가봤다. 애완동물용 장난감, 먹이등 펫샵이 분명했다. 카나비스 품목은 저 안쪽에 있는 지 모르겠다. 그래서 처음으로 카나비스는 없는 카나비스 상점에 들어가봤다. 그곳에서 고양이를 위한 장난감 두어개를 구매했다. 막내딸은 그곳 점원의 필요이상 친절함이 너무 이상했다고, 한참 이야기했다. 


아침산책이 마음에 들었던 어느날, 누군가와 함께 걷는 느낌이었다.


둘째네 집까지 내 차로 가는 방법과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는데, 버스를 타기로 했다. 막내는 시간이 없는데 우버 택시를 부르자고 했지만, 오래전 자주 다니던 베더스트 길이라 나는 버스를 타고 싶었다. 버스요금 내는 법도 검색하고, 언제 오는지 그런 것들도 앱을 통해서 알수 있었다. 한국만이 아니라, 캐나다도 어느정도는 IT 나라가 된 것 같다. 베더스트 길에 있는 형부 아파트 비지터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버스를 타고 내려갔다. 버스 정거장이 얼마나 많은지, 핀치(Finch)에서 세인 클레어(St. Clair)까지 가는데 20여 정거장이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예정시간을 많이 안 벗어나서 둘째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보기엔 한심해 보였을테지만, 내가 잘할 수 있고 마음편한 방법으로 하게 되니, 이런 것을 꼰대라고 부르는가?^^ 식당에 가기전에 새로 들어온 아기 고양이와 만났다. 애완동물을 좋아해보지 않은 내게는 아이들의 동물사랑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어쨌든 중국인이 경영하는 대단한 샤부샤부집 하이디라오(Haidilao Hot Pot)에 갔다. "하이디라오"는 "깊은 바다에서 건져올린" 이란 뜻이 있단다. 중국에서 시작된 샤부샤부집이 전세계에 퍼져있다는데, 나는 이번에 처음 가봤다. 사촌언니에게서 제생일에 초대를 받았던 둘째는 막내에게도 같은 경험을 해주고 싶었는지, 다 잘 먹고 일어나기 직전, 직원들이 노래를 부르며  생일모자를 씌워주고 선물을 주는  행사를 해줬다. 막내의 생일은 이미 넉달전에 지나갔어도 상관없다. 중국식 가면 바꿔쓰기 댄스가 있었고, 샤부샤부에 넣어먹을 국수를 시키면,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이 국수춤을 추며 온다. 그는 우리앞에서 국수쇼를 보여준다. 몇번이나 코앞으로 국수가락이 오락가락하며 원을 그리고, 그리고 결국엔 그 국수가 샤부샤부 국물에 들어간다. 주문한 만큼 돈을 내야 하는 그 샤부샤부집은 그야말로 문전성시여서 우리가 나올때에도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도 예약을 하지 않은 손님들인가 싶었다. 입구에는 손맛사지와 매니큐어를 칠해주는 서비스도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대단한 식당을 경험하게 해준 둘째부부와 헤어져 막내와 다시 한팀이 됐다. 토론토에 왔으니, 한국장을 봐가야 하는데, 벌써 시간이 늦었지만, 이왕 늦은 것 한국식품을 봤다. 딸의 장바구니를 보니, 사골국물도 있고, 김치도 있고, 꽤 그럴싸한 식품들이 눈에 뜨인다. 


문제는 올때 발생했다. 딸의 집에 먼저 가야하는데, 여차저차 하다가 고속도로를 벗어났다. 한번은 잘 찾아서 다시 들어갔지만, 두번째 벗어나게 됐을 때는 정말 암담했다. 밤이라 그다지 바쁘지 않을 것이라 큰 문제가 없겠지 했는데, 남으로 내려가는 고속도로, 북으로 올라가는 고속도로, 동쪽으로 가는 길, 빠져나가는 길 등이 얽히고설켜, 길을 잘 모르는 나는 고전을 했다. 지피에스를 의지해 가는데 두번째 또 길을 벗어나게 되었다. 아무래도 로컬길을 찾아서 가야할 것 같았다. 시간은 이미 자정에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막내는 옆에서 난감한 표정을 한다. 


심호흡을 하고 용기를 내보기로 한다. 딸에게 같이 길을 좀 봐달라고 했다. 왼쪽에 붙어있어야 하는지, 나가야 하는지 네가 도와주면 좋겠다고. 막내의 도움으로 재진입에 성공하고, 도시를 조금 더 벗어나니 안심이 된다. 막내는 남자친구와 차를 타면, 이런 일이 발생하는데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한 말을 하면 화가 난다고 했다. 왜 말을 시켰느냐느니, 왜 음악을 크게 틀었느냐니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고속도로 타는 여행을 삼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엄마는 운전이 30년인데도 이런 상태인 것을 네가 봤으니, 네 남자 친구에게 너무 뭐라 하지 말고, 도와주는 것이 좋다, 고 말해줬다. 이런 어려운 일은 남편이 했던 일이니, 이번에 된통 당했다. 집에 돌아오니 새벽 2시가 넘었고, 그날의 외출은 일단 무사고로 일단락이 되었다.


사실 수시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그가 그다지 멀리 있는 느낌은 안난다. 나도 잊어버릴만큼 재미있게 지냈으면 좋겠는데, 그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친구딸의 결혼식에서 고등학교 동창생 30명이나 만났다고 하니, 얼마나 즐거웠을까. 머물고 있는 딸집에서는 시장을 봐와서 된장찌개도 해주고, 고추장찌개도 해주고, 살림꾼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는 이제는 캐나다가 그립다고 한다. 삶의 방식들이 많이 다르고, 관심분야가 달라서 같이 흥을 내기가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한다. 예정보다 당 겨서 오기로 해서, 여행사에 비용을 치르고, 차액까지 물어내게 되었다. 남편은 왜 그렇게 긴시간 작정하고 한국을 갔을까?  작년에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많은 여지를 주었다. 맘만 먹으면 우리도 역이민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 그래서 시작된 것이 F4 비자를 만들었고, 남편은 거소증을 신청하겠다고 나갔다. 거소증이 있으면 한국에서 오래 머물수 있고, 본인 인증이 없어 많은 부분 불편했던지라 그런 것들에 대한 해결이 될 것이다. 검색에서는 적어도 2달 이상이 걸린다고 나와서 그런 일정이 잡혔는데, 동포청을 방문하여 생각외로 일찍 거소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대신 치과와 정형외과등 치료에 시간을 많이 썼다. 캐나다 의료시스템 덕을 보다가도, 홍보에 열심이고, 많은 솔깃한 치료방법이 있는 한국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번 여행은 남편의 치료여행이 되었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한국에서 캐나다로 돌아오면, 모든 게 제로 상태가 된다. 한국에 갈 확률은 또 확 떨어지고.  나이가 들어가는 한국 동포중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한다. 그러나 꿈으로 간직할뿐 다시 역이민을 실천할 사람은 많지않아 보인다. 대단한 동기가 생기지않는 한, 이 일은 현실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남편의 지인이 한국으로 역이민했다. 그러나 그곳 생활도 만만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저울질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나라가 내게 무엇을 더 잘해주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다간, 결론이 나지않을 것같다. 


그도 나도, 혹여 우리 둘중 하나에게 무슨 일이 닥치면, 그때가서 결정을 하게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엄마가 캐나다에 오시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상실의 힘(?)이 환경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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